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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건 보리죽, 걸신들린 듯 퍼먹던 5남매

이학주, <보릿고개 넘던 시절>
[겨레문화와 시마을 22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긴 겨울 싸늘한 냉골에 누워

     새우잠 주무시던 우리 어머니

     파릇파릇 4월이 새순 돋으면

     산나물 캐다 장에 내다 팔아

     보리쌀 몇 됫박 사서이고 오시어

     가파튼 보릿고개 헐떡헐떡 넘기셨지

 

     저녁 밥상에

     풋나물 뜯어 끓인 멀건 보리죽

     철부지 5남매 삥 둘러앉아

     걸신들린 듯 퍼먹는 모습 보시고

     어머니 눈은 촉촉이 젖으셨지

                         ...이학주 시인의 <보릿고개 넘던 시절> 가운데

 

 

 

그제는 24절기 가운데 아홉째 망종(芒種)이었다. 망종이란 벼, 보리 같이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씨앗을 뿌려야 할 적당한 때라는 뜻으로 보리 베기와 모내기에 알맞을 때다. 그러므로 망종 무렵은 보리를 베고 논에 모를 심는 절기로 “보리는 망종 전에 베라.”, “보리는 익어서 먹게 되고, 볏모는 자라서 심게 되니 망종이요.”라는 속담이 있는데 망종까지 보리를 모두 베어야 논에 벼도 심고 밭갈이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무렵은 모내기와 보리베기가 겹치는 때여서 “발등에 오줌 싼다.”, “불 때던 부지깽이도 거든다.”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한해 가운데 가장 바쁜 철이다.

 

그러나 예전엔 보리 베기 전에 늘 ‘보릿고개’라는 것이 있었다. ‘보릿고개’를 뜻하는 한자말 ‘맥령(麥嶺)’, ‘춘기(春饑)’, 궁춘(窮春), 춘빈(春貧), 춘기근(春飢饉), 궁절(窮節) 같은 여러 가지 말들이 《조선왕조실록》에도 자주 나올 정도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망종까지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 많았는데 보리는 소화가 잘 안돼 ‘보리방귀’라는 말까지 생겼지만, 보리방귀를 연신 뀔 정도로 보리를 배불리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기도 했다. 오죽하면 ‘방귀 길 나자 보리양식 떨어진다.’라는 속담이 나왔을까?

 

여기 이학주 시인의 <보릿고개 넘던 시절>에 보면 “싸늘한 냉골에 누워 새우잠 주무시던 우리 어머니” 산나물 캐다 장에 내다 팔아 보리쌀 몇 됫박 사서이고 오시었다고 했다. 그리곤 “저녁 밥상에 풋나물 뜯어 끓인 멀건 보리죽”을 내놓으셨는데 철부지 5남매 걸신들린 듯 퍼먹었다고 회상한다. 50~6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며칠씩 굶기가 일쑤여서 당시엔 “보릿고개”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었다. 조선시대는 물론이지만,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는 지금도 여전히 굶는 사람들은 있다. 그래서 내 배만 배부르다고 두드릴 것이 아니라 이웃에 굶는 사람은 없는지 돌아볼 일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