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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한국문화 교두보 '미국UCLA 한국음악과' 폐과 위기

[스페셜]UCLA한국음악과 살리기 앞장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그린경제=노정용기자] 미국 UCLA 안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민족음악대학이 있다. 민족음악대학 안에는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아프리카, 동유럽, 중동, 브라질, 멕시코, 미국재즈 등 각 대륙의 종족음악과 함께 한국음악과가 개설되어 있다. 그런데 한국음악과만이 재정난으로 거의 폐과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다.  

10년 넘게 UCLA 한국음악과를 살려야한다는 일념으로 동분서주해 온 서한범 박사(단국대 명예교수)지금 현재로서는 너무나 절망적이다. 한번 학과가 폐과 되고 나면 다시 개설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세계인들에게 한국음악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전진기지이자 교두보인 UCLA 한국음악과를 살리는데 정부와 기업, 국악계, 그리고 뜻있는 독지가들이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한국전통음악학회를 이끌고 있는 서 박사는 UCLA 한국음악과의 폐과를 막아야 한다고 간절하게 호소하고 있다. 단국대에서 정년퇴임한 이후에도 명예교수로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는 한편, 일반인에게 국악을 알리기 위해 글쓰기와 맛깔나는 국악해설로 공연현장을 누비고 있는 서 박사를 만났다. <편집자 주
 

-UCLA 한국음악과를 살려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계신데, 한국음악과에 대해 소개해 주시죠? 

“1970년대 이후 UCLA 민족음악대학 내에는 각 대륙의 소수민족들이 지켜오고 있는 9개 지역의 전통음악을 연구하는 학과가 개설되었지요. 아시아 지역의 한국음악학과를 비롯하여 중국,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중동과 인도, 남미나 북미의 음악 등입니다. 한국음악학과에서는 가야금을 비롯한 여러 악기와 사물놀이, 성악일반, 무용까지 포함하여 실기와 이론을 겸한 한국음악 전반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UCLA안에 한국음악과가 있다는 걸 한국인들이 잘 몰라요. 국악인들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에요.” 

유럽 음악을 제외한 각 대륙의 전통음악이나 소수민족들이 지켜온 고유한 음악들을 비유럽음악 또는 종족음악으로 불렀으나 일반적으로는 민족음악으로 분류한다. 유럽 이외 지역의 음악들은 음악의 범주에도 못 들어가는 격이 낮은 음악이라는 발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UCLA 민족음악대학은 각 나라의 고유음악을 보존 연구해온 세계적인 명문이다. 

세계적으로 보존 가치가 높은 9개 민족음악을 골라 설치했는데, UCLA 재학생은 학기마다 6개국의 민족음악을 공부해야 통과할 수 있다고 해요. 그 중에서도 한국음악과는 매학기 400명의 수강생이 몰려들 정도로 가장 인기가 높습니다. 한국음악학과에는 관현악기 클래스, 타악기, 무용, 이론 등 기초부터 고급반에 이르는 20개 반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전공 학생은 물론, 교양강좌로 한국음악을 수강하는 학생이 연 400명에 이른다는데, 어떻게 해서 폐과위기에 몰렸습니까?

  지난 2004년 주정부 예산이 삭감되면서 공립학교를 지원하는 지원금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죠. 60%를 주정부 예산, 40%를 기부금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영구 기금 약 20억원이 준비되지 않은 한국음악과의 경우 매년 자체적으로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폐과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10년 전부터 폐과위기에 내몰렸지만 주임교수인 도날드 김(한국명 김동석) 교수를 비롯해 졸업생들과 독지가들이 발로 뛰며 겨우겨우 버텨왔는데, 지난 달인가,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다는 절망적인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국악인들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세계 10위를 자랑하는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의 문제입니다. 심각합니다.” 

