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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사팔뜨기 채제공, 임금의 신임을 한 몸에 받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72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정조 개혁의 중심에 섰던 인물 번암 채제공의 초상을 보면 살짝곰보와 사팔뜨기 눈까지 숨기지 않고 그려 그가 못생긴 인물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의 “죽기살기”라고 할 만큼 정확하게 그리는 조선시대 초상화 사실주의의 극치 덕분입니다. 번암은 그렇게 못생겼지만 28살에 사관인 예문관 한림(翰林) 시험에 수석을 차지한 뒤 죽기 한 해 전인 77살 때까지 은거한 7년을 빼고는 이조좌랑, 시헌부 지평, 한성판윤 등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 정말 큰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오랫동안 신임을 얻고 크게 탄핵을 받지 않은 까닭은 대부분 벼슬아치처럼 아부를 잘하거나 뇌물 공세 덕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청백리에 꼽힐 만큼 청렴했고, 사도세자의 폐위를 강력히 반대했을 만큼 올곧은 인물이었습니다. 오죽했으면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임금이 세손 정조에게 “참으로 채제공은 나의 사심 없는 신하이자 너의 충신”이라고 말했을까요?

 

그는 특히 정조가 야심 차게 추진한 화성(華城) 성역 공사에서 현륭원(顯隆園: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묘)의 공사를 총괄하는 총리사(摠理使)와 함께 수원 유수(留守)ㆍ장용외사(壯勇外使)ㆍ행궁 정리사(行宮整理使)를 겸임할 만큼 엄청난 신임을 얻었습니다. 또 그는 68살의 나이로 우의정에 발탁되어 재상의 반열에 오른 이듬해 좌의정으로 승진했고, 3년 동안 영의정과 우의정이 없는 독상(獨相)으로 재직했는데 이것은 100년 동안 없던 일이었다고 하지요. 못생겼지만 번암 채제공은 두 임금의 신임을 받았고, 세종 때의 황희ㆍ맹사성처럼 정조의 시대의 대표적인 재상으로 꼽힙니다. 조선시대는 잘생겨야만 출세 가도를 달릴 수 있는 요즘보다 그런 면에서는 좋은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