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1일부터 44일 동안 한강 이남의 조선 남부를 탐사했다. 대학노트 약 350쪽을 여행기로 가득 채웠다. 삽화도 다수 그려 넣었다. 수많은 주막에 들렀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사람도 당시 그처럼 많은 주막을 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여행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도 ‘주막’인 것 같다. 그가 숙박한 주막을 중심으로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그가 여행기 첫 쪽에 적어 놓은 여행단 내역을 보겠다. (뒤침) 우리 여행단은 다음과 같다: 조지 C. 포크 미국 해군 소위 전양묵, 양반 정수일, 조지 포크의 수행원 가마꾼 12명 말몰이 소년 2명(11월 5일 공주에서 한 명이 추가되어 3명이 된다) 하인 1명 총계: 18명의 인원에 2필의 말, 3대의 가마 5 상자의 트렁크, 3개의 손가방, 사진기, 삼각대, 총기 상자, 돈 바구니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5살의 조지 포크를 만나 보자. 해군사관학교에 막 들어간 아들에 대해 아버지가 자기 동생(포크의 삼촌)에게 거침없이 자랑하는 편지다. 매우 긴 편지의 손글씨 판독이 썩 어렵다. 오래 뚫어본 결과 거의 완파하였다. 번역문을 여기에 올린다. 1872년 6월 20일 마리에타에서 친애하는 조지 사관생도 조지 클레이턴 포크를 소개하려네. 나는 방금 아나폴리스에서 돌아왔네. 거기에서 녀석이 학교용 군함 산텍호(US S School Ship Santec)에 승선하는 것을 보았네. 이제 그 자초지종의 역사를 기술하려 하네. 5월 초 우리 지역 의회의 의원인 디키(Dickey)가 카운티 신문을 통해 밝혔다네. 곧 랑카스터 지역에서 14살에서 18살 사이의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선발시험을 열어 가장 우수한 인재를 한 명 뽑아 해군사관학교 생도 후보로 추천하겠다고. 디키 의원은 브룩스 교수, 에반스 교수 그리고 헤이스 판사를 심사 위원으로 임명하고 신체검사는 블랙우드 박사에게 위촉했다네. 이 소식을 나는 아들 녀석에게 알려주면서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었지. “아빠, 딱 제게 맞군요, 도전해 보고 싶어요.” 하더라구. 나는 녀석를 데리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2월 중순 조지 포크가 사경을 헤매던 중 고종이 보낸 관리를 만난 것은 12월 13일이었다. 그 날짜 일기다. 12월 13일 8시 19분 주막(경기도 이천)을 나섰다.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날씨가 카랑하다.(쇳소리처럼 높고 맑다) 4리 정도를 간다. 언덕을 넘는다. 가마꾼들이 흔연하다. 그들이 견뎌내는 게 내겐 경이롭다. 길 위에 농부 몇 명이 보인다. 10시 2분에 5분 동안 휴식을 취하다. 좁은 골짜기를 내려간다. 나무가 많다. 가마꾼 턱수염 위에 얼음이 맺혀 있다. 11시 48분 어떤 마을에서 휴식을 취하다. 가마꾼들이 술을 마신다. 길이 양호하고 평탄했다. 하지만 인적은 드물다. 12시 38분 길가에서 휴식. 이곳까지는 길이 내내 좋았다. 우리는 지금 북서쪽으로 뻗은 골짜기 안에 있다. 금릉위 박영효가 그저께 인천의 일본인 거류지에서 서울로 끌려갔다는 이야기를 길에서 들었노라고 수일이 말한다. 1시 36분 출발한다. 곧 저쪽에서 큰 외침 소리가 들린다. ‘어명이다. 멈춰라!’. 나의 가마가 내려진다. 겁에 질린 가마꾼들이 얼어붙은 듯 서 있다. 저쪽에선 전양묵이 가마 속의 관리와 무언가 말을 나누고 있다.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