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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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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년, 은혜의 빛으로 온 세상 물들이길

《제주의 빛 김만덕》, 글 김인숙, 그림 정문주, 푸른숲주니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만덕의 성은 김 씨니 탐라국 양가의 딸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탁할 곳이 없어서 기생집으로 가게 되고…(중략) 번암 채상국(채제공)이 78세에 충간의 담헌에서 쓰노라.” -머릿말 중에서- 김만덕.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이름이다. 흔히 우리나라 역사 속 여성 인물을 이야기할 때 신사임당, 허난설헌, 유관순 등을 첫손에 꼽는 사람은 많아도, 김만덕을 떠올리는 이들은 여전히 드물다. 그러나 김만덕은 우리나라 역사 속 어떤 인물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해낸, 추사 김정희의 표현 그대로 ‘은혜의 빛으로 온 세상을 물들인’ 여인이다. 그녀는 4년 동안 이어진 혹독한 기근 가운데 자신의 전 재산을 풀어 곡식 오백 석을 마련했고, 죽어가는 수많은 백성을 살려냈다. 이 책 《제주의 빛 김만덕》은 그런 김만덕의 삶을 쉽게, 그러나 깊이 있게 풀어낸 책이다. 마을을 휩쓸고 간 역병으로 갑자기 고아가 된 그녀의 어린 시절부터 모두가 칭송하는 ‘만덕 할머니’가 되기까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그녀의 삶을 오롯이 담아냈다. 그녀는 본디 기생과는 관련이 없는, 양인의 딸이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자상한 부모, 오라버니 만적, 동생 만재와

풍경 따라 바람 따라, 제주를 누비다

《풍경 따라 떠나는 제주기행》, 현길언 글ㆍ강부언 그림, 솔과학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바람처럼 그는 오늘도 섬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무심히 긴 수평선, 바다를 찌르는 곶들, 방풍을 위해 수고로이 쌓은 끝없는 돌담, 앙상한 해송들, 마지막 남은 작은 초가집, 꽃이 다 날아가버린 황량한 억새 들판, 묵묵한 오름들, 그리고 무엇보다 구름들, 아니 바람결, 바람이 헤집어 놓은 구름장 사이로 쏟아지는 하늘빛을 그는 만난다. - 머릿말중에서 - 그렇다. 이 책은 화가 강부언이 섬 이곳저곳을 누비며 그린 그림에, 작가 현길언이 글을 덧댄 한 폭의 시화다. 강부언은 ‘삼무일기(三無日記)’라는 표제를 내걸고 그림을 그려왔다. 도둑, 거지, 대문이 없다는 뜻의 ‘삼무(三無)’는 제주도 사람들의 강한 자생력과 포용력을 보여주는 제주 특유의 삶의 방식이다. 강부언은 이런 삶 속에서 느낀 그날그날의 감상을 화폭 위에 거침없이 담아냈고, 현길언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시를 읊듯 그에 어울리는 글을 풀어냈다. 그 가운데 특히 마음을 울리는 풍경 몇 폭을 소개해본다. # 올레길 제주 걷기 열풍을 불러왔던 ‘올레길’. 올레길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말이지만, 그 뜻을 정확하게 아는 이는 뜻밖에 드물다. 예로부터 제주 집은 길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자

어려운 문화재 이름, 이제는 알고 불러야 할 때

《친절한 우리 문화재 학교》, 이재정(글), 신명환(그림), 길벗어린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청자상감국화모란문과형병, 연가7년명금동여래입상. 우리나라 문화재 이름은 참 어렵다.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어지간한 어른도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밑줄 좍좍 그으며 외우기만 했지, 문화재 이름이 왜 그렇게 불리는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탓이다. 그래서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한자어로 된 문화재 이름을 친절하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역사는 재미없는 암기과목’으로 억울한 낙인이 찍히는 일도 뚜렷이 줄었으리라. 사실 그 뜻을 이해하고 나면, 문화재가 걸어온 길과 지금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더는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반가사유상 두 점, 국보 78호와 국보 83호만 해도 그렇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들었을 때 어른이라면 뜻을 대강이야 짐작은 하겠지만 아이들은 무슨 뜻인지 당최 알기 어렵다.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p.143-144) 반가사유상은 무슨 뜻일까요? 반가(半跏)는 반만(半-반 반) 책상다리(跏-책상다리할 가)를 했다는 뜻입니다. 사유(思惟)는 깊은 생각(思-생각 사, 惟-생

편지로 인생을 가르친, ‘열혈아빠 정약용’

《아버지 정약용의 인생강의》, 오세진, 홍익출판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오늘날 대대로 높은 벼슬아치 집안의 자제들이 관직을 얻고 가문의 이름을 떨치는 것은 평범하고 우매한 자제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날 너희는 폐족의 자식들이다. 만약 폐족이라는 어려움을 딛고 잘 처신하여 이전보다 더 훌륭한 가문을 만든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놀랄 만하고도 훌륭한 일일 것이다. (p.10) ‘폐족의 자식들’. 칼날 같은 이 표현이 폐부를 찌른다. 폐족(廢族)은 조상이 큰 죄를 지어 그 자손이 벼슬을 할 수 없게 된 족속을 말한다. 그랬다. 걸출한 당대의 학자이자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전도유망한 관료, 다산 정약용은 임금이 바뀌자 한순간에 폐족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배신과 상처도 컸다. 자신이 총애를 잃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벗들이 정적으로 돌변, 자신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던 것이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머나먼 강진으로 유배되어 앞날을 기약할 수 없게 된 마흔 살 정약용은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학문에 손을 놓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학자 정약용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천 리 밖에 있는 자신을 탓하며 자식교육에도 손을 놓았다면, 가문에 흐르는 유장한

