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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교린지의(交隣之義, 이웃을 사귀는 의리)

‘사자성어’(四字成語)로 보는 세종의 사상 2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백성을 기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국가를 이웃 나라로부터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첫걸음은 먼저 이웃나라와 평화 시에 원활한 교류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이에는 물적, 인적 교류가 활발한 것은 물론 문화나 사상, 종교와 같은 높은 단위의 교류도 이루어지게 된다. 이를 교린지의(交隣之義)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의(義)라고 하면 정의(正義)가 연상되는데 정의란 ‘올바른 행동과 도덕적인 원칙’이다.

 

중세의 가치철학으로는 임금에게 충[事君以忠], 친구 사이에는 신{朋友有信]이 있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 사이에는 의(義)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실록 번역에서는 친선이나 정리로 번역해 놓았으나 의(義)라고 하면 개인과 사회 간의 관계에서 책임감, 상호존중, 그리고 도덕적 원칙과 값어치를 지키고 나아가 사회적인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다.

 

실록에 일본과의 교류에서 ‘교린지의交隣之義’로 나오는 내용 몇 예가 있다.

 

예물로 친선을 닦는다

 

우리 백성이 표류하여 일본에서 편의를 제공받고 있으니, 그에 대응하여 대장경과 선물들을 보낸다는 것이다. 교류는 현실적으로 여러 형태로 주고받고 있다.

 

“교류로 일본에서 사절을 보낸 데 대한 답례로 소윤 송희경(宋希璟)을 보내니, 그 서한에 이르기를, ‘일본 국왕 전하에게 회답합니다. 일부러 사절을 보내어 글월을 주시고 선물까지 주심을 받았사오며, 따라서 족하의 건강하심을 알았사오니, 감사하며 위로되는 마음 아울러 깊습니다. 우리나라와 귀국은 대대로 이웃 간의 친선을 닦아서, 그 정리가 매우 두터웠으나, 이제 신하인 첨지승문원사(僉知承文院事) 송희경을 보내어 《대장경(大藏經)》 전부를 가져가며, 또한 변변치 않은 토산물로 사례하는 뜻을 표시하오니, 받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별폭(別幅), 《대장경》 전부, 말안장 한 벌과 베ㆍ모시ㆍ명주 각 10필, 잣[松子] 5백 근, 인삼ㆍ오미자(五味子) 각 50근, 꿀 15말, 표범의 가죽 5벌, 잡채 화문석(雜彩花紋席) 10장, 만화방석(滿花方席) 10장, 돈피 10장 등의 선물을 보냈다.” (⟪세종실록⟫2/윤1/15)

 

이어 극진한 교류가 이루어진다

 

“이제 또 사신을 보내어 교빙(交聘, 나라와 나라 사이에 서로 사신을 보냄)의 예(禮)를 닦으니, 교린(交隣)의 정의가 지극하다. 청구한 《대장경(大藏經)》은 마땅히 정질(正秩)로써 회례사(回禮使)에게 부쳐 보내겠으나, 태후(太后)가 청한 《대장경》도 또한 마땅히 청한 대로 하겠노라." (⟪세종실록⟫4/12/16)

 

이런 교류는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

 

(신상이 좌무위에게 준 회사릉의 박함과 군용 경차관을 경회루에 보내 건의하다) 예조 판서 신상이 아뢰기를, "지금 좌무위(左武衛)에게 회답으로 준 물건을 보건대, 일본 물건과 값을 비교하면, 3, 4분의 1에 불과하오니, 이웃 나라를 사귀는 의리에 박한 것 같습니다. 더욱 광초(光綃)는 가치가 면포 8, 9필에 해당하며, 부채는 비록 중국에서도 1자루 값어치가 황금 2냥쭝에 준하니, 그 값이 지극히 중한데, 지금 호조에서는 광초 1필을 면포 2필에 준하고, 부채 5자루를 정포 5필에 준하였으니, 실로 이는 너무 가볍습니다. 비록 본값에 준하지는 못할지라도 절반으로 주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나의 뜻도 그러하다. 광초 1필에 면포 5필로 준하고, 부채 1자루에 포자 1필로 하여 다시 마감하여 아뢰라."라고 하였다. 이에 ... 백성들이 군기 점고(軍器點考)로 인하여 항상 관문(關門)에 모일 것이오니, 그 폐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겨울을 기다려서 보내도 늦지 않습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13/6/25)

 

 

의나 예에도 균형이 맞아야 한다. 교린의 의리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도 한다

 

“종정성(宗貞盛)이 사이문(沙伊文) 등을 보내어 예조에 글을 올리기를, "지난번에 돈사문(頓沙文)이 돌아와 말하기를, ‘장차 최완(崔浣)을 목 벤다.’라고 하셨사온데, 이제 비록 완(浣)을 죽인다 하여도 나의 관하(管下) 사람이 어찌 다시 살아날 리가 있겠습니까. 또 교린(交隣)의 의리에도 어긋나오니, 청하옵건대, 죽이지 마소서," 하였으므로... 여럿이 의논하고 아뢰기를, “만약 사이문이 다시 묻는다면, 대답하기를, ‘나라에서 구처(區處, 사물을 구분하여 처리함)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라고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세종실록⟫25/7/14)

 

때로 외교는 도의에 어긋난 일이 있어도 큰 그림 속에 예(禮)를 보여야 한다

 

"저들이 비록 무도(無道)하더라도 우리는 마땅히 그 예를 다하여야 하오며, 영영 인호(隣好, 사이좋게 지냄)를 끊는다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이번의 경조(慶弔)를 당하여 마땅히 예신(禮信)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임금이 어리고 나라가 의심되니 아직 안정(安靖,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을 기다려서 통신 수호하여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소식이 없으면 온 사신이 돌아갈 때 우리 사신도 함께 보내면 거의 편할 것입니다." 하고, 안숭선은 의논하기를, "이웃나라를 사귀는 도리는 예(禮)와 신(信)이 중합니다. 전일 일본 국왕이 죽으면 이것도 인도(人道)의 큰 변이어서 의리상 마땅히 불쌍히 여겨야 하므로, 비록 전하여 들었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신을 보내어 조의를 표하고 사이좋게 지내 온 지가 오랩니다. (⟪세종실록⟫25/10/22)

 

다른 나라와 곧 유구국과의 교린도 이어진다

 

“또 유구국(琉球國)이 예전에 사신을 보내어 와서 조회하였으나 그 뒤에 회례(回禮)가 없었습니다. 삼도(三島), 일기(一岐)ㆍ상송포(上松浦)ㆍ하송포(下松浦))의 사람과 후쿠오카 하카타 (박다-博多) 사람이 말하기를, ‘조선국의 사로잡힌 사람이 유구국에 있는데, 본토(本土, 조선)에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라고 합니다. 신은 가만히 생각하건대, 이웃나라를 사귀는 의리는 고금에서 소중히 여기고 또 그 습속(習俗)과 풍토(風土)도 또한 살피지 않을 수가 없는데, 다행히 변고가 없을 때 통신(通信)하고 가깝게 사귀어, 이내 사로잡혀 갔던 사람을 찾아돌아오게 할 것입니다.(⟪세종실록⟫28/9/9)

 

정치 그 가운데 외교란 예나 지금이나 나라 사이에 균형 있는 의(義)로운 행위를 주고받아야 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