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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사내의 세종한글 길라잡이

스승과 선생은 어떻게 다를까?

[홍사내의 세종한글 길라잡이]

[그린경제/얼레빗 = 홍사내 기자]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을 ‘선생의 날’이라 하지 않음은 왜일까? 물론 ‘스승’은 토박이말이고 ‘선생’은 한자말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현대말에서 그 뜻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따금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라고도 하니 말이다. 

오랫동안 문헌에서는 ‘사(師)’ 또는 ‘선생’이 ‘스승’을 대신하였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이로써 새것을 알면 스승으로 섬길 만하다.[溫故而知新可以爲矣]”라고 하였고, 「술이」편에서는, “세 사람이 같이 갈 때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焉]”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한자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회제도적으로 수많은 ‘선생 또는 사(師)’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미 신라 시대 기록인 《삼국사기》 46권(열전)에 강수 선생(强首先生)과 48권에 백결 선생(百結先生)이 보인다.  

엄밀히 따져 훈민정음(한글) 창제 이전에는 ‘사(師)’를 ‘선생’으로 풀이하거나 앞가지 또는 뒷가지로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제 이후 바로 언해본에 ‘스승’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자주 쓰던 말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뜻은 사뭇 다르다. 요즘은 주로 ‘선생’이란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을 가리키며, 모르는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쓰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박사(賭博師), 도선생(盜先生)’처럼 비아냥거릴 때 쓰기도 하여, 그 의미가 매우 낮아진 것을 볼 수 있다.  

   
▲ 겨레의 영원한 스승 세종대왕(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제공)

사전에 따르면, 이런 뜻의 낮아짐은 일제 강점기부터라고 한다. 19세기 말 개화기에 근대 학교가 나타나면서 ‘가르치는 사람’을 교사라고 부르기 시작하였고, 일제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교사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특정적으로 지칭한 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윗사람을 부르는 말과 혼용되기도 하였다. 다시 말하여, 선생이라는 용어가 모든 교사에게 붙여지는 높임말이자, 지식이나 인격면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여졌던 것이고, 더나아가 비속화되기 시작한 것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스승은 기원적으로 제사장과 행정의 수반을 이르던 말이었다. 지금도 평안도나 함경도 지방에서는 무당을 ‘스성, 스승이’라고 한다. 누구도 모르는 것을 꿰뚫어 보고 가르치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으로서, 갈등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중재자 구실을 도맡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당은 여자를 가리키고 남자 무당은 ‘박수[격(覡)]’라고 하여 달리 말한다. 그러므로 스승이란 말은 이미 선사 시대 모계 사회부터 생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김만중의 《서포만필》(1687?)에서도 ‘스승’이 불교의 중을 가리키는 ‘사승’에서 비롯하였다고 풀이하였다. 또 정교의 《동언교략》(1905?)에 보면, 사(師)의 중국 발음이 ‘스’란 점으로 미루어 ‘사승(師承)’이 스승의 어원이라 했다. 그러나 정호완 교수는, “신라의 2대 임금이던 남해 자충(慈充, 次次雄)을 <삼국사기>에서는 ‘무당’으로 풀이했는데, 당시 우리말에는 파찰음이 없었음과 칼그렌식Karlgren 고대 한자음을 고려하면 ‘자충>즈증>스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자충에 대한 기록을 보면 이미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말에 ‘스승’이란 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정호완, 2011)라고 하였다. 곧 스승이란 말이 우리 역사에서도 오래전부터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글이 없던 시절 한자말 ‘사(師)와 선생(先生)’이 들어와 쓰일 때도 우리 겨레는 늘 그 말뜻을 ‘스승’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끈질긴 생명력인가? 

율곡 선생은,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는 안되고, 선생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되며, 웃는 일이 있더라도 이빨을 드러내서는 안되고, 스승과 겸상할 때는 7푼만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성균관 학칙에는, 길에서 스승을 만나거든 두 손을 머리 위로 쳐들고 길 왼쪽에 서서 있어야 하고, 말을 타고 가다가 스승을 뵈면 몸을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기독교 성경에는 ‘랍비(rabbi)’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선생’이라고 번역한다. ‘나의 선생님’ ‘나의 주인님’(요한 9:2)이라는 뜻의 헤브라이어로, 라보니(rabboni)라고도 한다(요한 20:16). 곧 랍비는 다름 아닌 ‘스승’이란 말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구약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지칭하거나, 주로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썼는데, 1~2세기에 이르러 유대교의 지도자 제도로 정착되었다.(갓피아성경) 예수님은 제자들이 랍비라고 부르는 것을 경고하였는데, 이는 하나님이 오직 ‘랍비’(스승)이며 그 외에는 모두 ‘형제들’(마태 23:7~8)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즉 최고의 스승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스승의 날인 5월 15일은 세종대왕이 나신 날이다. 세종을 겨레의 가장 큰 스승이라는 뜻에서 1965년에 지정된 날이다. 스승이란 모름지기 가르침과 삶이 내게 모범이 되는 사람을 일컫는다면, 그만큼 존경할 만한 사람으로서 그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남달라야 하겠지만, 누구에게 스승이란 말을 듣는 일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가르치고 보살피는 삶은 존경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교직에 계시는 모든 선생님은 곧 스승임이 틀림 없다.  

그러므로 이날 하루만이라도 학교에서 ‘선생님’ 대신 ‘스승님’이라고 불렀으면 좋겠다. 내게도 스승이 계시다. 그런데 스승님을 밝히는 일은 왜 그리 조심스러운지 모르겠다. 아마도 마음속으로 늘 존경하면서도 스승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나 않을까 두려워서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 희생자의 명복을 삼가 빌며, 그 가족과 아픔을 같이하고 싶다.(2014.4.25.©홍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