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9 (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나해철, <실없이 가을을>
[겨레문화와 시마을 16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실없이 가을을

 

                                        - 나해철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리고

   빌딩으로 돌아와서

   일하다가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내쉬듯 전화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눈다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다

   가을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와 있어서

   그를 그렇게라도 보내게 한다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雲門, 864~949)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고 물었다. 그러자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體露), 천지엔 가을바람(金風)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 지난 10월 24일이 상강(霜降)이었다. 상강이 지나면 추위에 약한 푸나무(풀과 나무)들은 자람을 멈춘다. 천지는 으스스하고 쓸쓸한데 들판과 뫼(산)는 깊어진 가을을 실감케 하는 정경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운문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을 얘기했나 보다.

 

이제 상강도 지나고 바야흐로 가을이 깊었다. 엊그제 한낮의 기온이 20도를 웃돌 듯하더니 이제 겨우 10여 도를 넘길 만큼 쌀쌀해졌다. 농촌 들녘도 가을걷이가 끝나고 휑한 바람만 불고 있다. 그야말로 텅 빈 가을이다. 그런데 이파리도 다 떨어져 헐벗은 감나무에 감 몇 개를 남긴 조선의 마음에는 그래도 까치가 날아와 반갑기 그지없다.

 

여기 나해철 시인의 시 <실없이 가을을>에는 밥집 마당까지 내려온 가을을 갑자기 맞닥뜨렸다고 노래하면서 “먼 친구에게 큰 숨 한 번 / 내쉬듯 전화한다 /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 나눈다.”라고 고백한다. 참으로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지만,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니 좋다고 불현듯 생각한단다. 그게 가을이다. 바람이 불어 텅 빈 가을에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누지만, 우린 그렇게 가슴이 따뜻해진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