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까지는 이민영의 25현 가야금 발표회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였다. 12현 법금(法琴)과 이를 고쳐 만든 산조가야금, 25현금과의 차이점에 관한 이야기, 이민영은 초등학교 때부터 산조를 배웠고, 고교생이 되어서는 백인영 명인에게 유대봉류 산조를 본격적으로 배웠다는 이야기, 대학생이 되어서는 중국에서 초빙된 김계옥 교수에게 25현금을 배우면서 넓은 음역, 음량, 양손활용, 화음처리, 다양한 연주법, 등을 익혔다고 했다. 또 2004년, <남북한 교류음악회>, 2005년 미국 UCLA에서 열린 <제5회 Korean Music Symposium> 연주, 2006년 연변예술대학에서의 <학술 및 실연교류 연주>, <베트남 하노이 대학> 연주회 등이 기억되고 있다는 이야기, 남원은 국립이나 시립 규모의 연주단체가 상존해 있고, 그 활약상으로 전통음악을 즐기는 수준이 매우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 이민영의 25현 가야금 창작곡 공연이 활성화된다면, 더욱 풍성한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급부상 될 것이라는 이야기 등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유상호의 <배뱅이굿> 공연이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출강>의 작곡자 김용실이 거문고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 곡을 지었다는 이야기와 이민영이 25현 가야금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편곡하고, 연주했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거문고 원곡을 25현 가야금으로 편곡하면서 이민영은 가야금 <산조>에 보이는 연튀김 주법이라든가, 양손을 동시에 활용하는 수법 등을 다양하게 살려 보았다고 한다. 가야금은 신라시대 이래 현재까지 열두 줄을 지닌 현악기이다. 이를 법금(法琴)이라 부른다. 주로 정악(正樂)에 사용되어 오다가 19세기 중엽, 산조가 연주되면서 가야금의 체제가 변화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본래 산조(散調)라는 음악은 <헛튼가락>, 또는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했을 만큼, 연주자의 즉흥성이 강조되는 음악이다. 더욱이 가야금 산조의 경우에는 줄을 풀고 조이는 능력을 통해서 듣는 사람들을 긴장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이완시켜 주는 즉흥적 요소를 발휘하는 민속기악의 대표적인 음악이다. 산조의 음악형식은 만(慢)-중(中)-삭(數), 곧 느리게 시작해서 보통의 속도를 지나 더욱 빠르게 이어가는 틀을 지닌 음악이다. 이처럼 즉흥으로 진행되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의 마지막 곡은 거문고 독주곡 <출강>이었다. 12명의 출연자가 이 곡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무대에 올라 가야금에 관한 이야기, 특히 우륵이라는 악사와 진흥왕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야금을 품고 신라에 투항한 우륵은 그곳에서 주지, 계고, 만덕 등 3인에게 가야금을 가르쳤고, 그 제자들이 임금 앞에서 연주하니 임금은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은 가야국은 망한 나라이고, 가야금은 망한 나라의 음악이라 이를 신라에서 취할 바 못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때 임금이 신하들에게 <악하죄호-樂何罪乎> 곧 가야왕이 음란해서 정치를 돌보지 않아 스스로 자멸한 것이지, <음악이 어찌 죄가 된다고 그러는가>라고 조용하게 타일렀다.”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에서 마지막으로 연주된 곡은 주인공 자신이 스스로 편곡한 12인의 중주곡 <출강>이었다. 실제 연주자들이 직접 작곡하거나 편곡을 하는 경우는 매우 흔한 일이고, 때로는 편곡을 통해 원곡보다도 더 유명해진 음악이 하나둘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만큼 연주자들이 다루고 있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어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 관련 이야기로 이어간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으로 해서 초등학교 때 성악,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예술고에 진학했고, 대학을 거치며 김계옥 명인을 만날 수 있었던 배경이, 오늘의 25현금 독주회를 열 수 있는 바탕이 된 것이리라. 간단하게 연주소감을 남겨 보기로 한다. 