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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광해군의 총애를 받은 김개시, 비선실세였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00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개시는 친척 딸의 남편인 ‘정몽필’을 양자로 삼아, 뇌물 챙기기와 백성을 수탈하도록 했다. 또 김개시는 밤낮으로 정몽필과 방에 틀어박혀 음란한 행동을 일삼았고, 국정농단과 매관매직 같은 온갖 악한 짓을 함께 저질렀다.” 이는 펴낸이를 알 수 없는 책으로 조선시대 야사와 잡록을 모아놓은 《대동야승(大東野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김개시는 조선후기 제15대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권세를 누린 궁녀인데 민첩하고 꾀가 많았으며, 이를 배경으로 국정에 관여하여 권신인 대북(大北)의 영수 이이첨(李爾瞻)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윤선도(尹善道)ㆍ이회(李洄) 등이 여러 차례 상소하여 잘못을 지적하였으나, 도리어 그들이 유배되고 말았지요.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반정군에 잡혀 참수당하였습니다.

 

 

심지어 《인조실록》 1년(1623년) 9월 14일 기록에 보면 “김씨(김개시)는 곧 이른바 김 상궁인데 일찍이 선조의 후궁으로 있다가 뒤에 폐주(광해군)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무신년 선조의 승하 당시 약밥에다 독약을 넣었다는 말도 있었다. 적신 이이첨이 김씨에게 빌붙어 음흉한 모략과 흉게에 가담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안팎의 크고 작은 벼슬이 모두 김씨와의 협의를 거친 뒤에야 낙점받았으므로 권세가 온 나라를 기울였다.”라고 나와 있을 정도입니다. 김개시는 지금 흔히 회자하는 ‘비선실세’로 나라를 쥐락펴락하다가 끝내는 목을 베이는 벌을 받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