김동석 교수는 국악고와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19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간 국악인이다. 그의 주전공은 가야금이나 가야금 외에도 거문고, 단소, 해금 등의 악기도 잘 다루고 시조와 가곡, 민요 등의 성악에도 능하며 춤 실력도 대단하여 실기와 함께 이론을 강의하고 있다. 한국음악과가 그나마 힘겹게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동석 교수의 활동이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특히 김 교수가 설립한 코리안 뮤직&댄스 그룹(Korean Music and dance group)’이 그 동안의 실적을 인정받아 미 교육청에서 선정한 초고의 특별 예능프로그램을 교내에서 강의할 수 있는 단체가 된 것이다. 각급 학교는 교장의 임의대로 외부 공연단체를 학교 안에 초청할 수 없고 교육청이 인정한 프로그램에 한하여 학교 방문 초청공연이 가능하도록 제도화 해 놓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학교방문 강연과 공연활동을 통한 수입 전액도 당연히 학과에 기부해 왔다. UCLA 한국음악과가 폐과 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한 부산의 한 입시학원(서전학원)이 해마다 5만불을 지원해 주어 그동안 큰 힘이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학원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3년 전에 지원금이 끊긴 상태에 있다
 

   
 

-다른 나라 음악과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중국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나라들도 본국이나 교포사회에서 영구기금을 마련해 주어서 안정적으로 학과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국음악과는 최고의 인기학과임에도 불구하고 교포사회는 물론, 한국 정부나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 겨우 한해 한해를 정말 힘겹게 넘겨왔단 말입니다. 연간 최소 13만불, 한화로 15000만 원은 지원되어야 운영이 가능합니다. 학생들이 실습할 수 있도록 악기도 마련해 주어야 하고, 악보 제작이나 구입, 악기수리, 실습자료, 전시관 관리, 공연실습을 통한 의상이며 소도구, 기타 실습이나 수업을 위한 준비물 등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학과 운영을 위해서는 교수 한사람만으로는 이론과 실기를 모두 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전공에 따른 강사의 초청도 필요하거든요.” 

-지난 2001년부터 ‘Korean Music Symposium 강연 및 연주시리즈를 개최해오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국음악학과에 교강사 분들이나 수강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와 용기를 보내주어야지요.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외국인들, 특히 미국의 젊은이들이 우리 음악을 어떻게 대하고 평가할까하는 점이 늘 궁금했어요. 벌써 30년이 지났네요. 한미수교 100주년을 맞는 해가 1982년도였는데, 당시 나는 서울대 국악과에 출강하고 있었어요. 마침 기회가 되어 국악과 학생 30여명의 음악감독으로 미국의 대학을 순회공연 하게 되어서 동부의 예일대에서부터 서부의 시애틀과 LA, 하와이대에 이르기까지 약 2개월 동안 30개 대학을 방문하며 한국음악에 관한 특강과 함께 공연을 하였지요. 지금도 기억에 분명한 것은 당시의 반응이 대단했다는 점입니다. 교포분들은 물론이고 미국 대학생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어요.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의 전통음악은 외면당하는 처지였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신선한 자극이 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어요. 금속성의 차가운 음색과는 달리 한국 전통음악의 식물성 소재가 주는 따듯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경험한다는 것은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을 겁니다. 관람 자세가 너무나 진지하고 조용했어요. 특히 우리음악의 중요 요소인 리듬믹 패턴, 즉 장단형(長短形)에 관한 질문을 하는 등 우리음악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편이었어요.”  

음악은 시간예술이고 시간은 리듬이다. 반복되는 리듬형을 우리음악에서는 장단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두 다리로 걷고 뛰어왔기에 하나라고 하는 시간 단위를 둘로 나누는 것에는 익숙해 있다. 가령 사과 하나를 둘로 쪼개기는 쉽다. 그러나 사과 하나를 셋으로 쪼개라고 하면 일은 간단하지 않다. <쿵짝, 쿵짝>과 같은 2분식 리듬은 쉽고 단조로워 음악적으로는 별로 재미가 없는 리듬이다. 한국음악은 2분식 리듬보다는 3분할되는 리듬이 특징이다. 

한국음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아주 고차원적인 3분할 리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쉽게 이야기한다면 하나를 셋으로 나누어서 2/31/3 또는 1/32/3로 짝을 이룹니다. 1/3은 또 다시 세 쪽으로 쪼개지지요. 가령 아리랑을 2분식 리듬으로 부르는 것과 3분식 리듬으로 부르는 것은 전혀 다른 음악이 된다고 할 수 있지요. 한쪽이 길고 한쪽이 짧은 불균형의 리듬이지만 이러한 리듬을 활용하여 일정한 규칙을 찾아가요. 이러한 리듬에 익숙해 있지 않은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즐겨 쓰는 3분식 리듬에 호기심과 놀라움을 갖게 됩니다. 또 악기의 음색도 서양의 악기에서 나오는 금속성의 음색과는 달리 대나무나 오동나무, 또는 명주실 등 식물성 재질에서 나오는 한국악기의 음색은 부드럽고 따뜻하여 인간미를 느끼게 되지요.” 

