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국악방송(사장 직무대행 김은하)은 우리 소리와 전통문화를 지켜온 명인ㆍ명창들의 삶을 기록하는 라디오 특집 '구술 프로젝트,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통해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의 70년 음악 인생을 조명한다. 해당 특집은 오는 4월 6일(월) 저녁 9시 라디오, 4월 13일(월) 저녁 8시 30분 텔레비전을 통해 각각 방송된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한범 교수는 1958년 열세 살의 나이에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고등학교 전신)에 입학하며 국악 인생을 시작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와 대학원을 거쳐 고려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기능 이수자인 동시에 피리 연주자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국립국악원 연구원과 연주원을 겸직하며 이론과 실기를 두루 섭렵한 보기 드문 국악인이다. 단국대학교 국악과 창설부터 ‘국악통론’ 집필까지… 교육과 연구의 두 기둥 서한범 교수는 1983년 단국대학교에 국악과를 창설하며 본격적으로 교육자의 길을 걸었다. 특히 타악 분야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의 국악계에 진출 기반을 마련하는 등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그의 제자들은 현재 국악계는 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유정이 일본에서 돌아오면서 우리나라 남녀 3천여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는 《선조수정실록》 39권, 선조 38년(1605년) 4월 1일 기록으로 승려 유정 곧 사명대사(泗溟大師)가 임금의 명을 받들고 일본에 가서 교토 후시미성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 강화를 맺고 포로가 되어 끌려갔던 조선인 3,500명을 데리고 이듬해 돌아왔다는 내용입니다. 비록 명예직이지만 영의정에 해당하는 ‘가의(嘉義)’의 직위와 어마(御馬, 임금이 타는 말) 등을 하사받았다고 하지요. 당시 일본은 새로 세운 ‘에도 막부’의 안정을 위해 조선과의 평화가 절실했습니다. 사명대사는 이를 간파하고 강력한 외교 담판을 벌여 "일본은 다시 침략하지 않는다"라는 약속과 함께 포로 송환을 확약받은 것입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때도 금강산 건봉사에서 승병을 규합, 1593년 1월 평양성 탈환 작전에 참여해 큰 전공을 세웠고, 그해 3월 서울 인근의 노원평과 우환동, 수락산 전투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대사는 팔공산성과 금오산성, 용기산성, 남한상성, 부산성 등을 쌓기도 했지요. 사명대사와 관련된 유적으로는 먼저 고향인 밀양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지난 1월 20일 청와대 세종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광화문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 설치 추진 계획을 보고했고, 국가유산청장이 이에 적극 동의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에 한글 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이를 "역사적 결단"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했다.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할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광화문 현판 토론회>가 어제(3월 31일) 낮 2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6층 회의실에 열렸다. 100여 명의 전문가들과 시민이 참석해 분위기가 뜨거워진 회의실은 먼저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가 “광화문에 ‘국가 정체성’ 밝히는 한글 현판을 달자”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했다. 이건범 대표는 “수도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도 국명을 정하는 것,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영토를 획정하고 국가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 된다고 할 것이다.”라는 2004년 10월 21일에 나온 ‘헌법재판소 판결문’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한글은 과학적이고 애민 사상의 결과여서 자랑스러운 수준을 넘어서서, 한국을 한국답게 만들고 표현하는 요소이기에 국가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베토벤 교향곡 제5번 단조 (Op. 67) 일명 ‘운명’을 즐겨 들었다. 그러면서 베토벤에게 운명이 다가와 문을 두드리며 “내가 왔다. 문 열어라!”라고 소리쳤다는 얘기를 듣고 늘 그런 음악 감상을 해왔고, 교향곡 가운데서는 이 곡을 가장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는 클래식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그저 취미로 들어온 탓에 주로 세미 클래식 위주로 감상해 왔으며, 깊이 있는 음악을 들어오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도 제8번 ‘비창’ 정도, 그것도 익숙한 2악장에 머문 정도였다. 그러다 국내 유명한 피아니스트 임현정 이름을 익숙하게 듣던 중 그 임현정이 4개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는 귀한 소식에 꼭 들어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작지 않은 공연장이었지만 1, 2층 모두 빈자리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만원이다. 임현정의 명성이 괜한 것이 아니란 생각이다. 일본 예술잡지 《게이주쓰 매거진(Geijutsu Magazine)》에서 평론가 코호 우노(宇野功芳)는 “임현정 앞에 경쟁자는 없다, 진정한 일류 클래스이다!”라고 했고 영국의 텔레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 자 연합뉴스는 “광화문 월대에서 시작된 BTS 컴백, 복원된 역사가 세계를 만나다”란 기사를 올렸습니다. 다시 돌아온 방탄소년단의 공연은 경복궁 근정문에서 흥례문, 광화문을 지나 월대 앞 광화문광장 무대로 이어지는 '왕의 길'을 따라가며 시작됐지요. 복원된 월대 앞에서 펼쳐진 방탄소년단의 귀환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혔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귀환 공연이 열린 광화문은 대한민국의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그 현판이 한자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 달려있는 광화문 한자 현판은 세종 때의 원형도 아니고 고종 때 훈련대장 임태영이 세종 때 ’원형‘을 모른 채 썼는데 그것도 훈련대장이 직접 썼던 것이 아닌 복제품이어서 그 현판을 붙이는 것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문화유산으로의 복원은 아닌 것입니다. 전 세계인이 대한민국에는 위대한 글자 ’한글‘이 있음을 아는 것은 물론 많은 이가 한글을 배우려고 애쓰고 있는데 대한민국 상징의 하나인 광화문에 중국 글자인 한자로 쓰인 한자 현판이 달린 것을 보고 세계인들에게 어떤 인상을 줄지 걱정입니다. 