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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29. 농악은 한국인 신명의 근원이며 에너지의 보고(寶庫)

   

 
그동안 농악에 관한 연구는 기원에 관한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전승과정이나 실태에 관한 연구, 구성이나 판제에 관한 연구, 각 차(次)에 따른 기본형 리듬과 변형리듬에 관한 연구, 동작이나 춤사위 연구,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해서 상호 비교나 특징을 찾는 작업들이 활발한 편이었으며 상당수준의 연구성과도 축적되어 가는 상황이라고 하겠다.

특히 농악의 리듬을 발췌하여 이를 무대음악으로 만든 꽹과리, 장고, 북, 징의 타악합주 사물놀이는 시연 30여 년이 지난 현재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미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초등학교를 비롯한 각급학교의 사물놀이 팀이나 평생교육원, 직장의 동호인 중심으로 점점 확산해 가고 있다.

이제는 농악의 외양이나 내면의 매력이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응답을 준비해야 할 때가 되었다. 농악 속에 어떤 미적인 가치가 있어서 한국인들은 농악과 더불어 긴 세월을 함께 해 올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비롯하여 지방마다 전해오는 농악은 각각 어떤 독특한 멋과 특징을 지니고 있는가? 한국 농악 속에 녹아있는 미적인 특징이나 농악을 통한 한국인의 미의식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가령, 꽹과리나 징과 같은 쇠소리의 강렬함과 장구, 북, 소고 등의 부드러운 가죽소리가 주는 음색의 어울림은 우리에게 어떤 미감을 주는가? 원점을 치는 악기들과 간점을 처리하는 악기들의 음량적 대비나 음향적 조화는 어떠한 아름다움을 내포하고 있는가? 대형을 갖추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진법놀이에서의 일체감이 주는 미적 특징이나, 또는 원을 그리면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벅구의 춤동작에서 어떠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것인가? 상쇠잽이나 장구잽이가 보여주는 멋스런 가락이나 화려한 기교가 주는 아름다움은 어떠한가?

이와는 대조적으로 잡색들이 펼치는 해학의 멋은 어떠한가? 일정한 공간 속에서 함께 움직이는 구성원들의 질서있는 동작이나, 구성원 전체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려는 통일된 의식은 어떤 미적 요소인가? 그 외에 권역마다, 작게는 마을마다 표방하고 있는 농악의 특징이나 미적 가치는 어떠한가? 이러한 화두에 대한 대답이 곧 한국 농악의 미적인 특징을 찾는 기초작업이 될 것이라 믿고 있기에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활발하게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농악은 한국인 신명의 근원이고 에너지의 보고(寶庫)임에 틀림없다. 많은 매력과 멋을 지니고 오랜 시간 우리와 함께 지내왔던 농악도 점차 그 세가 위축되고 있음을 우리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농악 자체가 지니고 있는 어려운 조건이나 문제점도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농악의 세가 위축되어 가는 이유로 많은 구성원이 참여해야 농악대가 조직된다는 특수 조건이 따른다는 점, 장단의 변화나 호흡조절이 까다로워 오랜 연습과정이 필요해야 하는 음악이란 점, 소리가 큰 악기들이어서 연습 공간을 확보하는 문제나 악기나 복색의 확보 문제도 쉽지 않다는 점, 남성 취향의 음악으로 파급 효과가 제한을 받는다는 점이나 유능한 지도자의 확보 등등이 다소 어려운 점 등 등이 주요인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우리 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 정보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농촌의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는 환경적인 요소가 가세하고 있어서 농악은 설 곳을 잃고 지역민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여 그 본래의 자리를 크게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농악의 계승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농악이 점차 위축되고 있다는 점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 하겠다. 더 이상의 확대나 확산은 고사하고라도 축소되거나 보존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속히 이에 관한 대책을 마련하고 올바르게 계승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의 의지와 열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농악대를 보유하고 있는 마을에서는 구성원들을 중심으로 지자체 관계자들과 지역민들의 뜨거운 애정으로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이 생활 속에서 즐기는 농악으로 더욱 확산하도록 그 방법을 찾고 대화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