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얼레빗 = 이수옥 동화작가] 딸막 할머니 귀신은 가물거리는 지난 시절을 떠 올리며 차근차근 이야기했어요. 딸막 할머니 귀신 말에 누구보다 바짝 귀를 기울이는 건 자식을 두고 온 나미 아줌마 귀신이었어요. 예쁜 딸을 셋이나 두고 온 딸막 할머니 귀신도 나처럼 아파서 죽은 것일까? 그런데 어째서 혼자 죽었을까? 풍선처럼 마구 부풀어 오르는 궁금증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어요.
“딸막 할머니 귀신, 가족이 많은데 왜 혼자 죽었어요?”
참다못한 나미 아줌마 귀신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어요. 현이 귀신도, 경민이 청년 귀신도 귀를 토끼 귀처럼 쫑긋 세우고 딸막 할머니 귀신 말에 두 귀를 기울였어요.
“나미 아줌마 귀신처럼 아들을 하나라도 낳았더라면 좋았을 걸.”
딸막 할머니 귀신은 긴 한숨을 쉬며, 잠시 두 눈을 감았어요.
“딸막 할머니 귀신, 딸이 셋이니 있는데 아들이 없는 거랑 혼자 죽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세요?”
“내가 아들만 낳았어도…….”
딸막 할머니 귀신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아들만 낳았어도’ 라는 말만 되풀이하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어요. 그런 딸막 할머니 귀신의 모습을 보자 현이 귀신도 경민이 청년 귀신도 딸막 할머니 슬픈 사연이 더욱 궁금했어요. 나미 아줌마 귀신은 딸막 할머니 귀신 손을 잡고 울었어요.
“딸막 할머니 귀신, 딸만 내리 셋을 낳은 거하고, 혼자서 죽은 거 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요?”
자식이 있는데도 혼자 죽다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나미 아줌마 귀신이 울음을 멈추고 다시 물었어요.
“딸막 할머니 귀신, 어서 빨리 말씀해 보세요."
경민이 청년 귀신도 슬픈 얼굴로 딸막 할머니 귀신 얼굴을 쳐다보며 재촉했어요.
“첫아기인데도 딸을 낳았다고, 아들이 아니라고 시어머니가 얼마나 시집살이를 시켰는지 몰라. 어떻게나 구박을 하던지 누워 있을 수가 없었어. 아기를 낳은 다음 날부터 나와서 일을 했지.”
▲ 그림 김설아 동신중 1학년
“어머, 어머나, 세상에 그런 못된 시어머니가 다 있대요.”
나미 아줌마 귀신은 기가 막힌다는 듯 흥분을 했어요,
“삼신할머니도 무심하시지, 두 번째 아이도 딸을 점지해 주실 게 뭐야. 시어머니의 구박은 이루 말 할 수 없었어."
“딸은 자식이 아니래요? 딸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정말 나쁜 시어머니네요.”
경민이 청년 귀신도 몹시 흥분한 듯, 나미 아줌마 귀신의 말끝에 한마디 거들고 나섰어요.
“그거야 지금 세상이니까 그런 거지, 옛날엔 아들을 못 낳으면 칠거지악이라는 말이 있었네. 일곱째 딸인 내 이름을 딸막이라고 지은 건, 딸을 그만 낳고 아들을 낳으라는 거였네, 이름 덕으로 내가 남자동생을 본거야. 세 번째 아기를 또 딸을 낳자 친정어머니를 닮아서 줄줄이 딸만 낳을게 빤하다고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새 여자를 얻어주었어.”
“어머나, 세상에나, 딸막 할머니 귀신, 그래서요?"
나미 아줌마 귀신이 딸막 할머니 귀신을 재촉했어요.
“그런데 새 여자가 떡하니 아들을 낳았지 뭔가. 아들을 낳은 여자는 기세가 등등했지. 남편도 나를 남 보듯 했고. 아들 손자를 본 시어머니는 춤을 덩실덩실 추고 좋아하며 나를 못살게 굴었지. 구박을 하는 것도 성이 안 찼던지 나를 쫒아 내고 말더군.”
“어머, 어머머머, 정말 못된 사람들이네요?”
