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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인박사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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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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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한일 해상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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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인박사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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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인박사 기념비 |
[그린경제=최우성 기자] 왕인(王仁)은 백제 근구수왕 때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해준 사람으로 일본고대문화의 은인으로 지금도 추앙되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왕은 응신천황입니다.
하지만 그가 일본문화에 큰 공이 있는줄 아는 한국인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은 한국의 고대 역사책은 전란으로 다 불타고 더구나 고구려 백제시대역사책은 흔적조차 없기 때문이지요.
일제시대때 일본인 학자들은 자기나라 고대사인 일본서기 일본고사기등에는 왕인과 아직기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게 사실인지 사실이라면 그곳이 어디 인지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였으나 아는 사람이 없어 한반도의 남쪽 옛 백제땅을 샅샅이 뒤졌고 그 결과 영암지역에 왕인박사와 관련된 여러가지가 흔적들이 나와서 이곳이 왕인박사의 탄생지임을 입증하였다고 합니다.
신령스러운 바위가 있어 영암(靈巖)이라 불리우던 이곳 영암땅에1970년대부터 성역화가 시작되어 지금은 영암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되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학문의 신인 왕인을 찾아서 많이 옵니다.
왕인으로 인하여 고대 일본문화의 뿌리는 결국 한국이라는 것이 확인된 셈이지요!! 그들이 고대 동양문화의꽃으로 자랑하는 아스카문화는 다름아닌 당시의 백제문화의 아류였던 것이고, 현재도 남아있어 세계에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법륭사와 백제관음 구세관음상 미륵보살반가상등 고대 일본문화의 원류는 곧 백제인들이 전해준 백제문화였음입니다.
고대부터 한류韓流)는 끊임없이 전해주었건만 그들은 은혜를 은혜로 갚는 것이 아니라 침략이라는 원한으로 갚아오고 있으니...이 무슨 역사의 아이러니 일까요??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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