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동경 주재 영국 엘리트 외교관 사토우(Satow)가 고베 주재 동료 외교관 스톤(Aston)에게 보낸 1881년 8월 23일 자 편지다. “이동인이 나가사키에 도착했다는 정보가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그는 정말로 미로운 인물이니까요. 만일 목숨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기 나라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길 겁니다. (I hope the information that Tong-in has arrived at Nagasaki may prove to be correct, for he is really a very interesting man and if he can keep his head on his shoulders, pretty sure to make his mark in the history of his country.)” 사토우는 다음 해인 1882년 6월 12일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김옥균, 서광범 그리고 탁정식과 저녁식사를 하다. 그들은 매우 서글서글하고 입담이 좋다. 내가 아는 어떤 일본인보다도 훨씬 더 개방적이다. 이태리 피에몬트(Piedmont)인과 피렌체 사람이 대조적이듯이 그런 인상을 준다. 식사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민기 원년 4월 4일 내란 우두머리 파면 선고가 천하를 울릴 때 나는 박규수(朴珪壽 1807-1877)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연암 박지원의 친손자다. 삶의 마지막 기간을 오늘날 헌법재판소 경내의 백송나무 자리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가 환생하여 북을 치고 경을 치는 것을 우리는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헌법 재판관 한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목소리, 집단지성의 공명이었다. 그 시원을 찾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의 홍익인간까지 이른다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가깝게 근세 여명기의 환재 박규수에서 찾는 게 더 실감 날지 모른다. 그는 놀랍게도 20대 초에 근 200년 뒤의 한국을 내다보았던 것만 같다. “무당이 발호하거든 나라가 망할 때가 온 것임을 알라.” 그가 20대 초, 1830년 어름에 썼던 다음 글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린다. “골짝과 덤불과 시내와 늪은 때로 사(邪氣)를 뿜고, 벌레와 물고기와 나무와 돌은 오래되면 요물이 되어, 이매망량과 같은 도깨비로 변한다.(…) 이것들이 왕왕 세상에 나타나 백성들의 재앙이 된다. 그러자 요사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민기원년 곧 서기 2025년은 을사늑약 120년이 되는 해다. 천길나락이 솟아올라 빛의 영봉으로 탈바꿈하는 진풍경을 우리는 날마다 아니 시시각각 보고 있다. 민주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이 기적 아닌 기적은 과연 하루아침에 우연히 이루어진 것일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어쩜 단군의 홍익인간에서 발원한 K-파동(WAVE)일지도 모른다. 좀 더 가까이는 1884년 말 삼일천하로 끝났던 갑신혁명, 1894년의 동학농민전쟁, 1898년의 만민 공동동회, 1919년의 3.1만세운동,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줄기찬 반제 항일 독립투쟁, 광복 뒤의 4.19, 5.18, 6월 혁명, 촛불 혁명 등의 애끓은 물결이 큰 욧솟음으로 하늘 높이 솟구친 것일지도. 내란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항상 우리 곁에 있고 우리 등 뒤에 있다.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망각하는 순간에. 내란 요괴들은, 우리가 민전 1년(서기 2024년) 겨울밤의 그 어둠과 공포를 망각하는 순간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가 마냥 승리에 도취할 수만은 없는 까닭이다. 이 해를 민기 원년으로 하는 새로운 연기를 쓰자는 뜻도 여기에 있음은 물론이다. 민기는 어느 정파, 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