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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여성의식 향상과 민중계몽에 앞장 선 “박원희”

[그린경제/얼레빗 = 이한꽃 기자]

 여성의식 향상과 민중계몽에 앞장 선 “박원희”

                                                              이윤옥

 혹한 눈보라 속
펄럭이는 만장으로 슬픔을 감추고 떠난 임
세 살배기 어린 딸
어이 남기고 서둘러 가셨는가!

많이 배우고 잘난 여자들
일제에 빌붙어 동포를 팔아먹고
더러운 입 놀려 호화 호식할 때

배운 여자 일수록
구국의 대열에 앞장서라 외치던
서른 해 짧은 생 마감하며 던진 화두

죽어서도 차마 놓지 못할
광복의 그 찬란한 꿈

고이 간직하고 떠나시라고
가시는 걸음걸음 흩뿌리던
하얀 눈송이 희고 순결하여라.

   
▲ 여성의 정치적의식을 일깨우는 기사(동아일보.1927.6.1)

박원희(朴元熙 1898.3.10 ~ 1928.1.5)

 1928년 1월 11일 동아일보에는 한 여성의 장례행렬 사진이 크게 실렸다.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많은 만장과 추도객이 뒤따르는 이 사진은 일제강점기에 보기 드문 장례행렬 사진이다. 이날 장례를 치른 주인공은 서른 살로 요절한 박원희 애국지사였다.

 박원희 애국지사는 서울 사람으로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철원보통학교 교사로 3년간 재직하다 일본에 유학하였다. 귀국 뒤 여성운동에 뛰어들어 남편인 김사국(金思國)이 주도한 서울청년회계의 청년당대회(靑年黨大會)에 참여하였다. 1923년 김사국이 간도 용정(龍井)에 동양학원을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는 한편, 항일선전문을 배포하고 폭탄으로 일제 기관의 파괴를 계획하자 이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으나 임신 중이었으므로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중략)

 1927년 4월 당시의 여성운동가가 망라되어 신간회(新幹會)의 자매단체로서 근우회(槿友會)를 조직할 때 창립준비위원으로 참가하여 회원모집의 임무를 맡았다. 이후 교양부의 책임자로서 계몽강연에 힘쓰는 등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만 건강을 잃어 30살의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장례는 사회단체연합장으로 1,000여 명의 각계 인사가 참여한 가운데 거행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원희 애국지사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3권에 자세히 나와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