사물놀이를 구성하고 있는 북, 장구, 꽹과리, 징 등은 음높이의 변화가 없지만, 리듬의 배합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기계적인 리듬이라면 한두 번만 들어도 지겹겠지만, 사물놀이는 예측되지 않는 리듬이 다양하게 변화하기 때문에 들으면 들을수록 빠져든다는 게 서한범 박사의 설명이다. 한국음악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을 본 서 박사는 한국음악이 외국인에게 호기심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그들의 심장을 두드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매학기 400여명 학생들 몰릴 정도로 인기 강좌
일본음악과 인기없어 폐과하던 것과 크게 비교돼
K팝 알고나면 반드시 한국음악과 춤 꼭 찾을 것"
국악 실기·이론 전파 교수 제자 50여명 길러내 
 

   
 

-외국인 음악학자나 전문가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노스웨스턴대와 UCLA에서 세계 민족음악을 공부하고 1960년 이후에는 미시간대에서 교편을 잡았던 윌리엄 맘(William Malm)이라는 학자가 있어요. 그는 민족음악 중에서도 아시아 음악, 특히 일본음악과 춤 전문가로 통하지요. 그래서 아시아 음악하면 그는 일본음악이라고 생각해온 학자이에요. 그런데 중국음악을 경험해 본 뒤에는 일본음악은 중국음악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70년대에 한국음악을 듣고 속된 말로 갑니다. 그의 고백을 들어 볼까요.” 

한국 음악은 들을 때마다 나의 호기심을 끌며 일본이나 중국음악과는 달리 완전히 독창적이며 독특한 데에 놀랐다. 한국 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서 형성되었다고 생각해 왔는데, 직접 한국음악과 춤을 접했을 때, 그들의 것과는 전혀 다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일본이나 중국과 비슷한 구조로 된 피리, 대금, 장고 등이 있으나 그 소리는 전혀 다르다. 한국음악을 구성하고 있는 음계나 가락도 중국의 5음계나 일본의 음계와는 전혀 다르다. 무용도 감각적 요소가 풍부하여 매우 매혹적이었다. 한국의 음악과 춤은 우리 외국인을 보다 더 감동시킬 수 있는 매우 아름다운 우아성을 지니고 있으며 동양에서 가장 알고 싶은 신비로운 음악이다.  

맘 교수가 한국음악이 중국과 일본 두 문화와 병행하여서 형성되었다고 생각했다는 말은 점잖은 표현입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 대륙에 붙어 있는 한국이 오랜 기간 중국과 교류하며 정치사회, 문화적 영향을 받았다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이 한국음악의 독자성보다는 중국음악의 변형이라고 생각했었던 것이 분명하지요. 또한 36년이나 일본의 식민지국이었으니까 일본음악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두 문화와 병행이란 말은 한국이 무슨 독자적인 음악환경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 필요하면 중국음악, 때로는 일본음악을 차용해 써 왔을 것이란 추측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실제로 그가 감상했던 한국음악이 중국이나 일본과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리듬이며 선율, 음색, 표현법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고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됩니다.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연주단이 미시건 대학을 방문했을 때 저녁 자리에서 그는 저에게 당신네는 좋은 음악이 많은데, 한국 유학생들에게 거문고나 대금과 같은 악기에 대해서 묻거나 수제천이나 산조음악에 대해 물어보면 모두 모른다고 대답한다며 한국은 그렇게 훌륭한 음악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교교육에서 소홀히 다루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며 음악교육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의아해 할 때 난처해 진땀을 흘린 기억이 있지요.”  

