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김민기 ‘늘푸른나무(상록수)’ 가운데- 기쁨수레와 서로믿음님이 부르는 노랫말을 들으며, 나는 책 잔치가 열리는 대강당 구석에 앉아 눈시울을 붉혔다. 김민기의 노랫말처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잔치 내내 《푸른배달말집》을 만드느라 “멀고 험한 길을 뚫고 나온 한실 님”의 집념에 옷깃을 여몄다. 어제(3일) 낮 2시, 서울 서초구에 있는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는 아주 뜻깊은 책 잔치가 열렸다. 이날 책 잔치상에 오른 책 이름은 《푸른배달말집》(한실, 안그라픽스)이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배달말, 말집 같은 말에서 이 책이 예사롭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말 국어사전’이지만 그러나 그간 나온 우리말 사전과는 크게 다르다. 무엇이 다를까? 그 이야기를 《푸른배달말집》을 쓴 최한실(아래, 한실) 님에게 들어보자. “《푸른배달말집》에는 죽어가는 우리말을 찾아 실었고, 글말에 물들지 않은 우리말 입말 보기를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오늘(2일) 오늘(2일) 아침 10시 30분, 여의도 국회 소통회관에서는 <국군의 역사를 법제화하는 국군조직법 개정안 발의(아래, 국군조직법 개정안)>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번 <국군조직법 개정안> 발의는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용인시(병) 국회의원의 대표 발의로 추미애, 안규백, 정성호, 박홍근, 윤후덕, 한정애, 신정훈, 김준혁, 김현정, 박용갑, 이기헌, 정진욱, 조국 의원이 공동발의로 힘을 모았다. 기자회견이 시작되자 부승찬 의원은 <국군조직법 개정안>의 필요성에 대해 말을 꺼냈다. “국민통합에 앞장서야 할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있는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등 독립전쟁 지도자 흉상을 철거하려고 하여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의 반발을 일으켜 국론을 분열시켰다. 또한, 국방부는 장병들의 정신교육교재에서 독도를 영토분쟁 지역화하여 논란을 일으키더니, 재발간한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서는 독도의 영토분쟁 설명과 함께 독립영웅을 삭제하여 국민통합이 아닌 국론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다시는 우리 국군의 역사가 흔들리지 않고, 우리 국군이 헌법이 정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처음에는 자료를 많이 모아왔기 때문에 쉽게 집필을 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한인국민회 독립운동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미국과 멕시코, 쿠바에 이르는 국제적인 네트워크에다 독립운동에 나선 지도자들의 숫자를 이루다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아 이를 알기 쉽게 서술하여 접목하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라는 유행가처럼 내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에 뛰어들었나 하는 고뇌의 순간도 많았지만, 초심을 되새기며 1백여 권의 책과 자료를 등불 삼아 책을 완성했을 때의 기쁨은 누구보다도 컸습니다.” 이는 지난 8월 《대한인국민회 100년사》를 미국 LA에서 펴낸 민병용 한인역사박물관장의 말이다. 모두 442쪽에 달하는 이 책에는 미주 독립운동 시절의 100년이 넘는 귀중한 역사적 사진 342장이 수록되는 등 ‘대한인국민회’의 생생한 독립운동 100년사가 오롯이 들어있다. 이 귀중한 책을 지난주 민병용 관장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2021년 10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자료수집, 집필, 편집 등에 꼬박 2년을 매달렸다’라는 편지와 함께 보내온 《대한인국민회 100년사》를 한 장 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 닻 들어라 닻 들어라 / 만경창파에 실컷 배 띄워 가자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인간 세상을 돌아보니 멀수록 더욱 좋다 -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가을’ 가운데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이 시를 지은 것은 64살 되던 1651년(효종2) 9월로 보길도 세연정(洗然亭)에서다. 세연(洗然)이란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단정하여 마음이 상쾌해지는 곳’이란 뜻이다. 고산의 발자취를 따라 서울에서 해남 고택으로 달렸다가 다시 보길도로 가기 위해 차를 몰아 완도 화흥포항에 닿았다. 