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문화의 새로운 고찰
◀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蓬萊山香爐)
1993년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동아시아 최고의 향로
향(香)이란 글자는 벼 화(禾)자에 날 일(日)자를 하고 있다. 벼가 익어 가는 냄 새를 향 이라 하는 것이다.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우러나온다. 이 말을 우 리의 삶에 도입 해 보자. 삶이 내면에 향기를 품고 사는지, 아니면 악취를 안고 사는지에 따라 그 사람 의 품격은 결정된다고 하겠다. 내 몸에서도 향기가 날까?
우리 선조들은 선비가 사는 집을 난형지실(蘭馨之室)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난 향기가 나는 집'이라는 뜻인데 이슬을 먹고 맑은 바람을 마시는 난을 닮아 가며, 스스로를 지켜 가는 삶을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겠다.
선비들은 예로부터 운치 있는 4가지 일 즉, 4예(四藝)를 들었는데,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그림을 걸고, 꽃을 꽂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심신수양의 방법으로 거처하는 방안에 향불을 피운다 하여, 분향묵좌(焚香默坐)’라는 말도 있다.
우리의 옛 여인들의 몸에선 항상 은은한 향이 풍겨 나왔고, 향수, 향로제조기술은 어진 부인의 자랑스런 덕목이었다고 한다. 우리네 여인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향을 사용했던 것일까? 옛 여인에게서 풍기는 향기의 비밀을 무엇일까?
신라의 진지왕은 도화녀와 침실에서 향을 사용했는데 그 향내가 이레 동안이나 지워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아랍 지역에 사향과 침향을 수출하였고, 일본에도 용뇌향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향을 수출하였다 한다.
중국 문헌에 의하면, 신라에서는 남녀노소가 신분의 귀천에 관계 없이 향낭(향주머니)을 찼다고 한다. 또 원성왕 8년(792년) 8월에 김정란(金井蘭)이라는 미인을 당나라에 보냈는데, 그녀의 몸에서 향내가 진동했다. 그래서 당나라는 그녀의 몸에서 향내를 발산하는 이물(異物)이 있다며 돌려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에 의하면 고려에는 향을 끓는 물을 담아 옷에 향기를 쏘이는 박산로(博山爐)가 있었다고 한다. 또 고려의 귀부인들이 비단 향주머니 차기를 좋아했다고 하며, 흰모시로 자루를 만들어 그 속을 향초(香草)로 채운 자수 베개를 애용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고려인들은 난초를 우린 물로 목욕(난탕)하거나 향수(방향 물질을 넣은 물)로 목욕함으로써 몸에서 향내를 발산시켰으며, 초에 난초 향유를 혼합함으로써 향내가 방안에 그윽하도록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일부 사람들은 향을 먹기도 했다고 추측된다. 향을 복용한 향낭(香娘;동정녀)을 부여안고 회춘(回春)를 기대했다.
◀ 백제향로의 윗부분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향을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선비들은 독서할 때와 시를 지을 때, 차를 마실 때, 손님을 맞을 때 으레 옷을 단정히 가다듬고 향을 살랐다. 특히 부부가 잠자리에 들 때는 사향을 두고 난향의 촛불을 켜두었다. 모든 여자들이 향주머니를 노리개로 찰 정도였다. 부모의 처소에 아침 문안을 드리러 갈 때는 반드시 향주머니를 차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었다.
옛 한국인들 특히 여성들이 가장 즐겨 사용한 향은 사향이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향이 우리나라 팔도 각지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며, 상비 의약품으로서 효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사향은 응혈된 피를 용해시키는 작용을 하며, 토사곽란(토하고 설사하며, 배가 아픈 병)을 진정시킨다고 전해진다. 그뿐 아니라 흥분제로도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난초에서 얻어지는 난향은 우울증을 풀어주고, 흥분을 진정시킨다고 한다. 향유병을 비롯하여 향로, 향꽂이, 향주머니, 향집, 향갑 등 향구(香具)들도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이들 향은 시전에서 판매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정에서 자가 제조되었다.
공주대학교 이해준 교수의 말에 의하면, 고려말, 조선초에 민중들의 염원이 담긴 매향의식이 있었다 한다. 즉 향나무를 바닷가 개펄에 묻어두는 의식이다. 추측컨대 당시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에 의한 침탈에 고통을 받던 민중들이 침향을 정성으로 준비하였다가 자신들을 구원해줄 미륵을 맞이한다는 발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개펄에 묻힌 향나무가 수백년이 지난 오늘에 최고급 향으로 알려진 침향이 된 것은 어쩌면 이 민중들의 염원이 이루어낸 결과가 아닐까?
재료에 따른 향의 종류에는 나무로 만든 향나무·백단(白檀)·침향(沈香)·정향(丁香) 등과 나무의 진액 종류인 유향(乳香:열대 식물인 유향수(乳香樹)의 분비액을 말려 만든 수지), 안식향(安息香:안식향나무의 나무껍질에서 나는 진액) 과 사향(麝香) 용연향(龍涎香) 등 동물의 분비물이 있다.
향을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도향(塗香)과 소향(燒香) 두 가지가 있다. 도향은 향을 액체로 만들어 몸에 바르거나 뿌려 향내가 나게 하는 방법을 말하며, 소향은 향을 피워 연기를 쏘임으로서 향내가 몸에 배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이 중 소향은 제천의식에서 피웠던 나무토막향,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자루향, 가루나 알 모양으로 빚은 환향, 대나무심지가 있는 죽심향(竹心香) 등이 있다.
