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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박영효가 대원군에게 제시한 것

대원군, 조선의 정치는 김옥균과 박영효가 맡아라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62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2007년 일본에서 펴낸 《伊藤博文文書(이등박문문서)》에는 ‘대원군 음모에 관한 시말’이라는 제목으로 대원군과 김옥균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내막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토 히로부미에게 제출한 문서인데 김옥균의 뜻과 행동 나아가 당시의 정세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정보로 보인다. 그 개요는 다음과 같다.(참고: 김흥수 홍익대 교수의 2020 논고 <김옥균의 최후>)

 

1887년경 박영효는 일본인 오가와 미노루(小川實, 1887년 이래 조선에 제분-製粉 교사로 고용되었는데 주로 무기 구매를 중개함) 편에 대원군에게 서한을 보내 국사를 도모할 것을 타진한다. 이어 1891년 2월 신화폐 주조를 일본 정부와 협의하기 도쿄에 온 안경수에게 대원군 앞 편지 전달을 부탁하였다. 편지에서 대원군에게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 대원군이 임금에 상주하여 온건한 방법으로 국정을 개량.
둘째,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민씨 세력을 제거하여 국정을 개혁.
셋째, 둘 다 불가능하면 수단을 다해 일본으로 건너오실 것.

 

귀국한 안경수는 이 편지를 오가와에게 주고 오가와가 대원군에게 전한다. 이에 대원군은 “온 조정이 놀라서 들썩거릴 일”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 뜻을 박영효에게 통지하라고 오가와에게 이야기한다. 대원군의 말을 접한 김옥균과 박영효는 대원군의 의도가 못 견딜 정도로 궁금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우선 연명으로 편지를 작성하고 오가와를 통해 대원군에게 보낸다. 그 때 보냈던 것으로 보이는 편지의 사본이 현재 일본 사노(佐野)시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은 김옥균을 존경했던 수나가 하지메(須永元)가 기증한 것이라 한다.

 

 

이 편지에서 김옥균과 박영효는 먼저 “우리나라 오늘의 상태는 간신과 권신이 사사롭게 일을 처리하고 생민이 도탄에 빠져 멸망이 임박”한 것 같다고 진단하고 “합하(대원군)께서 금일 비록 천하의 일을 하지 않으려 하나 살갗을 파고들고 뼈를 바르는 매우 위급한 상태이니 수수방관하지 말고 우리 조종열성(祖宗列聖)을 위해 신하의 본분을 다하시라”라는 내용이다.

 

대원군은 편지를 가져온 오가와에게, 자신은 연로하고 다른 야망이 없으니, 조선의 정치를 모두 박ㆍ김 두 사람에게 맡기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명맥은 매우 위급하고, 이를 구할 자는 박・김 두 사람을 제하고 달리 바랄 수 없다”라고 하면서 두 사람에게 전하라고 한 것이다.

 

그때 대원군은 박ㆍ김이 권력을 장악할 네 가지 방책을 제시하였다.

 

첫째, 두 사람이 일본 병사 200명 정도를 거느리고 인천에 올 것,
둘째, 이것이 불가능하면 일본에서 병사를 일으키는 모습을 꾸밀 것,
셋째, 이것도 일본 정부의 방해를 받아 할 수 없으면 두 사람이 조선에서 거사하려는 음모를 신문에 게재할 것,
넷째, 만약 이것도 불가능하면 임금에게 두 사람이 죄 없이 역적의 죄명을 쓰게 된 이유를 따져 묻고 그 결심이 굳건함을 보일 것.

 

이 네 방책 가운데 하나를 실행하면 정부는 필시 동요할 것이다. 그 기회를 타서 북양함대의 파견을 요청, 민씨 세도가들을 포박하여 함대에 넘기고 조선의 정치는 김옥균과 박영효가 맡는다는 구상이었다. 이 대원군의 구상은 1891년 8월 김옥균에게 전해진다.

 

- 다음으로 이어진다.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