   
 

-해외순회 공연을 통해 한국음악을 알리는 것과 UCLA 한국음악과를 통해 알리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수십 명을 데리고 먹고 자며 한국음악을 공연하는 데에는 한시적이고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건 일시적인 방법입니다. 교육을 통해 한국음악의 특징을 알리는 것은 확실한 방법이지요. UCLA처럼 명문대학에 세계 각국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에게 강의를 통하여 한국음악을 배우게 하는 게 훨씬 훌륭한 제도이지요. 악기를 싣고 다니며 공연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한국음악을 배운 학생들이 졸업해서 미국에 남거나 각자 모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이 알리는 한국음악의 전파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에요. 정부나 기업인, 문화예술인들이 이를 놓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좋은 기회를 소홀히 다루어서 잃어버리고 나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입니다.”  

-UCLA 한국음악과가 10년 전 남북한에 동시에 한국악기와 의상을 보내달라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0년 전 한국음악관에 전시할 악기와 의상을 남북한 당국에 동시에 요청한 적이 있었다고 해요. 북한에서는 편지를 받은 후 1주일 만에 상당한 액수의 악기와 의상을 보내준 반면에 남한에서는 서로 부처별로 책임을 미루다 흐지부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라고 보기 어렵지요. 남한에서 악기며 의상, 기타 전시 자료들이 오지 않아 결국 전시관은 무산되고 말았다고 합니다.” 

-UCLA에 일본음악과는 원래부터 없었습니까? 

“1970년대에는 민족음악대학에 일본음악과가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음악과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어 1990년도에 폐과가 되었다지요. 그 후 일본 정부가 수차례 다시 학과를 개설해 달라고 로비를 펼쳤지만 일이 성사되지 않고 있어요. 이처럼 한국음악과도 한번 폐과가 되고나면 그때에는 설사 운영자금이 있어도 다시 개설되기 힘들기 때문에 지금 대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터뷰 자리에서 서한범 박사는 UCLA 한국음악과 김동석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의 상황을 물었다. 김 교수는 안타깝지만 너무나 절망적이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폐과가 거의 확정적이다. K-Pop이 세계로 확산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전통문화를 이해시키는 창구로서의 UCLA 한국음악과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정부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없는 한 도저히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슬픈 소식을 전해왔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교육부나 문화부에서는 UCLA가 미국학교라 지원이 어렵다고 한다. 경제논리를 적용하기 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창조경제의 발상으로 한국음악을 배워가는 외국인 대학생이 모국으로 돌아가 한국을 이해할 경우 예상되는 무형의 효과를 생각해야 한다는 게 서 박사의 주장이다
 

   
 

-K-Pop이 세계 무대로 나가는 것처럼 국악의 세계화 가능성도 있습니까? 

“K-Pop 이 한국을 알리고 난 다음에는 가장 한국적인 음악과 춤을 반드시 찾을테니 두고 보십시오. 가장 한국적인 모습으로 한국을 알려야 합니다. 국악의 소비대상을 고국을 잊지 못하는 교포들을 겨냥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호응을 받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악의 세계화라면 지금보다 더 철저하게 준비하고 가다듬어 세계 시장을 공략해 나가야 합니다. 김치와 된장찌개도 한국인이 잊지 못하는 맛이 있는가 하면 외국인이 좋아하는 맛도 있어요. 외국인은 호기심과 신기함과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음악세계를 접한다는 점에서 환영하는 것입니다.” 

-국악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이 계신다면. 

지난 시대의 전통음악을 악보화하고 체계화 시킨 죽헌 김기수(金琪洙) 선생님과의 인연을 잊을 수 없어요. 교육현장에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친 분이시지요. 실기를 기본으로 하지 않는 국악인은 인정하지 않으셨어요. 1958년도에 국악학교에 시험을 보러갔는데, 집에서부터 달고나온 수험표를 분실했지 뭡니까. 그 바람에 고사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발길이 떨어집니까? 고사장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침 김기수 선생님이 나오셨어요.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까 입실을 허락하셨지요. 다른 수험생보다 30분은 늦었지만 당당히 합격함으로써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 항상 마음에 잊지 않는 인자하신 선생님으로 남아 계시지요.” 

서한범 박사는 1963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경기도 안성 석남사에서 대입시험을 준비했다. 서 박사에게 단소를 배우던 도봉산 화계사 주지 월마 스님이 안성의 석남사로 자리를 옮기고 서 박사가 대입시험을 편안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이다. 한 달이 지날 무렵, 편지를 가지러 마을을 내려갔다 와야 하는데 눈이 너무 쌓여 내려오지 못하는 바람에 입학서류 내는 날짜를 놓쳤다고 한다. 