또 소향은 향을 담아서 불을 피울 그릇(분향 기구) 즉 향로가 있어야 한다. 이 향로는 향을 사른 향불 연기를 쏘이게 한다 하여 훈로(燻爐, 薰爐)라고도 부른다. 하늘과 조상을 받들고 부처를 섬기던 동양에서 향로는 매우 중요한 의례도구였으며, 선조들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뛰어난 예술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향로는 별로 발굴이 되지 않았는데 1993년 충남 부여 능산리에서 높이가 64cm인 백제의 향로가 발굴되었다.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百濟金銅龍鳳蓬萊山香爐)'라고 이름 붙여진 이 향로는 현존하는 동아시아 향로 중에서 가장 우수한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백제금동향로는 봉황, 뚜껑, 몸체, 용좌 4단계로 구분된다. 몸체 뚜껑에는 비파, 피리, 북, 현금, 소를 연주하는 5인의 연주자가 있고, 그 아래에 있는 74 개의 산봉우리에는 홀(笏)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 폭포수에 머리를 감고 있는 사람, 책을 보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상이 보인다. 그뿐 아니라 여의주를 물고 있는 사자, 원숭이, 코끼리, 멧돼지, 개, 뱀을 물고 있는 거북이 등 65마리의 각종 동물상, 폭포, 불타는 모양의 무늬 등 1백여 개의 화려한 문양도 있다.
그리고 향을 피우면 봉래산과 봉황의 가슴을 통해 나오는 12개의 구멍들은 어느 시대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 예술의 표현이다. 뚜껑 장식에는 한 마리의 봉황이 턱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활짝 편 채 웅비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받침대는 한 마리의 용이 꼬리를 위로 한 채 우주의 삼라만상을 받들고 승천하는 형상으로 몸통을 떠받치고 있다.
1300년 전 백제의 금속공예 기술 즉 몸체와 봉황의 속을 공간으로 비워낸 밀납법과 아말감 도금법을 이용하여 찬란한 외관을 보여준 금도금술은 현대의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했다는 평이다.
전통 향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 전통향을 새롭게 재현해내고, 그 보급을 위해 온 몸을 사르는 '향기를 찾는 사람들' 박희준 대표의 아름다운 글을 읽어보자.
"우리 선조들이 책을 읽을 때나, 차를 마실 때, 거문고를 탈 때 등 맑고 운치 있는 일에는 이 향이 피워졌다. 그 뿐인가? 우리가 여름철에 벌레를 쫓기 위해 피우는 모깃불도 이 향문화의 한 갈래이고, 우리가 추석에 먹는 솔잎 향기가 밴 송편과 이른봄의 쑥과 한증막 속의 쑥냄새, 그리고 단오날 머리를 감는 창포물도 또한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향기의 하나였다.
또한 장롱 안에 향을 피워 향냄새를 옷에 배이게 하는 훈의(薰衣)를 하여 늘 옷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를 즐기기도 하고, 옷을 손질하는 풀에 향료를 넣어 옷에서 절로 향기가 스며 나오게 하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향기를 잠자리에 끌어들이기도 하였는데, 국화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머리와 눈을 맑게 할 수 있고 탁한 기운을 제거하기도 하였다.
제사나 차례를 모실 때는 아무리 여러 ┝嗤?갖추지 못하여도 향은 피웠다고 한다. 그래서 율곡 이이(栗谷 李이)가 쓴 <격몽요결(擊夢要訣)> 제의초(祭儀抄)에는 다른 것을 갖추지 못하여도 설, 동지, 초하루, 보름에 올리는 차례에는 향을 피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향문화는 외국의 향과 향수에 밀려 촌스러운 것 또는 하찮은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도대체 그 향기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지금 우리나라의 향은 지난 왜정시대와 6.25 그리고 개발독재시대를 지나 정신보다는 물질의 시대에 살면서 잊혀지게 되었다. 향을 수출하고, 천년 뒤의 후손에게 물려줄 향을 묻던 고려인들의 마음은 이미 사라졌다.
향 한 자루를 피우며 차를 마신다. 먹을 갈고 흰 종이에 글씨를 쓴다. 그 마음에도 차의 향기와 먹의 내음 그리고 글씨에 담기는 향기로운 뜻이 말없이 어울릴 것이다. 향을 피우는 사람 또한 스스로를 태워 주위를 맑게 하는 향을 닮기를 꿈꾼다."
이제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향문화를 되찾았으면 한다.
그리고 묻고 싶다.
당신의 몸에서도 향기가 나나요?
◀ 백제향로에 있는 완함을 타는 악공
--------------------------------------------------------------------------------
참고
한국의 향 : 박희준(향기를 찾는 사람들 대표)
옛 여인의 향기(은은한 향을 머금은 살아 움직이는 꽃) : 전완길(태평양박물관 관장)
향을 사르는 그릇, 향로 : 김창균(문화재전문위원)
인터넷 사이트 <한지차향가> :
http://www.insadongplaza.co.kr
" <조양향당> :
http://452.co.kr
" <한국문화예술진흥원> :
http://www.kcaf.or.kr/trart/k1-14.htm
" <한국회화5천년사> :
http://www.gissoft.co.kr/art5000/html/sam_gen.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