이 시대 검사들에게 죽비를 치는 이준 열사

《양심을 지킨 사람들》, 김형민, 다른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시대를 뒤흔든 양심선언! 어느 시대나, 양심을 깨우는 죽비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도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바른말, 옳은 행동을 하는 이들이 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보며 미쳤다고들 한다. 그냥 눈 질끈 감고, 입 한번 닫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뭐하러 고생길을 자처하냐고, 누구는 그게 틀린 줄 몰라서 가만히 있는 줄 아느냐고 반문한다. 이들의 용기는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의 객기 정도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럼 그는 과연 모두를 각성시킨 그 외침은, 부질없는 만용이었을까. 설사 그 뒤로 바뀐 게 없더라도, 그들이 이건 아니라고 외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책의 지은이, ‘산하’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김형민 PD는 그들이 용기를 낸 덕분에 역사가 퇴보하지 않고 여기까지라도 올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책 《양심을 지킨 사람들》에서 교과서에도 잘 나오지 않는, 양심을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라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넘나드는 시대도 다양하다. 책에 소개된 15인 가운데는 이준이나 남자현, 박종철처럼 비교적 알려진 이들도 있고, 검군이나 김성

소년과 어른 – 역사 속 7인 성장 분투기

《소년, 어른이 되다》 설흔, 위즈덤하우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청춘(靑春)! 푸르디푸를 것만 같은 ‘청춘’이라는 시절. 모두가 한 번쯤 거쳐 가는 그 축복 같은 시절. 청춘을 지나며 소년은 어른이 된다. 이 젊은 날들은 모든 것이 희망차고, 따뜻하고, 순조롭기에 ‘푸른 봄’이라 불리는 걸까. 그러나 청춘을 지나온 이라면 알 것이다. 그 시기가 그렇게 푸르지만은 않다는 것을. 현실과 이상의 괴리, 스스로에 대한 회의,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실망. 청춘은 이 모든 것이 점철된 채, 인생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을 한껏 안고 힘겨운 발걸음을 떼는 시기다. 설흔이 쓴 이 책 《소년, 어른이 되다》에 실린 7명의 소년도 그랬다. 목차만 훑어봐도, 이 소년들을 수식하는 형용사는 범상치 않다. 홀로 바다를 건넌 소년 최치원, 과거에 거듭 실패한 소년 이규보, 학자와 관리 사이에서 방황한 소년 이황, 아버지를 원망한 소년 이이, 죽음을 일찍 깨달은 소년 허균, 부당한 차별에 눈물을 쏟은 소년 박제가, 신경증에 시달린 소년 박지원. 이들에게 청춘은 마냥 푸른 봄날은 아니었다. 아니, 푸르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가까웠다. 어쩌면 인생을 겨울부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 남자의 사색, 나라를 구하다

《나를 지키며 사는 법》, 김종원, 그린하우스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사색(思索).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 사색이 주는 느낌은 고요하고, 평안하다.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지는 일은, 유유자적 한가로울 때 할 수 있는 일일 것만 같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고, 나라를 구한 위대한 사색은 치열한 고통의 바다를 한 조각배에 의지해 건너는 것과 같았다. 그 위태로운 항해 끝에 나라를 구할 계책이 나오고 백성을 살릴 방도가 나왔다. 이 책 《나를 지키며 사는 법》은 ‘사색 전문가’로 활동하며 고전이나 역사 속 인물들의 위대한 사색을 소개하는 작가 김종원이,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읽으며 장군이 걸었을 사색의 길을 ‘사색한’ 책이다. 책의 부제 ‘삶을 괴롭히는 고통의 바다를 건너는 5가지 힘’에서 알 수 있듯, 이순신 장군이 파도와 같은 고통의 바다를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었는지, 작가 스스로 깊은 사색을 통해 찾아낸 다섯 가지 힘을 실었다. (p.16)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위대한 이순신의 삶의 바탕은 ‘기품’과 ‘관점’, ‘지성’과 ‘사색’, ‘인문’이었다. 사람은 보통 이 다섯 가지를 잃을 때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무너진다. 반대로 말하면, 이 다섯 가지를 추구하는 자는

나는 아버지의 특별한 딸, 혜경궁 홍씨입니다

《아버지의 특별한 딸》, 박정애, 메멘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혜경궁 홍씨. 조선에서 이 여인만큼 지극한 영화를 누린 이도 드물 것이다. 아들 정조는 수원 화성행궁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원했다. 출궁하여 환궁하기까지 여드레에 걸친 원행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신분을 빼앗기고 폐서인되거나 죽지 않으면 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왕실 여성의 신분으로, 이런 식의 외출을 해본 여성은 혜경궁 홍씨가 유일했다. 그해 봄, 혜경궁은 조선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그런 영화로운 날이 있기까지 그녀야 삼켜야 할 울분과 고뇌,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시아버지가 남편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것을 고스란히 지켜보아야 했던, 심지어 시어머니와 친아버지가 남편을 죽일 것을 종용하는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던, 조선에서 가장 기구한 팔자의 여인이 바로 그녀였다. 《아버지의 특별한 딸》 지은이는 이런 혜경궁 홍씨의 절절한 아픔과 고뇌를, 그녀가 지난날을 돌아보며 쓴 《한중록》의 각 대목과 함께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지은이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혜경궁 홍씨와 아버지 홍봉한의 관계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 – 아버지 홍봉한, 시아버지 영조,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