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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수가 흐르는 금천교에서 본 능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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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역과 정자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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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에서 본 정자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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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각의 뒷문으로 본 능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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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인 단의왕후의 능이 앞에 있고 경종은 뒤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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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등 정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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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등을 사각으로 본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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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을 수호하는 문신 무신 그리고 석마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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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은 완전무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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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은 관복과 관모를 쓰고 명령 대기상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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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된 양도 수호신에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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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된 호랑이 석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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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의 앞모습.. 무섭다기 보다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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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의 뒷모습. 호랑이 꼬리가 뒷등에 얹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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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이 타고 다닐 석마 앞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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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마의 옆모습 |
[그린경제/얼레빗 = 최우성 기자]
역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숙종과 장희빈의 사이에 태어나 파란 만장한 삶을 살고 간 경종. 어머니가 자신을 불구로 만들고, 시기 질투에 결국 사약을 받고 죽은 후에 왕이 되었으나 왕다운 대접도 제대로 못받고, 결국 젊은 나이에 승하하고 말았다.
경종이 왕이 될 당시에는 서인과 남인의 당쟁이 심하여 서인의 대표인 송시열은 경종의 등극을 적극 반대하다 결국 사약을 받고 죽었다.
경종은 등극한 후에도 연잉군(후에 영조)에게도 대리 청정을 시키는 등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하였다. 이는 자신의 성적 불구로 자신의 자손이 왕조의 대를 이을 수 없음을 알고 동생인 영조를 후대의 왕으로 잇도록 한 배려로 알려졌으며. 어머니를 비운에 보내고 배다른 형제지만 연잉군과의 형제애가 돈독했다고 한다.
왕위에 있을 때에도 서인측의 폐위사건이 있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31세에 승하하여 당시 한양에서 가까운 곳인 이곳 성북구 석관동에 능호를 의릉(懿陵)으로 짓고 잠들어있습니다.
한때는 중앙정보부의 정원처럼 쓰이다가 이제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이 되어 옛날의 능모습을 차츰 되찾아가고 있습니다.
*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사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사진활동은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해리티지채널사진기자, 포토클럽 회원으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