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제물포에 입항하기 일주일 전인 1884년 5월 21일 나가사키에서 조지 포크는 난생처음으로 조선 음식을 먹어본다. 그 소감을 고국의 가족에게 이렇게 전했다. 그리운 부모님, (…) 오늘 저는 조선 친구들을 보러 갔습니다.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unboundedly glad to see me). ……그들이 제게 코리아 음식(Korean meal)을 대접했답니다. 매우 맛있었어요. 일반 외국인의 입에는 그게 이상할지 모르지만 저는 매우 좋았습니다. 일본 음식보다 유럽인의 구미에 더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상의 여느 외국인과 달리 조선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극동지역의 모든 생활 방식에 이상할 정도로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죠. 코리아 음식이 그렇게 좋다는 걸 발견하고 저는 무척 기뻤답니다. 걱정했거든요. 조선에서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 걱정은 이제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곳 나가사키를 떠나면 저는 정말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이후로는 모든 편지가 생소한 장소에서 발송될 겁니다. 이 편지가 트렌턴호의 해군 소위로서 보내는 마지막 소식이 되겠군요. (…) 이제 우리는 조지 포크 그가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7일 관촉사의 은진미륵을 본다.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그림 곁에 관련 정보를 세밀히 기록해 놓았다. 모자 부분의 끝에 달린 고리의 도안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과학성과 미학을 나름대로 갖추고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포크는 이 날짜 일기에 이렇게 기록했다. “은진(unjin) 고을에서 미륵상으로 가는 길은 대체로 북쪽 방향이다. 풀이 자란 언덕을 넘어가 굽이진 길로 5리 거리였다. 언덕에 무덤이 매우 많았고 다랑이논들도 보였다. 차츰 내리막길로 내려가 들가에 이르렀다. 언덕 정상 부근에는 화강암 바위들이 솟아있다. 미륵상은 평야 위로 솟은 동산의 100피트 30m가량 높이에 세워져 있다. 미륵상의 이마에는 황금 명판이 새겨져 있다. 지름이 10인치(25cm)는 되어 보였다. 그 가운데에 수정구슬이 박혀 있다. 모자 부분이 무척 크고 아래 면으로 조각이 잘 되어있다. 나는 6장의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는 사진을 감상해 본다.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지난번 글에서 첫 한글 지도는 한국인이 아니라 미국 군인이자 외교관인 조지 포크(George C. Foulk, 1856-1893)가 제작(의뢰)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한글 지명을 직접 쓴 사람은 누구였을까? 조지 포크의 의뢰를 받은 조선인일까? 아니면 조지 포크가 직접 썼을까? 아직 학계에서 밝힌 바 없는 것 같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조지 포크가 직접 썼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자와 한문 및 한글을 알고 늘 썼던 첫 미국인이었다. 그의 한글 공부와 한글 필치를 그가 지니고 다녔던 대학노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자료는 현재 미국 버클리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지 포크는 조선의 외교부서와 국한문 혼용 문서를 자주 교환하였다. 다음은 포크가 조선 외무대신에게 보낸 공문(음력 1886. 3월 20일자)의 일부다. 포크의 손글씨를 외무부서에서 등록한 것이다. 포크와 조선 정부 사이 주고 받은 문서가 모두 서울대 규장각에 보존되어 있다. 단, 손글씨 원문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다. 확인하지 못했다. 어쨌든 포크는 늘 한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