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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문화와 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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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장석주, <대추 한 알> [겨레문화와 시마을 20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대추 한 알 - 장석주 ​ 저게 저 절로 붉어질 리가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 일 게다. ​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니 둥글게 만드는 것 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이제 추분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이 되었다. 그 사이 벼는 익어 고개를 숙이고 농촌 마을에는 여기저기서 붉은 고추를 말리는 풍경이 아름답다. 그뿐이 아니다. 대추는 역시 붉게 물들어 단맛이 입안에 쏴 하니 퍼지는 때다. 충청북도 보은군에서는 오는 10월 11부터 10월 20일까지 보은읍 뱃들공원과 속리산 일원에서 <보은대추 축제>를 연다고 밝혔다. 보은은 예로부터 왕실에 진상하는 대추의 명산지로 《세종실록 지리지》 <충청도 청주목 보은현> 편에도 “토공(土貢)은 꿀ㆍ밀[黃蠟]ㆍ느타리ㆍ석이ㆍ종이ㆍ칠ㆍ지초ㆍ대추ㆍ족제비털ㆍ호도ㆍ잣[松子]ㆍ노루가죽ㆍ삵괭이가죽이요, 약재는 연꽃술ㆍ인삼ㆍ오가피ㆍ백복령ㆍ승검초뿌리[當歸]ㆍ수뤼나물[葳靈仙]ㆍ북나

늙은이가 기르는 고양이, 흉악한 여우로세

정약용, <늙은 고양이 이야기> [겨레문화와 시마을 20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늙은 고양이 이야기(이노행-貍奴行) - 정약용 南山村翁養貍奴(남산촌옹양리노) 남산골 늙은이 고양이를 기르는데 歲久妖兇學老狐(세구요흉학노호) 해가 묵자 요사하고 흉악한 늙은 여우되었네 夜夜草堂盜宿肉(야야초당도숙육) 밤마다 초당에 두었던 고기 훔쳐 먹고 翻瓨覆瓿連觴壺(번강복부연상호) 항아리 단지 뒤집고 잔과 술병까지 뒤진다네 지난 2021년 대학교수들은 그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뽑았다. ‘도둑을 잡은 자(고양이)가 도둑(쥐)과 한통속이 됐다.’라는 뜻이다. 그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와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 개발 특혜ㆍ로비 의혹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그때 고양이의 발톱은 무뎠다. 특히 대장동 사건은 화천대유가 정계와 법조계에 로비했다는 ‘50억 클럽’의 의혹이 터졌어도 실체 규명 수사는 3년이 지난 지금껏 지지부진하다. 다산 정약용은 ‘감사론(監司論)’에서, “토호와 간사한 아전들이 도장을 새겨 거짓 문서로 법을 농간하는 자가 있어도 ‘이것은 연못의 고기이니 살필 것이 못 된다.’ 하여 덮어두고, 효도하지 않고 그 아내를 박대하며 음탕한 짓으로 인륜을 어지럽히는 자가 있어도 ‘

민중은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구나

정태춘, <일어나라 열사여> [겨레문화와 시마을 19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일어나라 열사여 - 이철규 열사 조가 - 작사ㆍ작곡ㆍ노래 정 태 춘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 칼 쥐고 총 가진 자들 싸늘한 주검 위에 찍힌 독재의 흔적이 검붉은 피로, 썩은 살로 외치는구나 더 이상 욕되이 마라 너희 멸사봉공 외치는 자들 압제의 칼바람이 거짓 역사되어 흘러도 갈대처럼 일어서며 외치는구나 (아래 줄임) 한국의 피트시거(미국의 전설적인 포크 자작가수자 사회운동가)로 불리는 정태춘 씨는 1978년 1집 ‘시인의 마을'을 발표하며 호평을 받고 여러 방송사에서 상을 받은 가수다. 그는 음반 사전심의제도 때문에 가사를 부분 수정해서 발매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1990년, ‘아, 대한민국…’ 음반은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부하고 대학가와 공연장에서 배포했다. 이 음반은 사전검열 제도에 공식적으로 저항한 첫 음반으로 한국 음악사에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데 음반도 전통적인 정서를 바탕으로 강렬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태춘 씨는 1991년 '음반 및 비디오에 관한 법률 개악 저지를 위한 대책위원회'의 의장이 되어 사전검열제도와 일선에서 맞섰다. 1993년에도 ‘92년 장마, 종로에서’

보릿고개 넘어 보리여울을 어떻게 건널까?