이곳에서 노화도행 배를 타고 동천항에서 내려 배에 실었던 차를 타고 다시 보길도로 내달았다. 교통이 좋아진 지금도 전혀 쉽지 않은 땅끝마을 보길도(甫吉島)에서 고산은 여생을 마쳤다. 초가을이지만 여전한 무더위 속에 세연정으로 가기 위해 원림(原林)을 걷는다. 가뭄이 들어 원림 속 계곡물은 말라 있었고 숲속 늦매미 울음소리가 더 무덥게 느껴졌다. 평일에 찾아서인지 세연정에는 사람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고즈넉한 시간을 오롯이 보낼 수 있다는 기쁨에 시선을 연못쪽으로 돌리니 부용동팔경(芙蓉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이번에 발표되는 드로잉은 풍경 드로잉으로 국내 편이다. 전국8도(도서포함)를 여행하면서 대부분 즉석에서 그린 것들이다. 사실 내가 드로잉을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손의 감각을 지속해서 유지하기 위함이다. 자동차도 오래 세워두면 녹이 나듯이 손도 머리도 안 쓰면 퇴보되는 것이다.” ‘손도 머리도 안 쓰면 퇴보되는 것이다’ 라는 말에 정수리 한 대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이어 김명식 작가의 말은 이어진다. “두 번째 이유는 드로잉 자체만으로 한 예술의 장르다. 따라서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이 강조된다. 내 경우 대상을 한번 보고 꼭 필요한 부분만 선택하되 빠른 필치로 그려나간다. 이때 현장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면서 뭔가 망설여지면 이미 그것은 작품으로서 가치는 실종된 것이다.” ‘그리면서 원가 망설여지면 이미 그것은 작품으로서 가치는 실종된 것이다.’ 다시 한번, 얻어맞은 기분이다. ‘시인’이라는 허울 속의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자기반성’의 마음으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전시장 안에는 초록빛으로 가득하다. 시골 논밭은 여름에서 가을로 들어선 듯 군데군데 노란빛도 어우러져 화사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올해 한국광복군 창군 84돌 기념식은 그 어느 해보다 엄숙했습니다. 최근 친일 뉴라이트 성향의 인사들이 각계각층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등 상식있는 국민으로서 상상도 못 할 행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들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국가와 민족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 자명한 일이므로 민족을 기만하고 분열시키는 악행은 어떻게든 종지부를 찍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이는 오늘(13일) <광복군 창군 84돌 기념식>에 참석한 오광선 장군의 외손자인 광복군 유족 김흥태 선생이 한 말이다. 낮 11시, 여의도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는 한국광복군유족회(회장 장병화) 주최, 광복회(회장 이종찬) 후원으로 <광복군 창군 84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은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등 국민의례에 이어 배국희 운영위원(미국 LA 대한인국민회 전 이사장)의 한국광복군 선언문 낭독과 장병화 한국광복군유족회장의 기념사, 인천대학교 최용규 전 이사장의 축사 등으로 이어졌다. 한국광복군유족회 장병화 회장은 기념사에서 “최근 일제 망령을 뒤집어쓴 친일 매국노들이 뉴라이트로 환생하여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제(6일) 오전, 완도 고금도 다녀왔다. 충무공 이순신 사당 건너편, 솔바람이 향긋한 솔숲 월송대(月松臺, 고금면 충무사길 86-31)에 올랐다. 보름밤이었으면 휘영청 밝은 달이 노송 사이로 두둥실 떠올랐을 그 월송대에서 소나무 사이의 먼바다를 바라다본다. 이곳 월송대는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충무공의 유해가 열흘 동안 안치되어 있던 곳이다. “이곳 월송대는 충무사 맞은편에 있으며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되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8년 2월 11일,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수군을 재정비하여 왜적을 물리쳤다. 장군이 1598년 11월 19일 노량해전에서 순국하자 본영이었던 이곳에 11월 22일 무렵 도착하여 10여 일간 안치되었다. 이후 1599년 2월 11일, 아산 금성산(錦城山)에 안장되었다가 1614년 4월 어라산(於羅山)으로 이장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완도군 - 완도군 고금도는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통제영이 있던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고금도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하고 노량해전을 준비했다. 