따라서 한자 현판을 굳이 그대로 두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일제강점기 최현배 선생은 한 《금서집(방명록)》에 “한글이 목숨”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 훈민정음 곧 한글은 예술임을 강조하는 교수가 있다. 바로 서울여자대학교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한재준 전 교수인데 그는 강의에서 조선시대 ‘이도’라는 사람이 있었고, 그는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뿐만이 아니라 뛰어난 예술가였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한 교수는 “세종대왕을 세종대왕이라고 부르기보다는 뛰어난 예술가 ‘이도(세종의 어렸을 적 이름)’로 부르렵니다. 이탈리아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뛰어난 예술가로 존경하고 곳곳에서 기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훨씬 뛰어난 예술가 이도를 가진 겨레입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한글을 그저 음운론적 과점에서 뛰어난 글자라는 점만 강조한다. 하지만,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한 교수의 말에 따르면 훈민정음 곧 한글이야말로 정말 아름다운 시각디자인 요소를 갖춘 훌륭한 글자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여기 작품전을 여는 작가들이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 지하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한글갤러리에서 지난 3월 24일(화)부터 오는 4월 19일(일)까지 옥스퍼드 사전 등재 단어 특별전, <말꽃, 피어나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116년 전 오늘(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 집행을 당한 순국일입니다. 그러나 안중근 의사가 형제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안 의사의 유언은 116년이 지나도록 아직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제가 철저히 은폐한 탓에 사형 집행 뒤 주검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명확치 않았음이 가장 큰 까닭이지만 우리의 노력도 많이 모자랐다는 쓴소리에 할 말도 없지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자 <통일뉴스>에는 단독으로 “안중근 의사 유해, 뤼순감옥 묘지 지하 2.1미터 아래 잠들어 있다”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기사에는 이규수 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특임교수가 1910년 9월 10일 '방외생'(일본 이름 고마츠 모토고)기자가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한 '안중근의 무덤'이라는 제목의 현장 취재 기사를 발굴해 안 의사 순국 116주기를 앞두고 공개했는데 이에는 안중근 의사의 주검이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마잉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방탄소년단(BTS)이 새로 내놓은 음반에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의 울림소리가 앨범 중반부에 반영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성덕대왕신종의 종소리를 듣고 감명 받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아이디어를 내 성사된 것으로, 그는 이번 방탄소년단의 음반 발매가 국보 성덕대왕신종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는 뒷이야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국보 에밀레종 음원과 무늬가 방탄소년단(BTS)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의 수록곡과 협업 상품에 활용됐다고 20일 밝혔지요. 한국인이라면 애틋한 전설이 서린 1,300년 된 ‘에밀레종’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에밀레종’은 처음에 봉덕사에 달았다고 해서 ‘봉덕사종’이라고도 했으며, 공식이름으로는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인데 국보로 지정되었고, 국립경주박물관 마당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큰 종으로 높이 3.66m, 입지름 2.27m, 두께 11∼25㎝이며, 무게는 1997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정밀 측정한 결과 18.9톤으로 확인되었지요. 오래 전 ‘한국의 범종’이라는 이름의 녹음테이프 하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여러 종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8도에 여제(癘祭)를 실행하였다. 이때 돌림병이 불길 같이 크게 일어나 죽은 사람이 10여만 명이나 되니, 중신을 보내서 제사를 지내라고 명하고 또 임금 가까이 모시는 신하에게 명하여 8도에 두루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영조실록》 71권, 영조 26년(1750년) 3월 23일 기록으로 온 나라에 돌림병이 돌아 10여만 명이 목숨을 잃었기에 ‘여제(癘祭)’ 곧 돌림병 귀신을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했다는 것입니다. 2019년 11월 17일 중국에서 처음 보고된 범유행전염병이자 사람과 동물 모두 감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탓에 각 나라들은 문을 꽁꽁 걸어 닫고, 온 지구촌은 초비상 상태였습니다. 또한 제1급 신종감염병 증후군 코로나19 탓에 2023년 5월 5일, 세계보건기구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코로나19의 국제적 공중 보건 비상사태(PHEIC) 3년 4개월 동안 공식적으로 6억 8,700만 명 이상의 확진자와 약 69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고 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죽은 사람이 2020년 950명, 2021년 5,030명으로 발표될 정도였습니다. 지금 문명이 크게 발달한 때에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영어로 노래를 부르다가 뒤에 갑자기 “영원히 깨질 수 없는 / 밝게 빛나는 우린 / “우린 빛나기 위해 태어났으니까”라고 한국말로 부르는 노래는 애니메이션(만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OST인 ‘골든’이다. 이 노래는 한국인 여성이 만들고 불렀는데 빌보드 핫100 1위,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 1위 등 글로벌 차트를 석권했고, 영화는 며칠 전 제98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아 2관왕에 올라 돌풍을 일으켰다. 한글로 노래를 불렀는데도 이렇게 세계인들의 인기를 끌고. 덕분에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뿐 아니다, 2024년 12월 영국 옥스퍼드대학교가 펴내는 영어사전인 《옥스퍼드영어사전》에 달고나(dalgona), 노래방(noraebang), 형(hyung), 막내(maknae), 찌개(jjigae), 떡볶이(tteokbokki), 판소리(pansori) 등 일곱 개의 한국어 말이 새롭게 등재되었다. 더 나아가 지난 1월에는 ‘빙수’(bingsu), ‘찜질방’(jjimjilbang), ‘아줌마’(ajumma), ‘코리안 바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