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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잠수복을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간 당신!

장 도미니크 보비, 《잠수복과 나비》, 양영란 (옮긴이), 동문선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205]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장 도미니크 보비(1952~1997)가 쓴 《잠수복과 나비》를 읽었습니다. 참, 이 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제가 어떻게 이 책을 읽게 된 지부터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책을 읽다가 나오는 참고문헌이나 언론에 나오는 서평을 보고 마음에 드는 책은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적어둡니다. 사람들이 추천하는 책들도 이렇게 목록에 적어두고요. 《잠수복과 나비》도 이 가운데 어떤 경로로 제 살 책 목록 속에 들어간 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오랫동안 제 목록 속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 당최 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잠실나루역 앞 ‘서울책보고’에서 드디어 이 책을 살 수 있었습니다. ‘서울책보고’는 서울시가 운영하는 헌책방으로, 여기에는 많은 헌책방이 서가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때도 아산병원에 문상가다가 들러 검색대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고 검색하는데, 어? 검색 결과 창에서 《잠수복과 나비》가 반짝반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검색 결과가 알려주는 서가로 달려가, 드디어 2008년도에 나온 《잠수복과 나비》를 제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잠수복과 나비》를 쓴 장 도미니크 보비는 세계적인 패션잡지 《엘르》의 편집장이었습니다. 그런데 1995. 12. 8. 그에게 갑자기 뇌졸중이 찾아왔습니다. 3주 뒤 보비는 의식은 회복하였으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왼쪽 눈꺼풀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가 의식을 회복한 뒤에 쓴 책입니다. 그런데 겨우 왼쪽 눈꺼풀만 움직일 수 있고 말도 못 하는 사람이 어떻게 책을 쓸 수 있었을까요? 그는 눈꺼풀의 깜빡거림으로 자기의 뜻을 전달한 것이지요. 그래도 ‘눈꺼풀 깜빡거림으로 단순한 기본적 의사소통이 아닌 이런 책까지 쓸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지요?

 

여성편집자인 클로드 망디빌이 보비 앞에서 알파벳을 하나하나 짚어나갑니다. 그러다가 어느 알파벳 앞에서 보비가 눈을 깜빡거리면 그 글자를 종이에 적습니다. 그리고 다시 알파벳을 짚어나가다가 다시 보비가 어느 글자 앞에서 눈을 깜빡거리면 그 글자도 종이에 적습니다. 이런 식으로 단어 하나를 완성하고, 계속하여 다른 단어를 완성하고 또 이런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 하나를 완성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장이 쌓여 글이 모습을 갖추는 것이지요. 와! 정말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겠지요? 이렇게 하여 보비와 클로드는 하루에 반쪽 분량의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5달 동안 보비가 20만 번 이상 눈을 깜빡거려 완성한 책이 바로 《잠수복과 나비》입니다.

 

정말 엄청난 끈기와 노력을 기울여 이 하나의 책이 완성된 것입니다. 정말 이렇게 나온 책 《잠수복과 나비》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런데 책 제목이 왜 《잠수복과 나비》일까요? 보비는 겨우 눈 하나만 깜빡거릴 수 있는 자신이 마치 잠수복에 갇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스킨스쿠버용 잠수복이 아니라 머구리 잠수복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런 잠수복에 갇혀 있는 보비는 하늘을 팔랑팔랑 날아가는 나비를 꿈꾸었겠지요? 그래서 책 제목을 《잠수복과 나비》라고 한 것입니다.

 

보비는 이 책의 완성을 자신 인생의 마지막 작업으로 온 힘을 기울였는지, 책이 완성되고 얼마 안 되어 잠수복을 벗고 한 마리 나비가 되어 저세상으로 날아갔습니다.

 

이런 눈물겨운 과정을 거쳐 세상에 태어난 책이니 글 내용은 차치하고 그 자체만이라도 사람들에게 얼마나 감동을 주었겠습니까? 더구나 잘 나가던 《엘르》 편집장이 하루아침에 잠수복에 갇힌 신세가 되어 나온 글이라고 하니, 사람들의 이목도 크게 끌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잠수복과 나비》는 프랑스 출판 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개 나라에 번역되어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습니다. 보비는 《잠수복과 나비》에서 그동안의 자기의 삶을 돌아보고, 잠수복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럼 책으로 들어가 보비가 힘들게 눈꺼풀을 깜빡거리며 써내려 간 글 몇 가지를 볼까요?

 

‘바퀴의자’라는 글에서 보비는 드디어 바퀴의자(휠체어)에 실려서라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던 날에 대해 말합니다. 보비는 재활의학자가 이젠 바퀴의자를 타도 되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최후의 선고처럼 들렸답니다. 이젠 더는 회복은 불가능하고 그나마 바퀴의자에 태워져 다른 사람들이 밀고 다니는 정도에만 만족해야 한다는 선고로 들린 것이겠지요.

 

그래서 보비는 이를 ‘원자폭탄이 터진 것만큼 눈앞이 캄캄했다. 단두대의 칼날보다 더 예리한 비수가 가슴에 꽂히는 것 같았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바퀴의자에 앉아 병원 내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침대에 누이는 순간은 이렇게 묘사합니다. “세 명의 간호보조사가 나를 다시 침대에 뉘었다. 자동차의 트렁크 속으로 자기네들이 방금 살해한 훼방꾼의 시체를 억지로 쑤셔 넣는 추리 영화 속의 갱들이 생각났다.” 이제 남은 삶은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고 하는 보비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옵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보비가 입원해 있는 병원은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인 외제니 황후의 후원으로 세워진 병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는 외제니 황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이 있고, 황후의 흉상도 있습니다. 보비는 바퀴의자에 앉아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황후의 흔적을 만나는 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외제니 황후가 이 병동 저 병동을 돌아다닐 때, 나는 조잘대는 여인 수행부대 틈에 끼여 눈으로는 황후의 노란 리본이 달린 모자와 태피터(결이 고운 얇은 평직물) 양산을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코로는 황후의 몸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향수의 내음을 즐기곤 하였다. 어느 바람이 몹시 불던 날에는 황후에게로 다가가, 굵은 새틴(광택이 나고 매끄러운 옷감) 줄무늬가 진 하얀 치마의 주름 사이로 내 머리를 파묻기도 했다. 생크림처럼 보드랍고 새벽이슬처럼 신선한 느낌이었다.