첫 번째 곡, ‘꽃피는 이 봄날에’는 전반적으로 깔끔한 터치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선율처리가 돋보였고, ‘초소의 봄’은 특유의 음색과 빠른 장단형태가 봄의 정취를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세 번째 연주된, ‘달빛 밝은 이 밤에’라는 곡은 북한의 가극, ‘금강산의 노래’에 나오는 서정적인 노래곡인데, 이를 가야금을 위해 편곡한 곡이다. 달 밝은 밤의 아름다운 경관이 다소 애처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선율의 흐름이 단조(短調)의 느낌을 충분히 살려주면서 강약이나 음양(陰陽)의 대비, 그리고 다양한 주법이 가미된 점이 특징이다. 네 번째 작품, ‘황금산의 백도라지 4중주’는 경기민요 ‘도라지’를 25현 금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새롭게 편곡하면서 음역을 확대했고, 또한 연주 기법에도 많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엊그제 5월 28(토)일 저녁 5시, 남원 시내의 지리산 소극장에서는 가야금 연주자, 이민영의 25현금 독주회가 열려 가야금 음악의 애호가들에게 열띤 환호를 받았다. 25현금이란 기존의 12현 가야금을 개조, 개량하여 25줄로 확대 제작한 가야금을 말한다. 과거에는 오른손가락으로는 줄을 뜯거나 튕기고, 왼손으로는 울려진 줄을 흔드는 방법으로 연주를 해 왔으나, 25현은 양손을 이용하여 가락을 연주하는 등, 역할이나 음악 효과가 달라진 악기이다. 판소리 춘향전의 본향이고, 춘향제로 유명한 전통음악의 도시, 남원 골에서 25현금 독주회를 준비해 온 이민영은 어떤 연주자인가? 이민영은 어려서부터 가야금을 배웠으나, 국립전통예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야금을 전공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중앙대에서 학사, 단국대에서 석사, 이어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젊은 국악인이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국립 남도국악원의 비상임 단원을 지낸 것은 물론, 남원에 있는 국립 민속국악원에서 일반인 국악강좌 가야금 강사, 한국 전통문화고교 영재예술원의 가야금 강사, 구리여중, 남원중, 용성초와 그 밖에 여러 학교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왔으며, 근래에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앞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소리 <산타령>의 전승교육사, 이건자 명창의 제9회 발표회 관련 이야기를 하였다. 경서도 소리 전반을 섭렵한 명창으로 진실과 겸손으로 이웃을 섬긴다는 이야기, 검정고시로 대학과 대학원 석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하였으며 현재 성북구 내 자기 연구소에서 강습과 강의, 공연을 통해 국악보급에 힘쓰고 있는 모범적인 소리꾼이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남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가야금 연주자, 이민영과 그의 제자들이 꾸미는 25현금 연주회 이야기로 이어간다. 코로나19 돌림병이 다소 완화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실내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권장하는 상황이고, 정치권은 해당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를 코앞에 두고, 서로 상대를 질타하는 시끄러운 분위기 속에서 국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들을 뒤로 하고, 음색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가야금, 그것도 12현이 아닌, 음역을 확대한 25현 가야금을 통해서 지역과 체제를 달리하는 북한 동포들의 작품을 선정, 한 무대에 올린다고 하니 벌써 그 연주회가 흥미롭고 기다려진다. 이처럼 남과 북에서, 서로 흩어져 사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건자가 고교와 대학의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과 대학원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다고 이야기하였다. 공부를 못한 것이 후회되고, 세상 사람이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고 새벽 4시에 수업을 듣기 시작하여 고입과 대입 검정에 합격하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의 학구열이 참으로 대단하다. 그는 2002년도에 선소리 산타령의 이수자가 되었는데, 국내에서 해마다 발표되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 선소리산타령, 경기지방의 소리와 서도 산타령의 정례 공연과 기획 발표회에는 반드시 참여해 오고 있다. 그러는 한편, 그는 2012년에 서울 성북구에 선소리산타령 지부를 설립하고 매해 정례 강습회는 물론 국악전반과 산타령 중심의 강의, 그리고 정례 발표회 공연 등을 통해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국악 보급 활동에 힘써 왔다. 