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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양반과 상놈이 함께 이룬 성취, 《자산어보》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59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달빛이 휘엉청 밝은 밤, 초가삼간 마루에 앉아 흑산도 밤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다보며 술잔을 기울이던 정약전 선생, 영화 <자산어보>의 한 장면은 그림 같아 보이지만 실은 58년의 생애 가운데 16년이란 세월을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이어갔으며 끝내 유배지에서 삶을 마친 불운의 선비입니다. 그러나 유배생활을 하면서 우리나라 첫 수산학 연구서인 《자산어보(玆山魚譜)》 등을 남긴 정약전 선생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 <자산어보>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약전 선생은 영조 34(1758)년에 태어나 전형적인 성리학자로 문과에 급제해 병조좌랑 등의 벼슬을 살게 됩니다만 그의 운명을 갈라놓은 계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서양 학문과 천주교 등의 사상을 접하고 있던 이벽 등의 남인 인사들과의 교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정약전 선생은 이벽의 권유로 《천주실의》, 《칠극》 등의 천주교 관련서적을 시작으로 서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예수회 신부들이 번역한 유클리드의 《기하원본》 등을 읽으면서 그간 길들어 있던 성리학을 벗어나 서양의 사상에 눈뜨게 됩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천주교 신자가 되었지만 1801년(순조 1)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길에 오르지요.

 

낯선 땅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정약전 선생은 ‘창대’라는 젊은 어부 청년을 운명처럼 만나게 됩니다. 선생은 그와 함께 흑산도 근해의 수산생물을 실제로 조사하고 채집, 분류하여 종류별로 이름과 분포, 형태, 습성과 그 이용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기록한 《자산어보》를 쓰는 한편 흑산도에서 복성재를 짓고 섬 소년들을 가르치다가 유배생활 16년 만에 숨을 거둡니다.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어 사제의 정을 나누고, 그를 통해 대단한 과학적 성취를 이룬 책을 영화화한 <자산어보>는 영화를 깊이있게 보는 사람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