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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최윤희, <개천한국무용제>서 대통령상 받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8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소개한 <도살풀이춤>이란 <도당굿 살풀이춤>을 줄인 이름이며, 이는 <살풀이춤>의 원초형으로 춤사위가 비교적 자연스럽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무용학원의 원장겸 사범으로 더욱 춤 공부에 매진한 최윤희는 전주대사습에서 <장원>을 차지했고, 이어서 1985년도에는 진주 <개천예술제>의 하나로 인기를 끌었던 <한국무용제>에 참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진주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는 <개천예술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전통예술제로 알려진 축제다. 다양한 행사 가운데서도 특히 <한국무용제>는 대통령상이 걸려 있는 수준 높은 대회여서 누구누구, 이름만 들어도 짐작할 수 있는 전국의 유명 춤꾼들이 해마다 대거 진주로 몰려들었던 권위있는 대회였다.

 

여러 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맹연습해 온 최윤희도 여기에 <도살풀이춤>으로 도전장을 냈으나, 워낙 내로라하는 무용계 선, 후배들이 경쟁하는 무대여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스승의 지도를 받으며 최선을 다해 온 지난 시간을 믿을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시작의 종은 울렸다. 장단과 가락이 시작되면서 그 분위기를 타고 손과 발, 다리와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익힌 동작이나 춤사위 하나하나가 서서히 균형을 유지하며 평소 몸에 익은 대로 온전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땅을 디디고 선, 두 발의 중심이 매우 안정감을 주었고, 들어 올린 두 팔과 손에 쥐고 있는 하얀 천이 만들어내는 공중의 곡선이 자유분방하게 하늘을 수놓기 시작한다. 최윤희라는 한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그가 딛고 있는 땅, 그리고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내는 공간의 곡선이 일체를 이루는 순간, 그것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아름다운 곡선이었다.

 

마치, 천(天)-지(地)-인(人)의 삼위(三位)가 하나로 동화(同和)되어 우주만물의 신비를 그려내고 있는 형상이었다고나 할까?

 

객석의 반응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움직이게 만들기 충분했기에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대상>이었다. 그렇게 꿈꾸어오던 ‘대통령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권위있는 대회에서 대상을 받고 보니 이제 무용계에서 최윤희를 모르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도 그렇거니와 더더욱 기쁜 것은 스승 김숙자의 <도살풀이춤>이 얼마나 어렵고 심오한 예술세계를 그리고 있는가 하는 점을 세상에 알리게 된 점이었다.

 

실력과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20대의 어린 나이임에도 그 이듬해인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이 창단되면서 무용부장으로 입단, 곧이어 상임안무자가 되어 4~5년 동안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영호남의 교류공연은 물론이고, 각종 나라 밖 공연에서 스승에게 배운 전통춤은 주요 공연 종목이 되었는데, 특히 스승의 <도살풀이춤>은 이제 무대 공연의 핵심이 되었고, 단원의 오디션이나 평가에도 스승을 모시고 지도를 받는 등, 스승과의 교류를 더더욱 끈끈하게 유지하게 되었다. 그로 덕분에 호남지역에 김숙자류의 전통춤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것은 물론이고, 김숙자류의 전통춤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91년, 최윤희는 광주를 떠나 대전으로 옮겨 <한국전통예술진흥회> 대전지부를 결성하고, 무용학원을 개원하게 된다. 호남이 아니라 이제는 충청지방, 그 가운데에서도 대전을 중심으로 김숙자류의 전통춤을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대로 대전에서 무용학원을 개원하자, 최윤희라는 유명세로 인해 100여 명이 넘는 문하생들이 모여들어 그에게 춤 배우기를 희망하였다. 이곳에서도 가장 비중 있게 가르친 춤은 역시 『도살풀이춤』이었고, 그밖에도 스승이 다양하게 표현했던 입춤의 부류, 예를 들면 수건춤이나 즉흥무, 헛튼춤, 굿거리춤, 살풀이춤, 승무, 등을 가르쳐 이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고 함께 공연의 기회도 만들며 열심히 지도하였다.

 

 

최윤희의 고향은 충청남도 홍성이다. 홍성은 그 이전, 춤과 소리북으로 유명했던 한성준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특히 홍성군에서는 해당 지역을 춤의 전승지로 만들기 위해 최윤희를 초청하여 군민들에게 전통춤을 지도하도록 초청하였다. 군청과 지역민, 최윤희 등은 하나가 되어 그 사업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1999년부터 시작해서 6년째 되던 2005년에는 「홍성군립무용단」을 창단하는 등 고향 땅을 춤 지역으로 인정하게 되는 작은 결실을맺기도 한 것이다.

 

최윤희는 홍성지역에 소재한 충남도청 내포시라든가, 또는 대전 인근의 세종시에서도 전승과 보급 확대에 노력을 기울여 『도살풀이춤』이 우리나라 전통무속춤의 백미로 사랑받는 춤이 되도록 노력해 온 것이다. 이와 같은 전통춤 보급의 결실은 <동국대학교 사회교육원>에 『도살풀이춤 』 강좌를 개설하게 해서 10여 년 이상 지도해 왔고, 또한 불교방송국에 『도살풀이춤』 강좌를 개설하여 매주 월요일마다 10여 년 동안 전승과 보급 활동을 해 온 것이다. 그의 노력이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