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죄와 벌. 하늘이 열리고 인간이 무리를 지어 살기 시작한 이래 ‘죄와 벌’은 늘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형벌은 죄를 짓는 자를 벌주거나 권력자가 약자를 탄압하는 수단이었다. 형벌을 잘 들여다보면 당시 사회가 어떤 것을 금기시했는지, 어느 정도로 성숙했는지 잘 알 수 있다. 우리 역사 속 형벌을 알기 쉽게 풀어낸 이 책, 장경원의 《네 죄를 네가 알렷다!》는 ‘우리 역사 속 죄와 벌’이라는 부제처럼, 우리 역사 속에 나타난 형벌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때로는 그 잔혹함에 놀라고, 때로는 먼 옛날인데도 죄인의 인권을 배려하는 모습에 놀라게 된다. 처음에 신라의 형벌 제도를 이어받은 고려는 중국 당나라 형벌 제도를 받아들여 보완했고, 11세기 문종 때는 우리 형편에 맞게 크게 손질했다. 형벌에 관련된 일은 ‘형부’라는 관청에서 다루었고, 감옥을 관리하는 일은 ‘전옥서’에서, 죄지은 벼슬아치들은 따로 ‘어사대’라는 기구에서 맡았다. 고려의 다섯 가지 형벌 제도는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이었다. 태형과 장형은 매를 치는 것이고, 도형은 매질에 힘든 일까지 더한 것, 유형은 유배를 보내는 것, 사형은 죽이는 것이었다. 이 기본적인 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여행은 사람을 깊어지게 한다. 남도여행을 떠난 40인의 디자인 이끄미(리더)들도 그랬다. 남도 구석구석을 다니며 다양한 문화유산을 접하고, 이를 인문학적 감성으로 해석하면서 영감을 얻었다. 디자인하우스에서 펴낸 이 책, 《남도가 정말 좋아요》는 우리나라 디자인 이끄미 40인이 각각 40군데의 남도 여행을 다녀온 기록을 엮은 책이다. 디자이너들이 모여서 ‘40인의 의자’라는 모임을 결성해 매주 한 번 인문학을 공부했고, ‘남도’를 정신적으로 가장 윤택한 땅이자 한반도에서 가장 미학적인 고장이라 여겨 40군데로 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저마다의 감성으로 본 남도는 풍요롭다. 땅은 넓지 않아도, 켜켜이 쌓여있는 인문학의 두께는 넓이를 압도한다. 풍경마다 품고 있는 이야기가 끝이 없고 알아갈수록 매력적인 고장이 남도이다. 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곳은 해남 윤씨 고택의 사랑채, 녹우당이다. 해남 윤씨 고택은 윤효정이 당시 해남 땅의 부호였던 해남 정씨와 혼인하면서 자리를 잡았고, 윤선도 대에 이르러 사랑채를 옮겨지어 완성했다. 이 사랑채는 어린 시절 윤선도에게 학문을 배운 효종이 왕위에 오른 뒤 하사한 집에 있던 것으로, 윤선도가 효종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보 의사. 한평생 우직하게 환자를 위해 살다 간 의사 장기려의 별명이다. 평생 재물이나 이익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직 환자를 돌보며 살았던 그를 사람들은 ‘바보 의사’라 불렀다. 장기려는 이를 오히려 자랑스러워하며 남들이 자신에게 바보라 한다면 성공한 삶이라 여겼다. 박그루가 쓴 이 책, 《바보 의사 장기려의 청진기》는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장기려’라는 인물을 알기 쉽게 풀어 쓴 그림책이다. 1995년, 8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인술을 베풀며 큰 업적을 남긴 그의 일생을 톺아볼 수 있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몸이 유난히 약했고, 배탈을 치료하느라 배꼽에 뜸을 너무 떠 배꼽 모양이 독특해질 정도였다. 할머니는 장기려가 튼튼히 자라라고 ‘금강석’이라고 부르며 늘 손자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다. 아픈 사람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인지, 그는 의술로 사람들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외과 의사가 되었다. 공대 시험에 떨어지고 어려운 집안 형편을 생각해 학비가 저렴한 경성의전에 들어간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한 끝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정약전과 정약용. 경기도 마재 땅에서 다섯 형제 가운데 둘째와 넷째로 태어난 둘은 어릴 때부터 우애가 남달랐다. 형제끼리도 더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둘은 유난히 정이 두터웠고 공부를 좋아하는 성향도 잘 맞았다. 홍기운이 쓴 이 책, 《편지로 우애를 나눈 형제, 정약전과 정약용》은 형제이자 서로를 알아주는 벗이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겨울밤 화롯불 앞에서 듣는 것처럼 따뜻하게 풀어내는 책이다. 주막에 묵던 한 선비가 주막집 형제가 티격태격하는 것을 보고 ‘정 씨 형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두 사람은 아버지가 화순 현감으로 있을 때 근처의 절에 머물며 함께 공부했다. 