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헌 짚신짝 끌고 나 여기 왜왔노 두만강을 건너서 쓸쓸한 이 땅에 남쪽하늘 저 밑엔 따뜻한 내고향 내 어머니 계신 곳 그리운 고향집 - 윤동주 ‘고향집’(1936.1.6.)- 시인 윤동주가 노래하듯 누구에게나 어머니가 계신 고향집은 따뜻하다. 그 고향집을 버리고 남부여대(男負女戴: 남자는 짐을 지고 여자는 짐을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온갖 고생을 하며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떠난 땅 간도(間島). 그 간도땅에서 평범한 시절을 보낸 소년 윤동주. 그는 이제 간도땅의 평범한 소년이 아니다. 시인 윤동주는 한국을 넘어 유학길에 올랐던 일본, 더 나아가 그의 시를 사랑하는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시인’이다. 그것을 입증하는 ‘아주 특별한 강연’이 그제(19일) 낮 2시부터 줌 웨비나 (Zoom Webinar, 화상 원격회의 시스템, 아래 ‘화상회의’)를 통해 열렸다. 전 세계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아주 특별한 강연의 주제는 <시인 윤동주와 함께 2023 공개강연회: 윤동주의 고향 간도를 말한다>였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 모임(詩人尹東柱を記念する立教の会)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 16일(목)은 지금으로부터 78년 전,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에 유학 중이던 조선 청년 윤동주가 숨을 거둔 날이다. 일제는 스물일곱 꽃다운 청년 윤동주가 조선어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잡아가 후쿠오카 형무소에 가두고 끝내는 목숨마저 앗아갔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랐던 시인 윤동주,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자 했던 시인 윤동주는 안타깝게도 ‘자신의 꿈’을 펴지도 못한 채 차디찬 형무소에서 원인 모를 주사를 맞고 숨을 거뒀다. 윤동주 순국 78년을 맞이하여 윤동주 시인이 유학했던 교토에서는 도시샤대학을 비롯하여 하숙집이 있던 타카하라(지금은 하숙집이 헐리고 그 자리에 교토예술대학이 들어섬) 교토예술대학에서도 윤동주 시인의 삶을 추모하는 열기가 식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제(16일, 목) 아침 10시, 교토예술대학 윤동주 시인 유혼비(留魂之碑) 앞에서는 교토예술대학 교직원ㆍ학생 및 외부 초청인들이 모여 헌화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추모식은 우에노 준(上野潤) 교수의 추모 인사에 이어 1부 헌화식이 있었고, 2부에는 윤동주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의 시간을 가졌다. 우에노
[우리문화신문=이나미 기자] 전남 구례군은 사건 발생 뒤 74년이 지나 시행된 여순사건 특별법에 따라 지난해 1월 21일부터 실시한 여순사건 피해 신고 접수를 올해 1월 20일 자로 마감했다고 밝혔다. 지난 1년 동안 구례군의 모든 접수 건수는 680건으로 희생자 유족의 피해신고 접수가 677건, 진상규명 신고가 3건이다. 전라남도 지자체 가운데 여수, 순천에 이어 3번째로 많았으며 읍ㆍ면별 희생자 수는 산동면이 가장 많고 그 뒤로 간전, 토지, 마산, 광의 순으로 분포돼 있다. 구례군 관계자는 구례 지역 희생자가 적어도 1,300명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사건 발생 뒤 74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르고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도 많아 피해 규모 대비 신고율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지역주민과 유족회의 적극적인 협조로 역사적으로도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구례군에서는 신고가 마감됨에 따라 희생자ㆍ유족 결정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접수 순서에 따라 면담조사와 자료수집 등 사실조사에 본격 착수하는 한편, 추후 개정 가능성이 있는 신고 기간 연장에도 적극적으로 대비한다는 계획이다. 김순호 군수는 추정 피해 규모에 견줘 신고 접수가 적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