조수삼, ‘북행백절(北行百絶)’ 중 보리여울(麥灘-맥탄) [겨레문화와 시마을 19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보리여울(麥灘) - 조수삼 舂白趁虛市(용백진허시) 흰 것은 찧어서 텅 빈 시장에 나가고 殺靑充夜餐(살청충야찬) 푸른 것은 베어서 저녁을 때우네 麥嶺斯難過(맥령사난과) 보릿고개 넘어가기 어려운데 如何又麥灘(여하우맥탄) 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위 시는 조선 후기 시인 추재(秋齋) 조수삼(趙秀三)이 함경도 지역을 유람하면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단한 생활상과 풍속을 노래한 것 가운데 보리여울(麥灘-맥탄)이라는 곳을 지나면서 쓴 것이다. 특히 직접 눈으로 목격한 농민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읊고 있다. 익어서 하얗게 된 보리는 찧어서 살 사람도 별로 없는 텅 빈 시장에 가 팔고, 아직 익지 않은 푸른 보리는 그것이나마 베어서 저녁을 때우는 농민들을 본다. 조수삼은 먹거리가 없어 보릿고개도 넘어가기 어려운데, 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걱정하고 있다. 1833년 헌종 10년. 전국 팔도에서 수많은 유생이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으로 모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바로 83살의 노인, 조수삼이었다. 조수삼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과거시험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수풀 사이 샘에서 발을 씻고서

임황(任璜), <물가의 정자[水閣]> [겨레문화와 시마을 19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물가의 정자[水閣] - 임황(任璜) “수풀 사이 샘에서 발을 씻고서 (濯足林泉間) 흰 바위 위에 편하게 누웠네 (悠然臥白石) 새소리에 문득 꿈을 깨고 보니 (夢驚幽鳥聲) 저무는 앞산 가랑비에 젖고 있네 (細雨前山夕)“ 지난 7월 무덥다는 절기 소서와 대서, 그리고 잡절인 초복과 중복을 지냈다. 어제 8월 2일 아침 10시에는 날씨정보를 제공하는 케이웨더(주)가 일부를 뺀 온 나라 대부분에 ‘폭염특보’를 내렸다. 기상청이 제공한 폭염특보 발효 지도를 보면 온 나라 대부분이 온통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다. 하루 가운데 가장 높은 체감온도가 35℃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내린다는 ‘폭염특보’, 그만큼 우리는 불볕더위에 몸살을 앓는다. 그러나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던 조선시대,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도 없던 선비들은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그들은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더위를 물리치는 으뜸 방법으로 여겼다. 거기서 조금 나가면 물가에서 발을 씻고(탁족) 널따란 바위에 누워 잠이 드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9세기 동산양개 선사는 ”더위를 피하려면 너 자신이 더위가 되어라.”라고 했

뒷것을 자처한 ‘김민기’ 세상을 뜨다

김민기, <작은 연못> [겨레문화와 시마을 19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작은 연못 - 김민기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아침이슬, 상록수, 작은 연못, 내나라 내겨레, 공장의 불빛, 친구, 봉우리, 늙은 군인의 노래 등 수많은 명곡을 세상에 남긴 김민기는 지난 7월 21일 73살 삶을 내려놓고 영면에 들었다. 지난 4월 SBS스페셜 3부작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다큐를 보면서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었던 김민기가 세상을 뜬 것이다. 조승우, 설경구, 황정민 등 유명 영화배우와 김광석 같은 전설적인 가수를 키워낸 김민기는 대학로 학전을 운영하면서 늘 ‘뒷것’을 자처했다. 그는 연극계에 처음 계약서를 도입하고 수입을 공개한 다음 일일이 배우들과 제작진들에게 고마움을 담아 월급을 주었음은 물론 배고팠던 배우들의 밥을 꼭 챙겼다는데 배우들은 앞것, 자기는 앞것들의 뒤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