 

황후의 흔적을 만날 때를 마치 눈앞에 황후가 있는 듯이 표현하네요. 처음 책을 펴들 때 저는 지레짐작으로 잠수복에 갇힌 한 비참한 남자의 우울한 독백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보비가 황후의 흔적을 만나는 장면을 이렇게 멋진 그림으로 재치 있게 표현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보비는 황후의 유물이 들어가 있는 진열장을 보다가 진열장 유리에 비친 한 낯선 남자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진열장 유리에 비친 그 사나이의 모습은 마치 석탄독에 빠졌던 것처럼 거무튀튀했다. 입은 비뚤어지고, 코는 울퉁불퉁한데다가 머리카락은 제멋대로 곤두섰고, 시선마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한쪽 눈은 꿰매져 있었고, 나머지 눈은 흡사 카인의 눈처럼 커다랗게 열려 있었다.

 

누군지 아시겠지요? 예! 보비가 바로 처음으로 쓰러진 뒤의 자기 모습을 본 것입니다. 보비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잠시 동안 나는, 이 가엾은 피후견인이 바로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뚫어져라 그를 응시했다. 바로 그 순간 설명할 수 없는 희열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저 내가 몸은 마비되고 말도 못 하는 데다가 아무런 기쁨도 느낄 수 없이 말미잘처럼 흐느적거리는 몸을 이끌고 귀양살이를 하는 보잘것없는 처지인 줄로만 알았는데, 몰골까지 이렇게 끔찍할 줄이야. 나는 신경질적으로 미친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운명을 바꿔 놓은 그날의 사고 이후, 줄곧 내가 감당해야 했던 불운을 농담으로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외제니 황후는 나의 이 같은 발작적인 웃음에 처음엔 몹시 당황했으나, 곧 전염이 되었다. 우리는 눈물이 날 정도로 함께 웃어댔다.

 

보비가 자신의 몰골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처참한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런 자기 모습을 이렇게 표현할 줄 아는 보비! 당신 멋쟁이야! ‘당신 멋쟁이야!’라는 이 글을 보았을 때 처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제 마음은 쓰렸습니다. 이런 멋진 사나이가 잠수복에 갇혀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뒤를 이으면서 마음이 쓰렸던 것이지요.

 

책에는 자기 아들, 딸 이야기도 나옵니다. 보비의 딸 셀레스트는 밤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빠를 위해 기도합니다. 보비는 딸과 자신이 잠드는 시간이 거의 같으므로, 자기는 밤마다 자기를 악몽으로부터 지켜주는 신비스러운 기도 소리와 더불어 꿈의 나라로 향한다고 하는군요. 보비의 아들 테오필은 병원에 왔을 때 아빠와 교수형놀이를 합니다. 단어 맞추기 놀이의 일종인 모양인데, 보비는 아들과 놀이하는 순간의 기분을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나는 놀이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슬픔이 파도처럼 몰려온다. 내 아들 테오필 녀석은 50cm밖에 안 되는 거리를 두고 얌전히 앉아 있는데, 나는 그 아이의 아빠이면서도 손으로 녀석의 숱 많은 머리털 한번 쓸어줄 수도, 고운 솜털로 뒤덮인 아이의 목덜미를 만져 볼 수도, 또 부드럽고 따뜻한 아이의 작은 몸을 으스러지도록 안아 줄 수도 없다. 이런 기분을 무어라고 표현해야 할까? 극악무도한? 불공평한? 더러운? 끔찍한? 순간적으로 나는 그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다.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리고, 목에서는 그르렁거리는 경련이 터져 나와 테오필을 놀라게 한다. 걱정 마, 이 녀석아, 너를 사랑한다.

 

아! 정말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사랑하는 아들을 바로 앞에 두고도 안아볼 수도,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는 보비의 그 심정, 그 보비의 심정이 저 역시 아들을 둔 아빠의 심정으로 그대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보비는 《잠수복과 나비》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이 낯익은 풍경을 대하며, 나는 막막한 심정이 되어 생각에 잠긴다. 열쇠로 가득 찬 이 세상에 내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는 없는 것일까? 종점 없는 지하철 노선은 없을까? 나의 자유를 되찾아 줄 만큼 막강한 화폐는 없을까? 다른 곳에서 구해 보아야겠다. 나는 그곳으로 간다.

 

보비는 15달 동안 잠수복에 갇혀 있으면서 자기의 잠수복을 열어 줄 열쇠를 생각했지만, 이 세상에서는 끝내 그런 열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열쇠를 찾아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는군요. 자기의 죽음을 예견한 것일까요? 보비는 책을 끝내고 얼마 안 되어 그 열쇠를 찾아 다른 곳으로 갑니다.

 

보비 선생! 그곳에서는 열쇠를 찾았지요? 그래서 지금은 당신을 옥죄던 잠수복을 열어젖히고 자유로운 나비로 그곳을 날고 있겠지요? 한쪽 눈꺼풀밖에 움직일 수 없는 그 절망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잠수복과 나비》를 세상에 남겨준 당신! 그런 당신으로 인하여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의 저도 당신의 고귀한 기록을 볼 수 있었네요. 보비 선생!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