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오늘날의 시는 고립되어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은 시와 독자와의 거리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을 곧 시의 위기라고 단정한다면 속론(俗論)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것은 오히려 시의 영광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광의 고립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최소 시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 불행인 것이다. 이러한 불행은 서정의 상실에 그 원인이 있다. 서정은 샘물이다. 그 샘물은 흐르고 스며서 사람의 마음을 적신다. 그리고 적셔진 그 마음들은 쉽게 융화될 수 있다. 시인 손병철은 이러한 가운데서 시가 상실한 그 서정을 회복하고 있다.“
이형기(李炯基) 시인은 손병철시전집 《마음달의 뿌리》 <정좌> 서(序)에서 이렇게 손병철 시인의 시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떨리는 손끝에서 / 봄은 피었다 지고 / 역사는 거꾸로 흐른다. / 하나의 여백을 보람으로 채우며 / 따스한 스승의 손길에 닿는다 / 오직 정성으로만 다져지는 / 고운 원심(圓心이여 / 원시를 그리는 눈에 오늘이 새롭다.“라는 시를 예로 든다.
지난 11월 문경에 은거하여 시작과 저술을 하는 라석 손병철(손병철) 시인이 손병철시전집 《마음달의 뿌리》를 솔과학을 통해서 펴냈다. 무려 900여 쪽에 이르는 대작이다.
시집은 1. 정좌(제1 시집), 2. 내 사랑은(제2 시집), 3. 허황옥이 가락국에 온 까닭(제3 시집), 4. 지상에 머무는 동안(제4 시집), 5. 창가에 두고 온 달(제5 시집), 벌바위 통신(제6 시집), 7. 마음달의 뿌리(제7 시집)를 한곳에 어우른 것이다.
221쪽에는 ‘청정(靑田)의 자연’이라는 시에는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고, 밭이랑이기 일쑤다.
물이라기보다는 개울이고, 징검다리가 놓였다.
안개가 자욱이 피어나고, 나뭇잎들도 우수수
조선의 하늘과 땅이 비로소 거기 살아있다.“라고 노래한다.
시인의 시에서는 이형기 시인의 말처럼 상실한 그 서정을 회복하는 노래들을 한다. 하지만, 그저 서정이 아니라 깊숙이 즈믄 해(천년) 전 고운(孤雲) 최치원의 풍류가 들어있고, 그저 풍류가 아니라 조선의 뫼(산)와 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또한 중국 북경대학에서 미학과 철학을 공부한 시인다운 시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글꽃(벌바위 통신 198)이란 시에서는
”이슬 대신 봄비로
단계에 먹을 갈아
붓꽃으로 글씨 쓰니
글자마다 향기 나네.“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봄비로 단계연(명품 벼루)에 먹을 갈아 붓꽃으로 글씨를 써 글자마다 향기가 난단다. 기가 막힌 시 향기다. ‘벌바위’는 시인이 7년 전 은거한 문경시 가은읍 완장리의 우리말 땅이름이다. 따라서 ‘벌바위 통신’이란 시인이 완장리에서 손말틀(휴대폰)에 틈틈이 써뒀다가 노트북에 옮겨 정리한 시들이다.
502쪽을 보면 어떤 ‘하안거(夏安居)’라는 시가 보인다.
”오늘 열한 번째 날인데 깨달음의
소식 있느냐 질문에 운문이 답하길
내일은 열두 번째 날입니다 말했다
동문서답도 깨달음이라면 어쩌겠나”


중국 선종(禪宗)ㆍ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 운문선사(雲門禪師, ·864~949)가 저렇게 말했을까? 갑자기 날씨가 싸늘해진 날 한 스님이 운문 선사에게 “나뭇잎이 시들어 바람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었을 때 운문 선사는 “체로금풍(體露金風)이니라. 나무는 있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낼 것이고, 천지엔 가을바람만 가득하겠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 선사야말로 “오늘 열한 번째 날인데 깨달음의 소식 있느냐”라는 말에 ”내일은 열두 번째 날입니다 말했다“라면서 동문서답도 깨달음이라고 생각했을 수밖에.
시인은 이 문집 이전에 1974년 첫 시집 《정좌(正坐)》를 세상에 내놓은 이래, 1983년에는 라석 4행시집 《내 사랑은》, 1995년에는 가야 기행을 바탕으로 한 《허황옥이 가락국에 온 까닭》과 《지상에 머무는 동안》을 차례로 펴냈다. 그 뒤 중국 유학 시절에 집필한 다섯 번째 시집 《창가에 두고 온 달》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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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는 깨달음에 이르는 빛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마음달의 뿌리》의 저자 손병철 시인과의 대담
- 지난 2023년에 무려 768쪽에 달하는 《라석심물시(羅石心物詩)》를 펴낸 데 이어 이번엔 더 양이 늘어난 무려 904쪽의 《마음달의 뿌리》를 내놓았다. 이런 두꺼운 책을 연이어 내는 까닭은?
”지난번에 펴낸 동아시아 문명기행시집 《라석심물시》(라석문집 III)는, 35년 동안 중국 대륙을 여행하며 기록한 시편들을 누리소통망(SNS)상 매일 365일 동안 나라 안팎 독자들에 보낸 시와 사진 자료 3,000여 장을 한 권에 담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량이 많아졌다. 이번에 펴낸 《마음달의 뿌리》(라석문집 I)는 '손병철시전집'으로, 1974년에 발간한 첫 시집 《《정좌(正坐)》를 비롯해 지난 50년 동안 출간한 다섯 권의 시집과 미발표 시집 두 권 모두 7권의 시집을 합본한 책이다. 여기에 번역 한시를 모은 부록 《동이문시집(東夷文詩集)》을 덧붙이면서, 결과적으로 또다시 두꺼운 책이 되었다.“
- 지난 중국기행시집 제목이 《라석심물시(羅石心物詩)》였고, 이번 시전집 제목을 《마음달의 뿌리》로 한 까닭은?
