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은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함께 실시 중인 사적 「경주 흥륜사터」의 발굴조사에서 경주 황룡사의 금당과 견줄만한 규모의 2중 기단에 차양칸을 갖춘 ‘대형 금당터’를 확인하였다. 이를 포함한 발굴조사의 성과를 공개하는 현장설명회를 9월 26일 낮 11시에 연다.
* 발굴현장: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 285-6번지
* 금당: 절 가운데에 있는 중심건물로 본존불을 모신 큰 법당
* 기단: 건축물을 받치기 위해 흙, 돌 등으로 높게 쌓은 단(시설)
* 차양칸: 햇볕을 가리거나 빗물을 막으려고 출입부나 통로의 상부 벽이나 지붕 끝에 내밀어 만든 지붕
경주 흥륜사는 과거 ‘신라의 미소’ 수막새(보물)가 출토된 절로, 최근 발굴조사에서 ‘영묘지사(靈廟之寺)’, ‘영묘사(靈廟寺)’ 등의 글씨기와가 출토되면서 선덕여왕4년(635)에 창건된 영묘사로 보는 견해도 있다. 또한, 지난해 흥륜사터 서쪽 하수관로 설치 공사 관련 발굴조사에서 다량의 고려시대 청동공양구(靑銅供養具)가 출토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신라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사용된 금당의 기단이 드러났는데, 상ㆍ하층의 2중 기단과 내ㆍ외진을 갖춘 직사각형의 대형 건물 구조로 확인되었으며, 특히, 아래층 기단에서는 햇볕을 가리기 위한 시설의 주춧돌인 차양초석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2중 기단에 차양칸을 갖춘 금당은 경주에서는 황룡사 중금당(584년), 사천왕사 금당(679년)을 빼고는 확인된 사례가 없을 만큼 경주에서 보기 드문 구조로 신라 절 금당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내ㆍ외진: 내진은 벽이나 기둥을 겹으로 두른 건물 안쪽의 둘레이며, 외진은 건물 바깥쪽 둘레로 건물공간의 바깥을 이룸
조사 결과, 금당 건물은 적어도 3단계 이상의 변화를 거친 것으로 확인되었다. 창건기인 삼국시대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금당터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연화문 수막새로 보아 그 존재가 짐작되며, 특히 금당 앞 폐와무지에서는 삼국 말~통일 초에 사용된 연화문 곱새기와가 출토되어 삼국시대에 이미 금당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8세기 전반에는 금당 북동쪽 모서리에 가구식 계단석을 설치한 대형 기단 건물로, 9~12세기 사이에는 넓은 차양칸을 갖춘 대형 건물로 변화된 것이 이번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 폐와무지 : 건물에 사용된 기와를 버린 구덩이
* 곱새기와: 지붕 마루 끝의 장식기와
* 수막새: 목조건축의 추녀나 담장 끝에 기와를 마무리하기 위해 둥글고 긴 형태로 만든 기와의 면
* 가구식 : 여러 개의 석재를 짜맞추어 조립해 만든 모습
또한, 현재 금당터 내부에서 확인된 내진 성토층은 기단석에서 초석까지 높이가 230cm로, 황룡사 중금당의 기단 높이인 110cm에 견주어도 두 배 이상 높은 규모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기단을 갖춘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현장설명회는 누구나 별도 신청 없이 참여할 수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전화(☎054-774-6254, (재)서라벌문화유산연구원)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