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부산박물관은 5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59일 동안 부산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2023년도 특별기획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을 열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역관(譯官)을 중국과의 사대(事大), 왜ㆍ몽골ㆍ여진과의 교린(交隣) 등 외교에서 주로 통역의 임무를 맡았던 관직이라고 풀이하면서 역어지인(譯語之人)ㆍ역어인(譯語人)ㆍ역인(譯人)ㆍ역학인(譯學人)ㆍ역자(譯者)ㆍ설인(舌人)ㆍ설자(舌者)ㆍ상서(象胥)로도 불리었다고 기술했다.
그렇다면 역관은 우리 역사에 있어서 종요로운 일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국내 박물관들은 여기에 눈길을 주지 않아 역관만을 다루는 전시회를 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박물관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특별기획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을 기획했고, 조선 사신단의 행차 속에서 역관의 외교적 역할과 그들의 활동이 조선 사회에 미친 다양한 이야기들을 150여 점의 유물을 통해 선보이고 있다.
특히 부산의 역사성 그리고 정체성과 연결되는 왜관 이야기, 동래(부산) 현지의 역관인 소통사(小通事)의 활약 등 관련 자료도 한자리에 모았다. 역관은 중국과 일본에 오가며, 언어 능력을 활용해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전문 지식층이었음은 익히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이번 특별전에서 새롭게 알 수 있었던 것은 역관을 수행하는 하급 통역관으로서 소통사(小通事)가 있었고, 조선 후기 조선에서 일본의 대마도주(對馬島主)에게 파견한 공식적인 외교사절로 ‘문위행(問慰行)’이 있었다는 얘기다.
전시는 ▲<이역만리, 사행을 떠나다> ▲<왜관과 부산의 역관> ▲<외교관으로 성장하다> ▲<역관 열전> 등 크게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이역만리, 사행을 떠나다>에서는 관람의 시작을 알리며 광활한 중국으로 가는 부경사행(赴京使行)과, 바다 건너 대마도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문위행(問慰行)ㆍ통신사행(通信使行) 관련 유물들을 소개한다. 특히 역관의 활약이 두드러진 문위행은 쓰시마에 파견된 실무 외교사절로, <범사도(泛槎圖)>,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朝鮮國譯官使入船之圖)> 등이 출품됐다. <왜관과 부산의 역관>에서는 조선의 일본인 거주지 왜관과 그 안에서 왜학 역관의 집무소 역할을 한 성신당과 빈일헌을 살펴본다. 또한 현덕윤ㆍ현태익 등 왜학 역관과 이들을 보좌한 동래(부산) 현지 주민인 소통사 김채길ㆍ박기종과 관련한 자료들도 볼 수 있다.
<외교관으로 성장하다>에서는 역관을 양성하는 외국어 교육 기관으로서의 사역원(司譯院)과 관련한 외국어 학습서인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 <첨해신어(捷解新語)>, 조선시대 역과(譯科) 합격자 일람인 <역과방목(譯科榜目)> 등을 전시하여 생도(生徒)에서 역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물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역관 열전>에서는 조선시대 주요 역관들을 주제별로 구성, ‘외교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다’, ‘부자로 이름난 역관’, ‘문화를 선도한 역관사가(譯官四家)’, ‘조선의 서화를 집대성한 마지막 역관’으로 조명했다. 또한 이들이 속한 중인 신분의 네트워크 속에서 문화교류 활동도 <수계도권(修禊圖卷)> 등을 통해 함께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경진년 연행도첩(庚辰年 燕行圖帖)》을 볼 수 있었는데 <경진년 연행도첩>은 1760년 11월 2일 한양에서 출발해 이듬해 4월 6일 돌아온 경진동지사행의 경과를 영조 임금이 열람할 수 있도록 만든 화첩이다. 모두 21폭으로 청초 조선과의 대외관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연경 외곽의 산해관(山海關)과 연경 내 문묘와 국자감 그리고 역대 제왕묘 등 주요 사적을 글과 그림으로 자세하게 정리한 대청(對淸) 사행 기록화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경진년 연행도첩》은 유물의 보호를 위해 5일마다 면을 달리해 공개될 예정이다.
또 눈에 띈 것은 176년 통신사 조엄을 따라 서기관으로 다녀온 성대중이 구해왔다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일본도>가 있고, 이를 모본으로 윤두서가 모사한 것으로 추측되는 해남 녹우당 소장의 <일본여도(日本輿圖)>가 전시됐다. <일본여도>는 윤두서가 일본 역사서와 지리서를 섭렵하여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시각으로 ‘타자’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 것으로 귀중한 사례라는 평가다. 이와 함께 역시 일본에서 유입된 것으로 우리식 경대에 앉힌 녹우당 소장의 ‘백동경(白銅鏡)’도 볼 수 있었다.
이밖에 중국어 교습서 《중간노걸대언해(重刊老乞大諺解)》, 한어(漢語) 회화 교재 《박통사신석언해(朴通事新釋諺解)》, 몽골어 학습교재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 일본어 학습교재 《첩해신어(捷解新語)》 등 당시 역관들이 배우던 외국어 학습서와 그 책판들이 전시되었다. 또한 역관 전시에서만 특별히 볼 수 있는 역과에 합격하여 받았던 <역과백패(譯科白牌)>도 선보인다.
아울러 이번 전시를 더욱 알차게 관람할 수 있도록 <큐레이터와의 역사나들이> 행사가 전시 기간 중 5월 19일과 6월 23일 이틀 동안 저녁 4시부터 약 30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이 행사는 당일 현장 접수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부산 범천동에서 왔다는 장연임(47, 회사원) 씨는 “대학 때 외국어를 공부하고 통역을 꿈꾸었던 사람이어서 조선시대 역관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부산박물관에서 「조선의 외교관, 역관」 특별전을 연다고 해서 와봤다. 역시 그동안 단편적으로 듣던 역관의 세계를 한 번에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당시 외국어 교습서 《몽어노걸대》, 《첩해신어》 등을 볼 수 있었던 것과 <역과백패(譯科白牌)>가 있었음을 확인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기획한 전시로, 조선시대 역관의 눈을 통해 드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하였던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방대한 외교 성과를 2023년에 되새겨 보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며,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