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갈 같 날 - 한밝 김리박 낮때와 밤때가 똑 같다 하느니 오면 앗 읽고 달 돋으면 임 생각고 고요히 깊어가는 갈 선비는 졸 닦고 오늘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서서히 음의 기운이 커지는 24절기 열여섯째 추분(秋分)이다. 《철종실록》 10년(1859) 9월 6일 기록에 보면 “추분 뒤 자정(子正) 3각(三刻)에 파루(罷漏, 통행금지를 해제하기 위하여 종각의 종을 서른세 번 치던 일)를 치면, 이르지도 늦지도 않아서 딱 중간에 해당하여 중도(中道)에 맞게 될 것 같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여기서 중도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길’을 말하고 있는데 우리 겨레는 추분이 되면 더도 덜도 치우침이 없는 중용의 도를 생각하려고 했다. 세상일이란 너무 앞서가도 뒤처져도 안 되며, 적절한 때와 적절한 자리를 찾을 줄 아는 것이 슬기로운 삶임을 추분은 깨우쳐 준다. 또 추분 무렵이 되면 들판의 익어가는 수수와 조, 벼들은 뜨거운 햇볕, 천둥과 큰비의 나날을 견뎌 저마다 겸손의 고개를 숙인다. 내공을 쌓은 사람이 머리가 무거워져 고개를 숙이는 것과 벼가 수많은 비바람의 세월을 견뎌 머리가 수그러드는 것은 같은 이치일 것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웃 사람 - 허홍구 동네 골목길을 지나다가 가끔 낯선 분의 인사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웃음꽃 피우며 지나가신다. 어, 내가 아는 사람인가? 누구지 하고 궁금했었다 나는 모르겠는데 저분은 나를 어떻게 알까? 다음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해야지 그래, 우리 서로 모른다 한들 어찌 이웃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낯설어도 같은 동네 가까운 이웃이다. 예전 농가에서는 한로, 상강 무렵 가을걷이로 한창 바빴다. 〈농가월령가〉에 보면 “들에는 조, 피더미, 집 근처 콩, 팥가리, 벼 타작 마친 후에 틈나거든 두드리세……”라는 구절이 보인다. 이를 보면 이때 가을걷이할 곡식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일손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속담에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빈다.", "가을 들판에는 대부인(大夫人) 마님이 나막신짝 들고 나선다."라는 말이 있는데, 쓸모없는 부지깽이도 필요할 만큼 바쁘고, 존귀하신 대부인까지 나서야 할 만큼 곡식 갈무리로 바쁨을 나타낸 말들이다. 이렇게 바쁘게 일하다 허기진 농부들에게 기다려지는 게 새참 때였고 이때 빠질 수 없었던 것은 막걸리였다. 막걸리는 이른바 '앉은뱅이 술' 가운데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가 을 볕 - 박노해 가을볕이 너무 좋아 고추를 따서 말린다.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어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 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 24절기 ‘처서’가 지나고 어제는 ‘백로’였다. 이제 바야흐로 가을에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아직 볕이 따갑다. 그래야만 들판에 벼가 익어가는 소리가 분명해진다. 또 농촌에서는 그 땡볕에 고추를 말린다. 그뿐이 아니다. 처서가 지난 무렵 우리 겨레는 ‘포쇄(曝曬)’라는 걸 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민가에서 옷을 햇볕에 말리는데, 이는 오래된 풍속이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농가월령가> 7월령에는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曝曬) 하소”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왕조실록을 보관한 사고에 포쇄별관을 보내 실록을 포쇄하는 일이 중요한 일이었다. 또 선비들은 이때 여름철 동안 눅눅해진 책을 말린다. 포쇄하는 방법은 우선 거풍(擧風), 곧 바람을 쐬고 아직 남은 땡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