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한성훈 기자]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소장 황인호)는 사적 「경주 월성」 발굴조사에서 3세기 때 마을 양상을 확인하였으며, 이러한 사로국 시기의 거주 형태가 월성 내부에서 조사된 것은 첫 사례다. 이에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는 10월 7일 낮 2시 발굴조사의 성과를 일반에 공개하는 현장설명회(월성 A지구 발굴현장)에 이어, 10월 8일 아침 10시에는 학술 토론회(경주 힐튼호텔)를 연다.
* 사로국 시기: 진한 12개 나라 가운데 하나로서, 경주 일대에 형성된 초기국가 단계(서기전 1세기~서기 4세기 중엽)
* 월성 A지구 발굴 현장: 경북 경주시 교동 42번지 일원, 월정교 옆
이번 현장설명회에서는 월성이 왕성(삼국시대에 토축 성벽으로 구축된 형태)으로 전환되기 전인 사로국 시기 마을(3세기 전~중엽경)의 모습을 살펴본다.
이번에 공개되는 구역은 월성 서남쪽 가장자리에 있는 지점으로, 남천(南川)에 접해 있는 연약지반에 모래층이 퇴적된 지형이다. 발굴조사를 통해, 3세기 전~중엽에 이러한 취약한 대지에 취락을 조성하기 위해 1.5m 높이에 가까운 성토 작업이 행해진 것으로 밝혀졌으며, 성토 재료로는 벼의 겉껍질, 식물 종자, 조개껍질 등이 혼입된 유기물질이 작업 공정별로 달리 사용되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막대한 인력과 물자가 동원되었을 성토 작업이 성벽 축조보다 100여 년 앞선 시점에 이미 진행됐다는 것이다.
* 성토: 견고한 지반을 구축하고자 여러 가지 흙들을 다져 올림.
이와 함께,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의례를 거행한 흔적을 보여주는 유구도 확인되었다. 목제 기둥을 세워 만든 유구는 지름 6m가량의 원형 구조이며, 불을 질러 마무리하는 의례로 폐기된 상태였다. 유구 안에는 종류별로 2~3점씩 짝을 맞춘 토기 15점이 출토되었고, 그 토기 위로 황색 물감이 발린 마직물이 감싼 흔적이 확인되기도 했다. 특히, 개를 의례 제물로 바친 정황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에 유례가 없어 주목된다.
이어서 진행되는 학술 토론회에서는 전문가를 초청해 학술적 의미를 토론할 예정이다. 전문가 토론회는 ▲ ‘사로국 시기 월성 취락이 제기하는 쟁점’에 대해 발제한 뒤 ▲ 월성 이전 취락의 조사 내용을 검토하는 ‘1부 토론’과 ▲ 월성 축조 이전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함의에 대해 논의해 보는 ‘2부 토론’으로 진행된다.
이번 현장설명회와 학술 토론회는 참여를 희망하는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방문, 참여할 수 있다. 행사와 관련한 자세한 문의는 전화(☎054-778-8712)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