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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레문화와 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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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앞, 쇳물은 부어야 하고

임인규, <더위 그 까짓것> [겨레문화와 시마을 22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더위 그 까짓것 - 임인규 지독한 땡볕 측정온도는 38도씨 온몸에 땀이 줄줄 더위 그까짓 것 공사 현장 철근 위를 걸어봤니? 운동화 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온도 살이 익을 정도다. 그래도 공사는 해야 하고 그래야 돈을 번다. 섭씨 2000도 3000도를 오르내리는 용광로 앞에서 방열복 입고 쇳물을 퍼 날라 보았는가? 더위 그까짓 것 그래도 쇳물은 부어야 하고 그래야 수도꼭지는 생산이 된다. 우리 겨레는 더위가 극성인 때 혀끝에서는 당기는 찬 것이 아니라 오히려 뜨거운 음식으로 몸을 보양했다. 바로 그것이 이열치열(以熱治熱)의 슬기로움인데 여름철의 더운 음식은 몸 안의 장기를 보호해 준다고 한다. 이 이열치열의 먹거리로는 전설의 동물인 용과 봉황(실제로는 잉어와 오골계)으로 끓인 “용봉탕”, 검정깨로 만든 깻국 탕인 “임자수탕” 그리고 보신탕, 삼계탕, 추어탕 따위가 있다 여름철이면 사람 몸은 외부의 높은 기온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피부 근처에 다른 계절보다 20∼30% 많은 양의 피가 모이게 된다. 이에 따라 체내의 위장을 비롯하여 여러 장기는 피가 부족하게 되고 몸 안의 온도가 떨어지는데, 이렇게

잠깐 갰다 금새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김시습, <사청사우(乍晴乍雨)> [겨레문화와 시마을 22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금새 비 오고 비 오다 다시 개니 天道猶然況世情(천도유연황세정) 하늘의 도도 오히려 그러하거늘 하물며 세상의 정이야 譽我便應還毁我(예아편응환훼아) 나를 칭찬하는가 했더니 곧 다시 나를 비난하고 逃名却自爲求名(도명각자위구명) 이름을 피하는가 하면 도리어 이름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화개화사춘하관) 꽃이 피고 꽃이 진들 봄이 무슨 상관이며 雲去雲來山不爭(운거운래산부쟁)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 寄語世上須記憶(기어세상수기억) 세상에 말하노니 모름지기 기억하라 取歡無處得平生(취환무처득평생) 어디서나 즐겨함은 평생 득이 되느니라 이 시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지은 <잠깐 갰다 금세 비 오고(乍晴乍雨-사청사우)>란 제목의 한시다. 최근 우리나라의 날씨는 한 언론에 “사흘째 전국 비…내일까지 최대 300㎜ 물벼락”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온 나라가 큰물로 난리를 치르고 있다. 오죽하면 ‘극한호우’란 어려운 한자말까지 쓸까? 이번 큰물로 온 나라엔 많은 재산 피해가 났음은 물론 안타깝게 인명 피해까지 일어났다. 그런데, 곳에 따라 물

뱀사골 계곡에 발을 담그다

복효근​, <환상적 탁족> [겨레문화와 시마을 2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환상적 탁족 - 복효근​ 한여름 염천을 피해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발을 담갔다 물에 잠긴 발을 사진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고사탁족도(高士濯足圖)쯤으로 보셨을까 이동순 시인께서 '환상적 탁족'이라 댓글을 달았다 기쁨의 상한선을 탁족에 두셨다니 시인이 누릴 수 있는 환상이 거기까지라는 듯 거기를 벗어나면 환상이 아닐 수 있다는 갓끈을 씻거나 발을 씻거나 그 어름까지가 시인이라는 뜻이었을까 지난 7월 7일은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한다는 소서(小暑)였으며, 오는 7월 20일은 초복(初伏), 7월 30일 중복이 다가온다. 삼복 때는 한해 가운데 가장 더운 때로 이를 '삼복더위'라 하는데 찬바람틀(에어컨)도 없고, 옷을 훌훌 벗어버릴 수도 없는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가마솥더위를 견뎠을까? 우선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높은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주어 관의 장빙고에 가서 얼음을 타 가게 하였다. 또한 바닷가 백사장에서 모래찜질하고 복날에 고기 따위로 국을 끓여 먹는 복달임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 내기도 하였다. 한편, 여인들은 계곡물에 머리를 감거나 목욕하면 풍이 없어지고 부스럼이 낫는다고 생

