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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우리의 삶에 극대화된 에너지를 담아주는 춤

강선영 선생 탄신 100주년 추모제를 보고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민속학자]  필자는 2024년 7월 13일 (토) 아침 10시 진관사 함월당에서 동희 스님의 집전으로 봉행 된 고 명가 강선영 선생 탄신 100주년 추모재에 참석하였다. 추모재에는 선생님의 따님 이남복을 비롯한 손자 손녀 그리고 증손자 증손녀 등 가족 일동 그리고 제자 조흥동(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및 서울시무형유산 한량무 보유자), 고선아(서울시무형유산 한량무 보유자), 채상묵(국가무형유산 승무 보유자), 양성옥(국가무형유산 태평무 보유자), 김근희(경기도무형유산 경기 검무 보유자), 홍진희(국가무형유산 태평무 이수자), 김미란(이북5도무형유산 애원성 전승교육사), 이미숙(의정부시향토문화유산 경기 수건춤 보유자) 등 70여 명이 참관하여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진관사 회주 계호 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나라 무용계 대모이신 고 강선영 선생 탄신 100주년을 맞이하여, 수륙도량인 진관사에서 선생을 추모하는 천도재를 봉행하게 되어 매우 뜻깊게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제자 대표로 인사말을 건넨 조흥동 선생은 “제자 일동은 선생님의 올바른 가르침과 인자하신 보살핌으로 무용 활동에 정진할 수 있게 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생님의 극락왕생 하심을 두 손 모아기도 드린다”라고 하였다.

 

 

1960년대 강선영 문하에서 춤 학습을 하면서 강선영무용연구소 조교를 담당하였던 국가무형유산 승무 보유자 채상묵 선생은 “사랑으로 감싸주시고 지켜봐 주셨기에 오늘날 성장할 수 있었고,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회고하며 항상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고 하였다.

 

태평무 2대 보유자로서 스승의 유지를 받들어 강선영춤전승원 이사장을 맡은 양성옥 선생은 스승님께 바치는 헌정사에서 김홍신 작가의 글을 빌려 "강선영 선생님 춤은 100년 누리를 밝힌 불멸의 춤이라 소개하고, 디딤발 짓 선녀요, 허공 가른 손짓 천녀요, 사뿐 자박 왕비의 걸음새로 우리 세상에 지혜의 울림이 되시었다”라고 스승의 예술적 극치와 업적을 기렸다. 그러면서 "스승의 뜻 받들어 정진하겠다”라고 다짐하였다.

 

명가(明嘉) 강선영(姜善泳, 1925~2016)은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어려서 <조선음악무용연구회> 한성준 문하에 입문하여 태평무를 비롯한 승무, 살풀이춤, 검무, 한량무, 수건춤, 신선무 등의 전통춤을 배웠다. 1951년 <강선영고전무용연구소>를 개소하고 제자 양성과 공연 활동에 힘썼으며, 스승으로부터 물려받은 우리 춤 지키기와 가꾸기에 앞장섰다. 한국 춤 가치 상승을 위한 갈망 속에서 강선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감으로 내일을 여는 춤 문화 선구자로 활동하는 가운데 수많은 제자 양성은 물론 수백 회에 이르는 나라 안팎 공연에 참여하였다.

 

 

그러면서 강선영은 예술단 조직은 물론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국립무용단 부단장, 강선영무용단 단장, 한국무용협회 이사장,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회장,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상임고문, 태평무전수관 설립자와 관장 등을 지냈다. 1990년에는 그가 전승했던 태평무가 국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자 초대 보유자가 되었다. 2013년 명예 보유자가 되었고, 2019년 그의 예술적 업적과 위상이 평가되어 한영숙, 김숙자, 이매방 등의 명무와 함께 사단법인 한국전통춤협회가 인정한 대한민국전통춤 4대 명무 가운데 한 사람이다.

 

강선영이 계승한 춤은 조선 왕조 말기부터 20세기 초를 거쳐 일제강점기 때까지 활동한 명인 한성준(韓成俊, 1874~1941)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강선영의 스승 한성준은 당대 명고수로 알려져서 명창은 물론이고 명무 및 명인들의 고수로 활동하였다. 이러한 활동 속에서 한성준은 경기도 용인 출신 김인호(남, 1858~1932)가 광무대(光武臺, 1898~1930 서울에 존속했던 전통연희전문극장)에서 춤 활동을 펼쳐질 때 전문 악사로 반주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김인호가 권번에 나가 춤을 가르칠 때도 동참하여 장단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한성준은 열여섯 살 위인 김인호로부터 많은 춤을 익혔다. 그러다가 1932년 74세를 일기로 김인호가 세상을 뜨자 5년 뒤인 1937년 조선음악무용연구회를 조직하고 김인호가 남긴 춤을 정립하여 제자 양성을 하였다. 북을 잘 쳐서 명성이 높았던 한성준은 고수로 활약하였지만 줄타기와 땅재주도 잘했다.

