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6일) 오전, 완도 고금도 다녀왔다. 충무공 이순신 사당 건너편, 솔바람이 향긋한 솔숲 월송대(月松臺, 고금면 충무사길 86-31)에 올랐다. 보름밤이었으면 휘영청 밝은 달이 노송 사이로 두둥실 떠올랐을 그 월송대에서 소나무 사이의 먼바다를 바라다본다. 이곳 월송대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가 열흘 동안 안치되어 있던 곳이다.
“이곳 월송대는 충무사 맞은편에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되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2월 11일,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수군을 재정비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11월 22일 무렵 도착하여 10여 일간 안치되었다. 이후 1599년 2월 11일, 아산 금성산(錦城山)에 안장되었다가 1614년 4월 어라산(於羅山)으로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완도군 -
완도군 고금도는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노량해전을 준비했다. 이곳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순천 왜성과 100리 거리를 두고 있는 곳으로 고금도 전투에서는 1598년 3월 11일과, 1598년 7월 17일 두 번에 걸쳐 대첩을 거둔바 있는 역사적인 전투 현장이지만 한산도와 통영의 통제영에 견주어 덜 알려졌다.
월성대를 내려오면 맞은편에 충무공 사당인 충무사(忠武祠)가 있다. 이 사당은 1953년 관왕묘의 옛 자리에 사당을 짓고 영정으로 모신 곳으로 “현재 사당은 정전과 동무, 서무, 동재, 서재를 갖춘 건축 양식으로 이러한 형식은 서원 양식에 버금가는 잘 갖춘 건축양식이다.”라며 이날 충무사 답사를 함께한 최우성 문화재기술자는 말했다.
사당과 월송대를 둘러보고 나오면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지’에 <완도 이순신기념관>이 나온다. 2023년에 개관한 아담한 2층 건물이지만 전시물은 매우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특히 ‘고금도와 이순신’에 관해 ‘백문이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전시물들을 둘러보면서 ‘오길 잘했다’ 싶었다. 특히, 기념관의 김기봉 직원의 ‘고금도와 이순신의 활약’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기자의 이번 완도 여행은 처음인지라 이순신의 유서 깊은 유적지가 있는 고금도와 기념관 그리고 장보고와 유적지 등에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친절히 고금도를 비롯한 주변 섬들에 대한 역사적인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주어 짧은 완도여행이었지만, 대강의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고금도를 비롯한 남해의 여러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승용차로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었던 점도 매우 좋았다. 완도 여행을 기획한 분들이라면 고금도로 건너가 ‘고금도와 이순신’의 삶을 한번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