그때 정약전이 읽은 책이 《서경》, 정약용이 읽은 책이 《맹자》였다. 함께 공부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여길 만큼 뜻이 잘 맞았기에, 서로 모르는 것을 묻고 답하며 즐겁게 공부했다. 둘 가운데 먼저 벼슬에 나간 이는 아우 정약용이었다. 처음에는 벼슬에 뜻이 없던 정약전도 아우가 임금을 섬기려면 벼슬길에 올라야 한다고 몇 번이나 설득해 조정에 출사했다. 함께 벼슬길을 걷던 형제는 정조가 승하하면서 나란히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현판은 참 매력적인 소재다. 건축물의 이름을 써 놓는 현판에는 건축물의 주인이나 당대 사람들이 지향했던 이상향과 가치관이 응축되어 있다. 그들이 지향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도 되거니와, 글씨도 훌륭하여 예술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한문학 전공자인 박진형이 쓴 이 책, 《멈추면 보이는 한 줄의 역사, 현판》은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현판 15개를 역사적 이야기를 곁들여 풀어낸 책이다. 지은이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모으고, 한문으로 된 많은 문헌을 해석하여 풍부한 설명을 곁들였다. 책에 소개된 현판은 서원에 임금이 써서 내린 어필 현판부터 한옥으로 된 성당에 걸린 현판, 송시열과 같은 대학자가 쓴 현판, 종갓집에 걸린 현판 등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현판 두 개는 순천 선암사에 걸린 ‘대복전(大福田)’ 현판과 남양주 봉선사에 있는 대웅전 첫 한글 현판, ‘큰법당’이다. 전남 순천의 선암사에 있는 ‘대복전(大福田)’ 현판은 순조가 직접 쓴 것이다. 순조의 탄생은 무척 특별했다. 정조가 문효세자를 병으로 잃고 후사를 근심하다가, 특별히 절에 세자 탄생 기도를 부탁해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이기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국에는 참 다양한 색이 있었다. 뚜렷한 사계절과 음양오행 사상에 따라 방대한 색깔이 있었지만, 지금 널리 알려진 색은 오방정색, 그리고 간색 정도다. 아름다운 전통 색상이 잘 전승되지 못하고 활용도가 많이 낮았던 까닭이다. 이재만이 쓴 이 책, 《한국의 전통색》은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연구하여 펴낸 《한국전통표준색명 및 색상 제2차 시안》에 수록된 결과물을 바탕으로 한국의 90가지 전통색을 차례차례 보여주는 책이다. ‘이런 색이 있었나’ 싶을 만큼 다채로운 색깔이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다. 무려 90가지 빛깔을 찾아낸 비결은 한국의 복식과 전통공예, 자연환경, 문화유산, 광물에서 폭넓게 자료를 수집한 덕분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절요》, 《규합총서》 등 옛 문헌에 수록된 색채에 관한 기록을 발췌하여 함께 담았다. 시대별로 색채를 사용한 양상을 보면,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에는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이 주로 쓰였지만, 고려시대에는 중후하고 둔탁한 느낌의 색채가 유행했다. 책에 실린 색들은 적색계, 황색계, 자색계, 청록색계, 무채색계의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끄는 색상 몇 가지를 소개한다. #호박색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김대건.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천주교가 모진 박해를 받던 시기, 목숨을 걸고 청나라로 건너가 끝내 신부가 되는 꿈을 이뤘으나 너무 일찍 순교하여 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인물이다. 이 책,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은 이런 그의 생애를 간결하지만 친절하게 일러주는 책이다. 어린이책이지만 김대건이라는 한 신부의 생애를 전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어 천주교 신자가 아니라도 관심 있게 살펴볼 만하다. 김대건 신부는 1821년 충청도 솔뫼에서 태어나 어릴 때 첩첩산중으로 이사했다. 마을 이름이 ‘골짜기에 있는 뱀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의 골배마실이었다. 골배마실에 사는 사람들은 땅이 척박한 가운데 농사도 잘 안되어 늘 가난했지만, 천주교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깊은 산속으로 숨어든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항상 신부님이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프랑스에서 모방 신부가 마을에 오자 온 마을은 잔칫집 분위기로 바뀌었다. 김대건도 이때 세례를 받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가졌다. 