 

그러한 한성준은 김인호와 활동하면서 춤을 익히게 되었고, 그의 타고난 예술적 재능으로 궁중춤과 민속춤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성준의 춤 예술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김인호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더 나아가 거기에 자신의 미학 세계를 얹어 무대화한 태평무, 한량무 등의 민속춤이 발표되면서부터다.

 

 

이처럼 한성준을 무용가로서 명성을 갖게 한 춤 스승 김인호는 서편제 거장이었던 전남 담양 출신의 이날치(李捺治, 남, 1820~1892)의 제자다. 이날치는 어려서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는 도중 남사당패를 쫓아가 줄광대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특히 판소리 심청가에 능했던 그는 1870년대에 이르러 명성이 크게 알려지자, 흥선대원군 앞에서도 소리를 한 국창이었다.

 

한성준은 또한 전북 정읍의 세습무 출신 전계문(남, 1865~?)에게서도 춤을 배웠다. 전북지역의 큰 단골로 명성을 떨쳤던 전계문은 명고수였을 뿐만 아니라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등의 기악과 성악은 물론 춤에도 밝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강선영의 스승 한성준 춤 예술은 윗대로 올라가 보면 그 전승 계보가 김인호 그리고 전계문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목할 것은 이러한 당대 명인들이 모두 남자였고, 음악에 능통하여 고수 또는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출신 배경이 호남이었다.

 

불멸의 춤꾼 강선영 명무가 남긴 전통춤은 한국 전통예술의 대명사이다. 이는 국내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무대에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전통춤은 지난 수년 동안 한국 문화가 대중성과 세계성의 가능성을 확인해 주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강선영류 전통춤 가운데 대표성을 갖는 태평무는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1대 보유자 및 명예보유자 강선영(1925-2016), 2대 보유자 이현자(1936-2020), 보유자 및 명예보유자 이명자(1942년생), 보유자 양성옥(1954년생)이 있다.

 

 

 

태평무를 계승하는 양성옥 보유자의 춤 세계는 삶의 윤택함을 앞당기기 위한 예술적 창조 정신을 바탕삼아 자유와 번영을 부르짖는 춤사위를 매개로 태평무가 갖는 춤의 미학 세계를 극대화한다. 스승 강선영이 그러하였듯, 양성옥 보유자 역시도 삶의 회한을 회고하고 슬픔으로 어루만지려는 험난한 예술 생애의 고뇌를 미적 가치에 얻어 흥과 멋을 담아내는 데 힘을 쏟는다.

 

갇혔던 기운과 닫혔던 몸짓이 뚫리고 열려서 영공 세계를 향해 한없이 펼쳐지려는 춤새를 갈구한다. 양성옥의 춤이 그러하며 스승 강선영의 예술혼 또한 그러하였다. 그래서 태평무 계승자 양성옥은 평생을 걸고 천상에 닿고자 하는 자신의 미학적 가치관을 춤새 하나하나에 담아내는데 심혈을 쏟는다. 발끝부터 머리카락까지도 온갖 기를 모아 하늘의 섭리를 풀려는 마냥 춤의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러한 모습이 태평무 계승자의 예술적 형식이며 오늘날의 양성옥 계승자의 예술적 면모이다.

 

강선영은 그의 스승 한성준으로부터 물려받은 춤 유산을 자신에게 주어진 일평생의 시간 속에서 한없이 갈고 닦아 살아 숨 쉬는 민족의 문화재춤으로 승화시켰다. 그리고 이를 후대에 전수함으로써 범국가적 및 세계적 차원으로 다루어지는 가장 한국적 전통춤으로 발돋움시켰다. 이제 강선영의 후예들은 스승이 남긴 전통춤 유산을 올바르게 지키고 그 의미와 가치의 위상을 높이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차세대를 향한 철저한 전수 교육과 대중적 진흥의 극대화를 위해 힘쓴 업적으로 평가될 것이다. 세상사의 슬픔과 고통을 긍정적으로 유도하는 흥의 춤, 극대화된 에너지를 우리의 삶 속에 담아주는 신명의 춤, 그것이 강선영이 남긴 불멸의 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