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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3.1독립선언, 을사늑약 논의한 곳에서 했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520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이틀 뒤면 3.1만세운동 106돌이 되는 날입니다. 국권 회복을 위해 민족자존의 기치를 드높였던 선열들의 위업을 기리고 애국심을 드높이기 위해 1919년 3월 1일 낮 2시 민족대표들은 조선음식점 태화관(종로구 인사동)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지요.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독립선언을 한 장소가 하필이면 요릿집이냐며 비판합니다. 정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한 것이 잘못일까요?

 

 

이곳 태화관은 원래 중종이 순화공주를 위해 지어준 순화궁(順和宮) 터였는데 이완용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이었음은 물론 1905년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을 몰래 논의한 곳이며, 1907년 7월 고종황제를 퇴위시킨 다음 순종을 즉위케 한 음모와 1910년 강제 병탄 조약 준비 등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따라서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기 위한 행위가 모두 이 집에서 벌어졌음도 비판하고 있지만, 민족대표 33인의 생각은 바로 여기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써 매국적인 모든 조약을 무효로 한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음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원래는 독립선언 장소로 탑골공원이 정해졌었는데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그러면 왜경이 기미를 알아차려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장소를 바꾸게 된 까닭이었다고 합니다. 이날 독립선언에 참석한 사람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손병희 선생의 지시로 상해로 간 김병조 선생과 지방에서 미처 당도하지 못한 3명을 뺀 29인이 참석했습니다. 이들 29인은 태화관 동쪽 처마에 걸어둔 태극기에 절을 한 다음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