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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하얼빈에 울려퍼진 총성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 안중근, 하얼빈 11일간의 기록》, 한미경, 현암주니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1909년 10월 26일 아침 9시 30분경, 하얼빈역에서 ‘대한국 만세’를 뜻하는 ‘코레아 우라!’가 울려 퍼졌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의 외침이었다. 깊은 총상을 입은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는 힘없이 쓰러졌다.

 

하얼빈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이토는 즉시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총상이 워낙 깊어 30분 만에 숨을 거뒀다. 안중근은 도망치지 않고 순순히 체포되어 러시아 헌병대 파출소로 끌려갔다. 이로써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은 세계 전역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책, 《코레아 우라-안중근, 하얼빈 11일간의 기록》은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보낸 11일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거사가 있었던 10월 26일을 중심으로 10월 22일부터 11월 1일까지, 11일간 벌어진 사건들을 숨 가쁘게 담아낸다.

 

 

그리고 하얼빈 의거 이후 뤼순에서 1910년 3월 26일 처형당할 때까지, 144일 동안의 이야기도 다룬다. 보통 역사책에서는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는 사실만 나올 뿐, 그 전후의 이야기는 생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 책은 그 의거의 자초지종을 누구나 알기 쉽게 다뤘다는 점에서 값어치가 높다.

 

안중근은 처음부터 이토를 처단할 마음이 확고했다. 비록 그를 처단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세계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알리고 다음 세대에 독립의 열망을 심어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p.26)

“저들은 군함 운요호를 타고 강화도에 쳐들어올 때부터 총칼을 앞세웠소. 우리나라를 통째로 삼키려고 마음먹은 자들이오. 대한 의군 참모중장으로서 나는 반드시 이토를 포살하겠소! 그것은 독립의 씨앗을 심는 일이오! 그러면 지금 당장 나라를 빼앗긴다 하더라도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독립의 열망이 싹을 틔울 거요. 만약 이토를 그냥 살려둔다면 우리나라는 아무런 뜻도 의지도 없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나라가 되고 말 거요.”

 

물론, 그를 아끼던 동지들은 그를 잃을 것을 염려했다. “이 일로 우리가 안 동지를 잃을 수도 있다.”라며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 그는 “의로운 일로 죽는 것은 영원히 사는 것과 같다.”라며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큰일에는 그만큼 위험이 따르는 법이다. 일은 하마터면 시작하기도 전에 틀어질 뻔했다. 이토가 채가구를 거쳐 하얼빈으로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채가구에 대기하던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은 이토가 채가구에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고 판단, 안중근 홀로 급히 하얼빈으로 갔다.

 

 

채가구에 남아있던 우덕순과 조도선은 방문이 잠겨있는 것을 보고 뭔가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그들에게 기차 일정을 말해준 역무원이 수상쩍게 여겨 신고한 것이다. 다행히도 안중근은 이미 하얼빈으로 떠난 뒤였지만, 채가구에서 일을 도모하려 했던 그들은 꼼짝없이 갇힌 신세가 되었다.

 

한편, 안중근은 우덕순과 조도선이 채가구에서 이토를 처단하지 못했음을 직감하고 마지막 점검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가 왔을 때 침착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p.60)

순식간에 해낸 일이었어요. 조국에 쳐들어와 조국 땅을 짓밟은 원수를 처단한 거예요. 대한 의군 참모중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한 거지요. ...(줄임) 안중근은 권총을 하늘로 던졌어요. 그리고 러시아 말로 목청껏 외쳤어요.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이 말은 ‘대한국 만세! 대한국 만세! 대한국 만세!’란 뜻이에요. 당시 하얼빈은 러시아의 영토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러시아 말로 하여 세계가 알아듣도록 한 거예요.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경이었어요.

 

안중근의 거사는 세계를 뒤흔들었다. 중국은 이 일을 가장 빠르고 열렬하게 기사로 다뤘다. 중국 근대의 대표적 지식인 양계초는 안 의사의 재판정에 나가 직접 참관하면서 48연 96구로 된 시를 남길 정도였고, 그 시에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질긴 등나무를 자르다.’라는 표현도 있었다. 가을바람은 안중근 의사, 등나무는 이토 히로부미를 한자로 표기한 ‘이등박문’을 이르는 말이었다. 양계초는 죽어서도 안 의사의 무덤 곁에 묻히고 싶다고 할 정도로 그를 깊이 흠모했다.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을 위해 변호인단이 크게 꾸려졌지만, 일본이 변호를 허가하지 않아 정작 그들은 변호다운 변호도 하지 못하고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봐야만 했다. 그러나 안중근은 혼자 변론하면서도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재판의 불공정성을 비판하고, 이토의 죄목 열다섯 가지를 분명하게 따지는 등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어차피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보여주기식 재판 끝에 일본 법정은 사형을 선고했다. 이 재판을 참관했던 영국 기자 찰스 모리머는 1910년 4월 16일 자 영국신문 <그래픽>에서 이렇게 평했다.

 

(p.91)

‘이 세계적 재판의 승리자는 안중근이다. 그의 입을 통해 이토는 한낱 파렴치한 독재자로 전락했다. 그는 이미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준비 정도가 아니고 기꺼이, 아니 열렬히 귀중한 자신의 삶을 포기하려고 했다. 그는 마침내 영웅의 왕관을 손에 들고 늠름하게 법정을 떠났다.’

 

놀라운 것은 안중근의 의기와 인품이 일본인 검찰관과 간수마저 감복시켰다는 사실이다. 안중근을 취조한 미조부치 타가오 검찰관을 비롯해 그를 감시하는 일을 맡았던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을 깊이 인정하고 존경했다. 미조부치는 일본 동경제국대학을 나온 우수한 인재로, 안중근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았지만 그를 신문하고 나서 진심으로 우러르게 되었다.

 

 

또한 그를 감시하던 간수 지바 도시치는 안 의사에게 글을 써 달라고 부탁하여 사형 직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라는 뜻의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라는 유묵을 받았다. 지바는 그 글을 가보로 간직하며 안중근의 위패를 모실 만큼 그를 존경했다. 세상을 떠나면서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안 의사의 위패는 모셔야 한다.’라고 자손에게 당부했고, 이 유언을 따라 증손자인 지바 세이치는 지금도 안중근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지바가 살았던 미야기현에는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사담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청운사’라는 절에 안중근의 비석까지 세웠다. 일본 류코크대학 법과대학원 교수였던 일본의 변호사 도츠카 에츠로는 이렇게 말했다.

 

(p.115)

“의군 참모중장으로 일본인을 죽인 것은 범죄나 테러가 아닙니다. 전투입니다. 정당방위이며 무죄입니다. 그 당시 국제법을 보면 일반인도 의군으로서 전쟁할 수 있다고 쓰여 있습니다.”

 

비록 안중근은 일본의 훼방으로 변변한 변호조차 받지 못했지만, 그의 높은 의기와 혜안, 인품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안중근의 영원한 변호인단이자, 그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가 아닐까.

 

사실 그의 거사도 일본의 강성한 국력 앞에 큰 변화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거사가 일어난 1909년에서 36년이 더 지난 후에야 독립은 찾아왔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만약 그 거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세계인의 기억 속에 잊혔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우리에게도 드높은 의기와 투쟁의지가 살아있음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그의 거사는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그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특히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이 한 줄로 1909년 그날을 기억하고 있는 이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