   
 

수석 입학을 내심 기대하고 열심히 공부했지요. 그러나 서류를 내지 못했으니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조창훈(현 대금정악의 예능보유자) 선배의 주선과 김기수 선생의 배려로 국악원에서 연주원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해에 서울대에 합격했고, 대학 4년 동안 국악원에서 장학금 형식의 월급을 받아가며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자마자 국악원 직원으로 다시 복귀했고, 그 이듬해인 1972년 모교가 국립국악고등학교로 정식 개교하면서 교단에 서게 됐다. 스물일곱 그에게 학교는 고3 담임을 맡겼다. 그는 후배들이며 제자들인 학생들에게 좀 더 넓은 세상과 희망을 주기 위해 열성을 다했다. 26명 졸업생 가운데 15명이 서울대 음대에 합격된 것으로도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한다. 그 제자들과는 지금도 수시로 만나고 있다. 이들 중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중인 김우진, 양경숙(서울대), 김영운(한양대), 김해숙 곽태규(한예종), 이재경(목원대), 임재심(원광대), 이경희(청주대), 최문진(영남대), 양승경 윤병천(경북대), 김철진(우석대-작고) 심인택(우석대) 등이 있고, 인남순을 비롯한 문화재급 명인도 여럿이 있다
 

   
 

국악고에 교사로 있으면서 1972년 서울대에 강사로 출강했어요. 1977년에는 청주사범대에 초빙강사로 임용되었고, 서울 YMCA에서 시민을 대상으로 전통음악에 관한 강의를 할 때, 참관했던 서울교대 서장석 총장이 서울교대에서도 강의를 요청해 왔어요. 고등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그 때마다 김기수 선생님께서 격려해 주셨지요. 이렇게 깊은 배려를 해주신 김기수 선생님이 정년을 하게 되자, 저도 대학 강의에만 전념하기 위해 사표를 냈어요.”  

그는 1983년 단국대 국악과 설립과 동시에 초대 학과장으로 부임한 이후, 30여년을 학생들을 키우며 지내왔다. 1985년도에는 청주시를 설득하여 청주시립국악단을 창설하고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하였으며 1990년도에는 천안시장을 설득하여 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을 창설하고 초대 상임지휘자를 역임하기도 했다. 

서한범 박사는 현재 중국 연변대 객좌교수로 활동하며 한국 전통음악으로 조선족들에게 자긍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보람되게 생각하는 점은 한 중수교가 되기 전인 1990년도에 국악인 20여명을 인솔하여 중국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도 해마다 30~40여명의 국악인들을 인솔하여 연변예술학원을 방문하고 있다. 또한 조선족 학생들이나 교수들을 국내에 초빙하여 석사와 박사과정을 거치게 한 후, 다시 중국에 돌아가 그곳에서의 우리 음악 뿌리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도록 돕고 있다 
 

   
 

-국악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고 계시는데. 

국악 현장을 다니며 좋은 공연을 소개하는 글쓰기와 함께 국악의 이해를 돕기 위한 국악해설을 하고 있어요. 또한 무형문화재 지정이나 인정과 관련하여 조사하거나 실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내년부터는 국민들에게 국악과 국악인을 알리기 위해 국악학 학술단체들과 연합해 조그마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잘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2014년부터 향후 5년간 국악의 명인명창들의 예술세계를 학술적으로 조명하고 실연무대를 마련하는 사업을 펼치고자 합니다. 일제의 암울한 강점기에도 오르지 전통음악 유산을 올곧게 지켜 오늘에 이어준 명인명창들의 생애와 예술혼을 조명함으로써 후배 예술인들이 선대 예술인들의 얼을 본받고, 나아가 전통문화를 통한 민족적 자긍심을 지켜나가기 위한 사업이지요. 1년에 4명씩 5년간 20명의 명인명창들을 소개할 계획입니다.”

"年 13만달러 마련못해…이번에 사라지면 학과 개설 다시는 힘들어
재정지원에 정부는 물론 기업·국악계·독지가들 한마음으로 나서야
3분박 리듬의 한국음악은 생명과 자유를 표출하는 독창적인 음악
국악학술단체와 연대 내년부터 5년간 '명인명창의 예술세계' 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