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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16. 순수한 교류의 정, 뜨겁게 이어지다

   

 
  
지난주에는 어렵사리 연변예술대학과 첫 교류 음악회를 갖게 된 과정을 중심으로 소개하였다. 이번 주에도 연변의 조선족 음악 이야기를 계속해 보도록 하겠다.

어렵게 성사된 연변대학에서의 교류 음악회를 끝낸 그날 밤, 우리는 서로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우리의 만남을 서로 자축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만남은 다음날 ‘들놀이’ 행사로 이어졌다. 연변대학의 교수와 직원들은 우리 일행을 위해 먹을거리를 다양하게 준비해서 강가로 나가 하루를 즐긴 것이다.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포 음악인들이라 해서 그런지 너무도 따뜻하게 대해 주는 그들의 태도에서 순수한 인간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1990년 7월, 연변 예술대학을 방문하던 그 해, 우리의 초청을 계기로 연변예술학원은 중대한 구조 조정을 단행하였는데, 바로 음악학부 내에 <민족음악과>, 줄여서는 <민악과>로 부르는 학과를 새롭게 신설한 것이다. 마치 한국에서의 <국악과>혹은 <한국음악과>와 같은 것이다.

한국은, 1959년도에 신설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를 제외한다면 70년대에 와서야 겨우 한양대, 이화여대, 추계대 등 3개 대학이 국악을 전공하는 학과를 신설했을 뿐이고, 80년대에 들어서면서 부산대, 전남대, 경북대, 영남대, 중앙대, 단국대, 전주우석대 등이 음악과와 별도로 국악과를 신설한 것이다. 아직도 음악대학에 기악과, 성악과, 작곡과 등은 두고 있으면서도 국악과가 없는 대학은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국악과가 없는 음악대학이나 음악과는 가야금이나 피리, 혹은 판소리나 민요를 전공하기 위해 입학이 불가한 것이다. 이러한 점을 상기해 보면 연변의 조선족 사회가 중국음악, 또는 서양음악 속에서도 민족음악 전공을 살리려고 얼마나 처절한 몸부림을 해 왔는가 하는 점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음악 중심의 <음악과> 내에서 피아노 전공, 바이올린 전공과 함께 가야금 전공, 저대(연변에서는 젓대가 아닌 저대라 부름) 전공, 민요 전공을 두고 있다가 남한 전통음악인들의 방문을 계기로 <민악과>로 독립하게 되었다고 초대 학과장 방용철 교수가 힘주어 하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우리를 극진히 환대해 주던 연변 예술학원 교수들의 면면을 기억해 보면 예술학원의 학장이었던 김삼진 교수와 부학장이었던 작곡, 이론 전공의 정준갑 교수가 늘 우리와 함께 다니며 극진히 배려해 주었고, 남녀노소 조선족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어머님 오래오래 앉으세요”를 작곡한 방용철 교수가 학과장이었다.

북한에 가서 월북 국악인 안기옥으로부터 가야금 산조를 배워 온 김 진 교수도 우리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진 교수는 연변대학에서 많은 가야금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중 김성삼은 연변예술학원의 학부장을 지낸 남한에도 잘 알려진 교수이고, 김계옥은 현재 중앙대학의 국악과 교수로 있으면서 25현 가야금 연주 및 작곡자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류 음악인이다. 그 외에도 해금 연주가로 이름을 떨치던 이일남 교수나 피리의 명인 김석산 교수, 그리고 성악의 전화자, 단소의 신용춘, 춤의 최미선, 그리고 남희철이나 신광호와 젊은 교수 등이 우리가 만난 연변의 조선족 음악인 들이었다.

그들은 비록 우리와 다른 열악한 환경에서 민족음악을 지켜가고 있으나 강인한 정신력과 열정으로 중국의 조선족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민족음악의 지도자들이며 동포음악인들이다. 민족음악을 통해서 조선족 사회를 이끌고 있는 순수하고 열정에 차 있는 음악인들인 것이다. 그들과의 만남은 너무도 진하고 뜨거웠고 아름다웠다. 그 들을 만난 이후, 작은 힘이나마 그들을 돕는 일에 앞장을 서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가 드디어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1999년 12월, 필자는 동료 및 후배 국악인들과 함께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조직하고 여러 가지 목적 사업의 하나로 중국 연변의 조선족 음악인들과의 교류음악회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들의 불타는 의지를 돕는 일이 곧 중국 속에서 조선족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보람찬 일이라는 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사업에 뜻을 같이하는 박문규, 임진옥, 홍주희, 홍은주, 조혜영, 유지숙, 박복희, 한혜영, 박현진, 이인영 등 젊은 국악인들과 황용주 명창, 선소리보존회원들의 가세가 큰 힘이 되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10여 차례 이상 각기 다른 환경에서 지켜 온 민족음악을 학술과 실연을 통해 비교도 해 보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도 하였으며, 앞으로의 방향도 논의해 왔다. 이러한 만남은 횟수를 거듭하면 할수록, 정과 동포애를 지닌 동일 민족임을 더욱 진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의 감정과 정신이 녹아있는 민족음악을 함께 지켜가겠다는 의지를 더욱 굳힌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이번 2011년 7월, 제13회 <한ㆍ중 학술 및 실연 교류회>에도 전국에서 37명의 회원이 순전히 자비로 참가해 주었다. 학술발표에는 서한범, 홍은주, 조혜영, 박복희 등이 ‘산타령’, ‘평생교육’, ‘남도음악의 시김새’, ‘일선 학교에서의 국악교육’과 관련된 주제를 발표했고, 연변측에서는 리훈의 ‘조선족 성악에 대한 사적고찰’, 리 정의 ‘조선족 음악사회에서의 산조 고찰’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우리 쪽 실연은 박문규의 <시조창>을 비롯하여 황용주 외 12명의 <산타령>과 <경기민요> 정순임의 판소리 <흥부가>, 임종복, 윤아람의 가야금병창 <심청가>, 박규희의 <제비가>, 그리고 서울시 대상을 수상한 『성동문화원』 노학순 외 8명이 <회심곡>을 준비했다. 연변 쪽에서는 박춘희의 <바다의 노래>, 신광호의 <춤의 고향, 노래의 고향>, 김다의 양금 독주, 라령령의 장새납 독주, 엄매화(가야금)의 소악대 합주 등을 발표하였다.

이번 교류회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고흥곤, 김복곤, 송복쇠 씨에게 감사를 드리며 초청해 주신 대학당국에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부디 우리의 순수한 교류의 정이 식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하기를 전 회원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의 이러한 운동에 더욱 많은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학자, 기악과 성악의 명인 명창, 국악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학교의 교사, 그리고 각 대학의 석 박사 과정의 원생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