나미 아줌마 귀신은 마치 자기가 겪은 일인 양,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온 몸을 벌벌 떨었어요.
“투표를 할 것도 없어요. 이번 달에는 딸막 할머니 귀신을 반장으로 확 뽑자고요.”
나미 아줌마 귀신은 현이 귀신과 경민이 청년 귀신의 의견도 묻지 않았어요. 불쌍한 딸막 할머니 귀신을 반장으로 뽑아야 한다고 마구 소리를 질렀어요.
하지만 현이 귀신은 딸막 할머니 귀신이 왜 자기보다 불쌍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새 책가방과 학용품이 주인을 잃고 현이를 기다릴 텐데, 엄마 아빠가 현이를 얼마나 사랑하셨는데, 투표도 하지 않고 양보를 하는 건 싫었어요.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투표도 안하고 반장을 뽑는 건 말도 안돼요? 그건 정정당당한 방법이 아니라고요.”
“현이 귀신, 딸막 할머니 귀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니? 아들 못 낳았다고 쫓겨나 고생하다 죽었는데, 딸막 할머니 귀신 집이 없어진다는데 안 불쌍해? 자식을 셋이나 낳고도 딸만 낳을 낳았다고 쫓겨 난 딸막 할머니 귀신이 너무 불쌍하지 않니? 이번 달엔 우리 모두 양보하자. 다음 달에도 내가 양보할게, 현이 귀신아, 우리 이 번 달에는 딸막 할머니 귀신을 반장으로 뽑자. 응?”
“딸막 할머니 귀신이 반장되면 딸막 할머니 귀신집이 없어지지 않나요?”
애걸하는 나미 아줌마 귀신 말에 현이 귀신은 다짐을 하듯 딸막 할머니 귀신께 물었어요.
“그럼, 세상에 가서 내 딸들을 찾을 거야. 내 딸들을 찾으면 엄마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자세하게 말해 줄 거야. 내 집이 주인이 없는 집이 아니라는 걸 밝혀 낼 거야.”
현이 귀신은 딸막 할머니 귀신 말을 모두 이해 할 수 없지만, 집이 없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쉽지만 이번 달에는 양보를 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아요. 딸막 할머니 귀신이 원조 귀신이니까 내가 양보를 할게요.”
“현이 귀신, 내가 원조 귀신이라고? 호호호 그런데 현이 귀신은 원조라는 말을 어떻게 알았을꼬?”
“딸막 할머니 귀신, 제가요, 고기를 무지무지 좋아하거든요. 엄마랑 아빠랑 ‘원조 숯불갈비 집’으로 고기 먹으러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아세요. 그런데 원조도 모르면 바보라고요.”
“야, 현이 귀신 정말 똑똑하고 착하다. 딸막 할머니 귀신이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딸막 할머니 귀신이 원조귀신 맞아. 똑똑한 현이 귀신 말이 정답입니다. 짝짝짝.”
나미 아줌마 귀신이 손뼉을 치고 허리가 부러지도록 깔깔깔 웃었어요.
“아들을 낳지 못했다고 집에서 쫓겨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대를 살다 오신 딸막 할머니 귀신이 원조 귀신이 맞습니다. 딸막 할머니 귀신을 반장으로 뽑는 걸 나도 찬성합니다.”
경민이 청년 귀신도 큰소리로 맞장구를 쳤어요. 현이 귀신과 나미 아줌마 귀신, 경민이 청년 귀신, 모두 미련 없이 양보해 주었어요. 참으로 마음씨가 따뜻하고 곱고 예쁜 귀신들이지요. 남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씨가 고운 아름다운 귀신들이지요. 착한 귀신들 덕분에 딸막 할머니 귀신은 투표를 하지 않고도 당당하게 반장으로 당선이 되었답니다. -끝
*<하늘나라 반장 선거>는 《고향으로 돌아 온 까치네》속에 들어 있는 동화입니다. 이 책은 이수옥 작가가 글을 쓰고 중학교 1학년인 김설아 손녀가 그림을 그린 동화로 할머니와 손녀의 풋풋한 사랑이 새겨진 따뜻한 이야기 책입니다. 이 책은 인터파크 등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에 있습니다.(편집자 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