”심물시는 내가 쓰는 새로운 철학용어인 심물철학(心物哲學)에서 가져왔고, 이번의 시전집 제목은 심물철학시를 모은 제7시집 '마음달의 뿌리'에서 옮겨 온 것이다. 마음과 사물이 서로 조응(照應)하여 철학은 사유로, 시는 직관으로 존재한다. 마음이 거울이면 사물은 그 빛의 영향이자 표상이다. 나의 시와 서화는 모두 나의 심물, 곧 자연의 본받음이라 할 수 있다. 마음달(心月)도 마음거울(心鏡)과 다르지 않다. 마음의 뿌리는 밝은 기운에 있고, 내 양심의 얼에 있으며, 나의 시는 자연과 성인의 가르침에 의해 깨달음에 이르는 빛의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 중국 북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는데, 그곳에서 무엇을 전공했나?
”나는 한중 수교 이전에 중국대륙에서 유학한 1세대다. 북경대학에서 위진시대(魏晉時代)의 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이후 북경대학 비교문학·비교문화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박사후 과정(Post-Doctoral Course)을 이수했다.“
- 시전집에는 여러 문인의 서문과 추천글이 실려 있다. 그렇게 받을 수 있었던 사연은?
”나의 서예 스승이신 소전 손재형 선생은 한국예총 제2ㆍ3대 회장과 예술원 부회장을 지내신 분이다. 1974년 첫 시집 《정좌》의 제호를 써 주셨고, 이를 계기로 이어령, 조병화, 문덕수, 김종문, 이형기 선생 등 문협의 여러 문인을 소개받아 서문ㆍ발문ㆍ평문을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평소 존경해 온 김지하 시인을 비롯해 김규동, 조태일, 박재삼, 강우식 시인과 철학자 최진석 교수, 그리고 불한시사 시벗들(이달희, 박정진, 김주성)도 기꺼이 글을 써 주었다.“
과연 라석 시인다운 마당발이다.
- 한시 작품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는데, 북경대학에서 공부한 영향인가?
”그게 아니라 한시는 유년 시절 외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며 자연스럽게 익혔다. 네 살 무렵 <천자문(千字文)>을 암송했는데, 천자문은 4언 250구로 이루어진 운문 형식의 장시다. 소년 시절 방학 때에는 이백과 두보 등 당시(唐詩)를 배우기도 했다. 평소 번역해 두었던 한시들을 정리하고 보완해 중국 벗들을 위해 부록으로 실었다. 제목에 관해 설명하자면, 한자의 모태인 갑골문이 동이족(東夷族)의 문자라는 인식에 따라, 이를 단순한 한시집이라 부르지 않고 《라석동이문시집》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이름을 붙였다.“
번역 한시를 모은 것은 ‘동이문시집(東夷文詩集)’이란다. 과감히 중국인이 아닌 동이족의 시집임을 분명히 한다. ”너희들이 조선의 것을 중국 것으로 둔갑시키는데 사실은 동이문명이 너희를 앞선 것 아니더냐?“라고 일갈하는 것이다.
- 시집에는 '글꽃'과 같은 서정시부터 불교적 성찰의 '어떤 하안거', 민족적 정서를 담은 '춘설다원' 등 작품들이 폭넓게 실려 있다. 이러한 시들은 어떻게 쓰이게 되었나?
”50년 동안 써 온 시를 한 권으로 묶다 보니 900수에 이르렀지만, 사실 내놓기 부끄러운 작품도 적지 않다. 다만 그것들이 내 삶의 정직한 기록이기에, 지난 발자취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시선집이 아니라 시전집이 된 것이다. 등단 초기에는 서정시 위주로 작품을 썼고, 1970~80년대를 거치며 사회와 문화 전반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이른바 ‘참여시’도 쓰게 되었다. 「춘설다원」은 한국 남종 문인화의 맥을 이은 의재 허백련 화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예술행정과 잡지 발간, 화랑 운영, 기획전시 등 시·서·화 예술을 가까이하며, 예술가와 그 예술 세계를 평문과 시로 표현하게 되었다.
「글꽃」은 은퇴한 뒤 산방의 정원에서 붓꽃으로 붓을 만들어 먹글씨를 써 본 경험을 담은 시이고, 「어떤 하안거」는 불교철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선시(禪詩)에 관한 관심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전집에 실린 『벌바위통신』과 『심물철학시』는 문경으로 은퇴한 뒤 10년에 걸쳐 집필한 작품들이다.“
- 지금도 우리 <우리문화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불한시사 합작시'를 쓰는 등 활발하게 시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
“합작시를 연재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내년 상반기에는 불한시사(弗寒詩社)의 합작시 500여 회와 나라 안팎 벗들과 주고받은 화답시(和答詩)를 한데 묶어 '라석문집 II'로 펴낼 예정이다. 또 하반기에는 현재 매일 독자들에게 발송하고 있는 심물론철학시 연재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를 정리해 '라석문집 IV'로 펴낼 계획이다. 이후에는 서화ㆍ 미술평론, 철학논문ㆍ번역, 역학주석, 수필집과 서화인 작품집 등 10여 권의 문집을 차례로 펴낼 생각이다.
라석 시인과의 대담은 흥미진진 끝이 없다. 철학을 오래 공부하고 시를 써오며 그림을 그린 학자면서 예술인이지만, 잘난 채란 대화 내내 보이지 않고 합리적이다. 그런 깊이 있는 삶의 궤적이 책 속에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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