이곳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순천 왜성과 100리 거리를 두고 있는 곳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석양이 좋다마는 / 황혼이 가까웠다 / 배 세워라 배 세워라 / 바위 위에 굽은 길이 / 솔 아래 비껴있다 /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 푸른 나무숲 꾀꼬리 소리 / 곳곳에 들리는구나 -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가운데 여름 노래 - 늦여름의 매미소리가 고즈넉한 윤선도 고택에 낮게 깔린다. 윤선도 고택의 백미인 녹우당(綠雨堂, 국보)이란 이름은 “빗소리인 줄 알고 잠에서 깨어보니 빗소리가 아니고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인 것을 알고 '푸른비가 내린다’라는 뜻으로 윤선도의 증손, 공재 윤두서의 절친인 옥동 이서가 이곳에 머물면서 당호(堂號)를 지어주고 현판을 써준 것”으로 오우가, 어부사시사 등 뛰어난 작품을 남긴 조선시대 문장가 고산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살던 고택의 사랑채 이름이다. ‘윤선도 고택’이라고 하면 ‘녹우당’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쉽게도 현재 ‘녹우당’은 일반인 출입이 어렵다. 종택을 지키던 어르신께서 병환으로 서울에서 요양중이라 살림집(녹우당은 안채와 붙어 있어 종손의 살림집으로 사용) 관리차원에서 그러한 조처를 한 듯하다. 그러나 운 좋게(?) 기자는 어제(5일), 녹우당에 들어가 볼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29)는 국치일(國恥日)이었다. 국치일이란 “나라가 수치를 당한 날 곧,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날인 1910년 8월 29일을 이른다.”라고 《표준국어대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국권을 강탈당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던 ‘모든 것’을 강탈당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에게 있던 모든 것이란 ‘숨 쉬는 것’만 빼고 모두 해당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숨 쉬는 것조차 편하지 않았으니 생사여탈권을 모두 빼앗긴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의식주 가운데 의생활을 담당했던 면화도 그 ‘강탈’ 가운데 하나다. <목포근대역사관1관> 2층에는 일제의 면화 침탈의 시작을 알리는 ‘조선육지면발상지지(朝鮮陸地綿發祥之地)’라는 비석이 있다. 비석 글씨는 조선제 6대 총독인 우가키 가즈시게(宇垣 一成, 재임 1931~1936)의 글씨다. 이 비석 뒷면은 '明治37年(1904년)에 목포주재 대일본제국 영사 와카마츠 도사브로(若松兎三郞)가 고하도에서 처음으로 육지면 재배를 시작했다'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이 비석의 원본은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고하도 선착장에서 원마을로 가는 들머리 오른쪽 언덕에 있으며(2012. 5. 2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1910년 8월 29일은 일제의 한국 병탄이 이루어진 경술국치일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국내는 물론 중국 연해주 미주 일본 등지의 해외동포 사회에서도 망국의 치욕을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국치일 추념식을 거행하였다. 국내에서는 곳곳에 ‘국치일을 잊지 말자’는 격문이 나붙었으며, 감옥의 독립투사들은 집단 단식으로 노동자들은 총파업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해외의 동포들은 대대적인 항일행사를 열고 이날 하루 단식으로 독립의 결의를 다졌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국치일을 추념하는 국가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다만 달력에 ‘국치일’이 표시되는 정도였다. 부끄러운 역사인 ‘국치’를 기억하기보다 순국선열을 추도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일을 잊지 않아야 훗날의 가르침이 된다’(前事不忘 後事之師)는 의미에서 을사늑약 체결지인 중명전 복원 추진(2004년), 강제병합조약 체결지인 남산 옛 통감관저 터에 표석 건립(2010년), 국치일에 조기 게양 조례 제정 추진(2013년), 국치 관련 항일음악 발굴(2017년),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2018년) 등의 사업을 진행해 왔다. 경술국치 114년을 맞아 민족문제연구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