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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일본 고대시집 만엽집 작가'산상억량'은 백제출신 시인










 

 










                               

“금은도 번쩍이는 보석조차도 귀한 자식에 이르겠는가”
-銀も金も玉も何せむに勝れる子に及かめやも,(万葉集 ⑤-803)-

후쿠오카현 남부 인구 4만여 명의 조용한 도시 가마시(嘉麻市) 누리집에는 만엽시인 산상억량(山上憶良, 660-733, 야마노위에노오쿠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랑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에 편찬된 만엽집<万葉集, 만요슈>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학이다. 천황으로부터 이름 없는 백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읊은 노래가 20권에 4516수(首) 실려 있다. 치쿠호(筑豊, 지방이름)에도 그가 지은 수십 수의 노래가 전한다. 고대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치쿠호는 다자이후정청(太宰府政廳)이 있던 곳으로 세토내해 물길을 타고 바로 수도(나라 ‘奈良’)로 연결되던 곳이다. 당시 관내의 지방군수로 부임한 산상억량은 특히 빈궁문답가(貧窮問答歌)로 유명한 시인이다. 귀족이면서 항상 가난한 사람의 위치에 서서 그들의 슬픔을 노래하여 그들을 높은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산상억량이 백제출신이라는 점은 밝히지 않고 있다. 아니 밝히지 않은 게 아니라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을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일본열도에 흐르는 한국혼’을 찾아 평생 일본 땅을 누비며 숱한 한일고대사를 밝히고 한국과 관련된 유적과 인물을 찾아낸 사학자 김달수(1919-1997)씨 조차도 산상억량이 백제 출신이라 것을 뒤늦게 알고 무릎을 쳤으니 말이다.

사학자 김달수 씨는 <일본의 조선문화, 1973,일본어판>에 일본의 저명한 작가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1923-1996)와의 대담을 남겼는데 거기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자.

*시바료타로: 산상억량의 아버지는 조선(백제)에서 온 사람으로 산상억량은 소년시대에 일본에 왔지  요? 김달수 씨도 어릴 때 온 걸로 아는데…. 나는 만엽시인 중에서 이 분을 가장 좋아합니다.


*김달수    : 조선(백제)인 이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는데요?

그 뒤 김달수 씨는 산상억량의 출신에 대해 깊이 추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산상억량의 아버지가 백제출신이고 백제멸망과 더불어 일본왕실로 건너와 천지·천무왕 때에 주치의로 활약했으며 뛰어난 유교학자였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사실은 도교대학 출신으로 만엽학의 대가인 나카니시(中西進, 1929~ ) 교수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나카니시 교수는 1969년 11월 <국학원잡지>에 ‘억량귀화인론’이라는 제목으로 산상억량이 백제출신이라는 사실을 발표한 이래 숱한 논문을 쏟아 내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산상억량은 백제 의자왕 20년(660)에 태어나 4살 되던 해 백제멸망을 맞아 아버지와 일본으로 건너왔다. 당시 산상억량의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일본서기> 9월 24일 조에 기록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산상억량의 아버지는 망명 땅 일본에서 천황의 주치의로 여유로운 생활을 했으므로 산상억량은 비교적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피 속에는 멸망한 백제의 한이 서린 듯 그는 언제나 약자 편에 섰으며 만엽집에 전하는 78수의 시들도 대부분 이러한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특히 그의 가풍(歌風)은 “사회적 모순을 예리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무거운 세금에 허덕이는 사회적 약자 편에서 노래한 것이 많은데 이것은 당시로써는 이색적인 일이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

만엽집 최고의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백제인 산상억량의 시는 만엽집에 78수, 신고금화가집(新古今和歌集)에 1수, 칙선화가집(勅撰和歌集)에 5수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일본인이 전국 각지에 그의 가비(歌碑)를 세워 그를 기리고 있다.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이윤옥(59yoon@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