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어젯밤 경기도 소사에 도착하기 전이었다. 엄청난 기러기 떼가 서쪽에서 북쪽으로 낮게 날았다. 밤에 기러기 소리에 종종 잠을 깼다. 오늘은 꽤꽥거리는 기러기 소리가 더욱 잦다. 정말 많은 기러기가 주변을 날아다닌다. 조선인들은 기러기를 건드리거나 잡아먹지 않는다. 대신에 기러기를 잡아 집을 지키는 용도로 쓰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안성장에 갔다. 규모가 매우 컸다. 족히 4천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군중이 나를 보러 밀려든다. 북새통 속에서 한 소년이 넘어지며 감을 떨어뜨린다. 순식간에 등을 밟히고 진흙탕에 머리를 쳐박힌다. 사람들에 에워싸인 나는 앞을 볼 수 없다. 내게 적개심을 보이거나 쏘아보는 기색은 없지만 무례한 호기심은 놀랍다. ‘’쉿”, “제미”라고 외치며 웃는 소리가 들린다. 천태만상 호기심 어린 얼굴들이 보인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고 무례하여 엄두가 나지 않는다. 군중을 해산시키기 위해 내 일꾼들이 몽둥이질을 해댄다. 소년을 후려치기도 하고 갓을 잡아채기도 한다. 나는 악당 같은 그들의 행동을 막느라고 힘들었다. 10시 42분 가까스로 장터를 벗어났다. 매우 신기한 경험이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11월 1일 아침 8. 58 : 서울 갓전골 입동(수표교 근처)의 집에서 출발 ▶ 갓전골 : 조선 시대 수표교 부근 '갓전골'은 현재의 서울특별시 종로구 관수동과 관철동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다. 이곳은 조선 시대에 갓(冠)을 만들어 팔던 가게가 많아 갓전골(갓전골)이라 불리게 된 지역이다. 9. 58:- Pa-chon-kori 도착 10. 40: 동작 나루를 건너 관악으로 향함 11. 9 : 승방돌 도착. 승방돌은 서울에서 20리, 과천까지는 10리 12. 29 : 과천의 끝 도착 낮 1.25 : 갈뫼(갈산)에서 휴식 2.10 : 사근내Sakunae(沙斤乃) 도착 ▶ 경기도 ‘사근내(沙斤乃)'는 오늘날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사근내' 또는 '사그내'는 오전동, 왕곡동 등 사방에서 흘러들어오는 개울을 뜻하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한자 표기로는 사근내(沙斤乃) 또는 사근천(沙斤川)이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평사천(平沙川), 고정동(古亭洞), 고고리(古古里), 내곡동(內谷洞) 등이 합쳐지면서 '고천리(현재의 고천동)'가 되었다. ‘사근내(沙斤乃)'의 역사적 역할 (사근내원-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조지 포크는 1884년 11월 1일부터 44일 동안 한강 이남의 조선 남부를 탐사했다. 대학노트 약 350쪽을 여행기로 가득 채웠다. 삽화도 다수 그려 넣었다. 수많은 주막에 들렀다. 외국인은 말할 것도 없고, 조선사람도 당시 그처럼 많은 주막을 들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의 여행기에 가장 자주 나오는 단어도 ‘주막’인 것 같다. 그가 숙박한 주막을 중심으로 그의 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먼저. 그가 여행기 첫 쪽에 적어 놓은 여행단 내역을 보겠다. (뒤침) 우리 여행단은 다음과 같다: 조지 C. 포크 미국 해군 소위 전양묵, 양반 정수일, 조지 포크의 수행원 가마꾼 12명 말몰이 소년 2명(11월 5일 공주에서 한 명이 추가되어 3명이 된다) 하인 1명 총계: 18명의 인원에 2필의 말, 3대의 가마 5 상자의 트렁크, 3개의 손가방, 사진기, 삼각대, 총기 상자, 돈 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