멀건 보리죽, 걸신들린 듯 퍼먹던 5남매

이학주, <보릿고개 넘던 시절> [겨레문화와 시마을 2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긴 겨울 싸늘한 냉골에 누워 새우잠 주무시던 우리 어머니 파릇파릇 4월이 새순 돋으면 산나물 캐다 장에 내다 팔아 보리쌀 몇 됫박 사서이고 오시어 가파튼 보릿고개 헐떡헐떡 넘기셨지 저녁 밥상에 풋나물 뜯어 끓인 멀건 보리죽 철부지 5남매 삥 둘러앉아 걸신들린 듯 퍼먹는 모습 보시고 어머니 눈은 촉촉이 젖으셨지 ...이학주 시인의 <보릿고개 넘던 시절> 가운데 그제는 24절기 가운데 아홉째 망종(芒種)이었다. 망종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으로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알맞을 때다. 그러므로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절기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무렵은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때여서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한해 가운데 가장 바쁜 철이다. 그러나 예전엔 보리 베기 전에 늘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보릿고개’

참된 농공상(農工商), 헛된 선비에게 부림 받네

신위, <잡서(雜書) 오십수(五十首)> [겨레문화와 시마을 22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잡서」 오십수 신위(雜書 五十首 申緯) 士本四民之一也(사본사민지일야) 선비도 본래 사민 가운데 하나일 뿐 初非貴賤相懸者(초비귀천상현자) 처음부터 귀천이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네 眼無丁字有虗名(안무정자유허명)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헛된 이름의 선비 있어 眞賈農工役於假(진가농공역어가) 참된 농공상(農工商)이 가짜에게 부림을 받네 “사농공상(士農工商, 사민)은 각각 자기의 분수가 있습니다. 선비[士]는 여러 가지 일을 다스리고, 농부[農]는 농사에 힘쓰며, 공장(工匠)은 공예(工藝)를 맡고, 상인(商人)은 물품과 재화를 서로 통하게 하는 것이니, 뒤섞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종실록》 140권, 성종 13년 4월 15일 자에 나오는 기록이다. 조선시대 직업으로 인해 나뉘는 신분 제도 사농공상은 노비를 뺀 전체 사회구성원을 넷으로 나뉘었다. 직업은 신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 때문에 유학자들은 신분을 상하ㆍ귀천으로 나눌 뿐만이 아니라 직업 또는 상하ㆍ귀천으로 구별했다. 19세기 전반에 시(詩)ㆍ서(書)ㆍ화(畵)의 3절로 유명했던 문인 신위(申緯)는 그의 한시 「잡서(雜書)」 오십수(五十首)에서 ”참된 농공

빈 스티로폼 상자에 커다란 돌멩이 넣어주었다

고영민, <첫사랑> [겨레문화와 시마을 22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첫사랑 - 고영민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봄날 저녁이었다 그녀의 집 대문 앞에 빈 스티로폼 박스가 바람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다 밤새 저리 뒹굴 것 같아 커다란 돌멩이 하나 주워와 그 안에 넣어주었다. 며칠 뒤면 24절기 ‘소만(小滿)’이 온다. 소만 때가 되면 모든 들과 뫼가 푸른데 오히려 대나무는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이는 새롭게 태어나는 죽순에 영양분을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래서 봄철의 누런 대나무를 가리켜 “죽추(竹秋)” 곧 ‘대나무 가을’이라고 한다. 또 이때 만물은 가득 차지만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구황식품을 구해야 할 때다. 그래서 소만은 우리에게 세상 이치를 잘 가르쳐 준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따뜻함이 있으면 차가움도 있으며, 가득 차 있으면 빈 곳도 있다고 말이다. 입하와 소만 무렵 세시풍속으로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4월 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 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있다. 봉숭아 꽃이 피면

어머니의 사랑이 보이는 이팝나무

안중태, 이팝나무 [겨레문화와 시마을 220]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팝나무 오월에 찾아온 이팝나무 내 어머니도 함께 오셨네 하얀 쌀밥 주렁주렁 매달고 오고 가는 길손 깊은 시름이라도 달래주려는 듯 하얀 쌀밥 고봉으로 퍼나르네 푸르런 오월에 인정 많으셨던 어머니 하얀 꽃잎 사랑 안겨 주시네 지난 5월 5일 월요일은 24절기 ‘입하(立夏)’였다, 입하 무렵부터 6월까지는 산과 들에 가보면 하얗고 탐스러운 이팝나무꽃을 본다. 요즘은 도심의 가로수로도 인기를 끈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입하 무렵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하며, 또 이밥은 하얀 쌀밥을 뜻하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정전제(井田制)'를 시행하여 일반 백성들도 쌀밥을 먹게 되었고, 그래서 백성들이 이 쌀밥을 '이성계가 준 밥'이란 뜻으로 '이밥'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실제 흐드러진 이팝나무꽃을 보면 마치 쌀밥(이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예전 가난한 백성은 그저 밥이나 배부르게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논에서 종일 허리를 제대로 펼 틈도 없이 일하다가 뱃가죽과 등짝이 서로 들러붙는 듯한 허기에, 눈에 들어오는 이팝나무꽃이 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