특히 2021년 12월 19일 <성북 아트홀>에서 열린 제9회 송연 이건자의 선소리산타령 발표회‘선녀와 놀량’은 인기리에 발표되어 코로나 정국에 지친 성북구민과 서울 시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던 공연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에서의 활동도 활발한 편이었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건자의 주전공 분야인 산타령은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며, <놀량>,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 산타령>을 순서대로 연창한다. 독창적인 창법으로 높고 시원한 소리, 발림, 흥겨운 장단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소리다. 이건자 명창과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가슴속에 묻고 살아 온 이야기 한 토막을 다음과 같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가슴 깊은 곳에 남모르는 아픔을 묻고 살아왔습니다. 소리공부를 하면서 또는 외부 출연이나 발표회를 앞두고, 이러저러한 일들에 관여하면서 이력서를 쓸 일이 종종 생기는 거예요. 그때마다 그 ‘학력란’을 메우는 일이 저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제때 못 배운 것도 서러워서 감추고 싶은 일인데, 그것을 세상에 공개해서 부끄러움을 내보이자니 여간 싫은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가끔은 이를 가리기 위해 거짓으로 <고졸>이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러고 나면 그날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거예요. 거짓은 양심을 속이는 것이어서 정말 쓰기 싫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경기소리로 전공을 바꾼 이건자는 맹연습을 한 탓인지, 소리 실력이 돋보이기 시작하였다. 경서도의 이름난 명창들이 그들의 제자로 삼으려 의중을 타진하기 시작하였으나 그는 오로지 황용주 명인에게 선소리 산타령 공부에 매진해 온 것이다. 오늘날 우리 음악계에서 산타령의 전승은 벽파(碧波) 이창배(李昌培)의 공로가 크고, 벽파의 제자들에 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상황은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음악적 환경이 아니어서 이 종목에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동 종목의 보유자, 전승교육사, 보존회원들의 노력과 열성이 전통 유지의 원동력이라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산타령>이란 어떤 노래인가? 이건자가 주전공으로 공부해 왔고, 또한 현재에도 열심히 임하고 있으며 제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짚어보기로 한다. 우선 <산타령>이란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라는 점이다. 그 구성은 제1곡 <놀량>, 제2곡 <앞산타령>, 제3곡 <뒷산타령>, 제4곡 <자진 산타령> 등이며 이들을 순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를 공부하던 이건자는 자신의 목이 판소리에 적합한 목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면서 윤평화 명창에게 경기소리를 배우기 시작한다. “내 목에 맞는 경기소리를 연습해서 그런지, 온종일 연습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걸 한다는 자체가 그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의 소리 실력이 조금씩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을 무렵, 경기 명창들은 서로 그를 자신의 제자로 삼으려 했다고도 한다. 그가 경기소리, 특히 민요창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을 무렵이었는데, 충무로에 있는《한국의 집》에서 민요경창대회가 열렸다는 것이다. 지도 선생님의 권유로 참가해서 평소에 좋아하고 즐겨 부르던 <금강산타령>을 불렀다고 한다. “워낙 좋아하는 노래여서 자신감도 있었고, 또 그날따라 목이 잘 나오고, 음악성도 발휘되어 좋은 결과가 나왔지요. 시상식이 끝나고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분이었던 임정란 명창이 윤평화 선생께 이건자를 데리고 가서 제자로 키우고 싶으니 허락해 달라고 해서 선생님도, 저도, 무안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뒤 또 다른 대회에서는 묵계월 명창께서 심사를 보셨어요. 운 좋게 큰 상을 받았고, 돌아가는 길에 뜻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