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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그땐 그랬지, 삶에 힘이 되는 역사 이야기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 신동욱, 포르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가 필요한 날이 있다.

옛날에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이런 상황에서 나보다 앞서 살다 간 사람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궁금해지는 때가 있다. 신동욱이 쓴 《그래서 역사가 필요해》는 그럴 때 펼쳐보기 좋은 책이다.

 

 

‘삶의 무기가 되는 역사 속 인물 이야기’라는 부제처럼, 지은이 신동욱은 자신의 삶에 놓인 수많은 문제 앞에서 고심하고, 또 노력했던 인물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예나 지금이나 ‘인생 고민’은 늘 비슷한 것처럼, 똑같이 슬퍼하고 분노하며 기뻐하는 역사 속 그들을 보노라면 시대를 뛰어넘은 동질감이 느껴진다.

 

가령, 책의 한 꼭지로 들어가 있는 제목처럼 ‘배신감과 복수심이 내 마음을 어지럽힐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작가는 성왕의 사례를 들려준다. 백제 성왕이야말로 신라 진흥왕에게 호되게 배신당한 인물이다.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배운 대로,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몰아낸 뒤 한강 유역의 땅을 수복했지만, 진흥왕이 갑자기 배신하면서 기껏 되찾은 한강 유역이 모두 신라의 땅이 되고 말았다.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서 건국한 백제는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유역의 땅을 되찾는 것이 누대에 걸친 숙원사업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수복한 천금 같은 땅을 갑작스럽게 배신당해 빼앗겼으니, 원통하고 분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성왕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성왕은 냉정했어야 했다. 그 사이 신라가 고구려와 동맹을 맺어 버렸기에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를 이중으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섣불리 복수에 나설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배신감과 복수심으로 마음이 어지럽혀진’ 성왕은 그만 무리한 결정을 하고 만다.

 

신라 경주로 향하는 요충지, 관산성 공격에 나선 것이다. 처음에는 전황이 백제에 유리해 보였다. 그러나 신라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때 성왕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아들이 전장에서 고생하는 것을 위로하고자 단 50명의 호위대만 거느리고 관산성으로 향한 것이다.

 

신라는 성왕이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성왕은 신라군의 매복 작전에 어이없게 걸려들고 만다. 성왕은 본인을 스스로 천한 노비라고 밝힌 고도의 손에 목숨을 잃는다. 성왕의 전사 소식을 접한 백제군은 순식간에 무너져 대패해 버렸다.

 

(p.174)

성왕처럼 누군가에게 이용만 당하고 배신당했다는 기분이 들 때 감정적으로 격해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격렬한 감정이 아니라 이성과 냉정함이다. 앞뒤 판단하지 않고 격정적으로 대응할수록 상황이 오히려 나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성왕의 뼈아픈 실수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이로 인해 후대에도 끝없이 복수전을 벌이다 결국 백제의 멸망으로까지 이어졌던 역사를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밖에도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박연의 이야기도 재밌다. 내가 정말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과 사회적 명성이 높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은 오늘날에도 많다. 조선 세종 시기 아악을 집대성한 큰 업적을 남긴 박연도 마찬가지였다.

 

박연은 어린 시절부터 피리를 잘 불었다. 진정 원했던 것은 음악이었지만, 양반가의 자제로 태어나 피리만 부는 삶은 사회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열망을 억지로 접어둔 채 과거공부에 전념해 마침내 급제한다.

 

조정에 출사한 뒤 박연이 걸었던 길은 여느 관료와 비슷했다. 집현전 교리와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등 중 주요 보직을 거치며 관리로 살았다. 흔히 박연을 ‘아악의 아버지’로 기억하면서도, 이렇게 요직을 두루 거친 정예 관료라는 점은 모르는 이가 많다.

 

그는 주어진 일을 하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꾸준히 키워나갔고, 요즘 말하는 ‘사이드 프로젝트(본업 이외에 다른 일을 특정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여 특정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로 계속 음악 문헌을 읽으며 악보 수집을 했다. 이런 열정이 주위에 차츰 알려져 마침내 세자였던 세종도 이를 알게 되었고, 즉위하고 나서 그가 그토록 원하는 음악 업무를 일임했다.

 

(p.186)

박연은 음악과 전혀 상관없는 관리의 삶을 살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평소의 노력이 있었기에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음악 분야에서 대성하고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앞서간 이들의 삶을 가만히 복기해보면 그래도 해답은 있다. 옛날 사람들도 진로 문제, 인간관계, 혼인으로 고민했고 열심히 해결 방법을 궁리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낸 이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의 복잡한 고민도 실마리가 풀린다.

 

세상사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면,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도 수백 년 뒤에는 ‘그땐 그랬지’와 같은 느낌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가 내렸던 선택이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고 ‘모범 답안’이 된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