모방 신부를 따르는 이들은 늘어갔지만, 조선말을 잘 모르는 신부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는 어려웠다. 교우들은 이것저것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불긍세행, 종루대덕 (不矜細行 終累大德)’ 영ㆍ정조 시대 사람으로 빼어난 문장가로 이름 높은 이덕무가 지은 《사소절(士小節)》에 나오는 문구다. ‘긍(矜)’은 소중하게 지킨다는 뜻이고, ‘누(累)’는 폐를 끼치거나 그릇되게 한다는 뜻으로 ‘작은 행실을 조심하지 않으면 결국 큰 덕을 허물게 된다’라는 뜻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처럼, 사소한 일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끝내 일을 그르치게 된다. 이덕무는 선비들이 이를 알고 항상 경계하길 바랐던 것 같다. 그 시대에 도덕과 예절이 무너져 사회 전체가 혼란스러워지는 현실을 안타까이 여기고, 선비가 지켜야 할 소소한 예절의 소중함을 깨우치기 위해 《사소절》을 썼다. 지은이 정성기는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많은 소설과 평전을 쓴 바 있고, 특히 ‘사소절’을 접한 뒤 작은 예절의 중요성을 일깨우려 했던 이덕무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해 이 책, 《양반가문의 쓴소리》를 집필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선비의 소소한 예절과 몸가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되짚고,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담았다. 이덕무는 예절의 기본 요소로, 내적으로 갖춰야 할 네 가지 마음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저고리. 흔히 ‘한복’을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복식이다. 저고리와 치마는 누구나 쉽게 떠올릴 만한 조합이고, 특히 상의인 저고리는 그 변천사 자체가 하나의 복식사가 될 만큼 변화무쌍한 발전 양상을 보였다. 한복 패션 디자이너 김혜순이 쓴 이 책,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는 ‘저고리’에 집중하여 마치 화보집처럼 각종 저고리를 조명한 책이다. 지은이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사상, 미감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표적인 복식이 바로 저고리’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지은이는 ‘저고리 600년 변천사’라는 전시회를 3년에 걸쳐 기획, 2003년 선보인 바 있다. 이때 복원하고 재현한 70여 점의 저고리를 이 책에 담아, 저고리에 담긴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습관, 문화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한자어로는 ‘적고리(赤古里)’라고 표기하는 저고리는 포(袍)와 견주어 길이가 짧은 윗도리를 뜻한다. ‘적고리’라는 표현은 세종 때 처음 쓰였으며, 태종의 비 원경왕후의 《선전의(選奠儀)》에 치마를 뜻하는 ‘쳐마(赤亇)’라는 말과 함께 등장한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저고리의 종류도 정말 많다. 봉제기법에 따라 안감을 넣은 겹저고리와 한 겹으로 만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동의’는 당당하게 우뚝 선 우리나라 의학을 뜻합니다. ‘보감’은 보배로운 거울이란 뜻이지요. <동의보감>은 지금껏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보배로운 거울이 되었답니다. 우리 의학, 동의(東醫)! 중의학이 지배하던 조선 중기, ‘동의’라는 개념은 상당히 생소한 것이었다. 중국식 처방과 중국식 약재로 병을 치료하던 때, ‘우리식’ 처방과 약재를 담은 의학백과 《동의보감》은 획기적인 의서였다. 이지현이 쓰고 원혜영이 그림을 그린 이 책, 《동의보감》은 우리식 의학백과를 펴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으며,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는지, 재미있게 보여준다. 그림책이라 쉬우면서도 알차게 내용을 담고 있어 아이들에게 우리 의학의 매력을 느끼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의서들은 대부분 중국책이라 약재 이름이 모두 중국 이름으로 되어 있어 불편했어요. 우리나라에서 흔한 도라지가 중국 의서에는 ‘길경’이라 적혀 있어서 도라지를 옆에 두고도 약재로 쓰지 못하는 일이 많았답니다. 또한 약재를 중국에서 들여와 써야 해서 약값도 비쌌어요. 가난한 백성들은 아파도 의원을 찾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우리 백성이 중국 사람과 달라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