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 = 홍사내 기자] 한글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느덧 580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한자 타령에 세월을 좀먹는 사람이 있다. 교육부는 2015년에 개정될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 도입’ 법안에다가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 병기’라는 문구를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살짝 끼워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것은 국회에서 작년에 통과시킨 상위법 ‘선행학습 금지법’에 위배되는 하위 법안(?)임에 틀림없는데, 한자 학습에 이권이 개입된 사람들이 아니라면 반역사적이고 비교육적이며, 사교육을 부추기는 이런 정책을 펼 리가 없다. 한자가 이 땅에 들어온 지 2천여 년이나 되고, 정규 교육과 모든 기록물이 오로지 한문(한자)으로만 이루어지며 보낸 세월이 1,900여년이고 보면, 한글로 교육을 하고 한글로 공문서를 쓰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0년도 안 된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 35년 동안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당했으니 우리 말글이 제구실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은 광복 이후 70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일부 국한 혼용론자들이, 대한민국의 문자가 한글이라는 것도 잘 모르고 제정신을 못 차릴 만도 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할 때도 백성을 가르치고 제 생각을 쉽게 전할 수 있도록
[그린경제/얼레빗=홍사내 기자] 문학평론가 김윤식 교수는 《일제말기 한국 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서울대학교출판부, 2003)에서, “저 《친일문학론》을 쓴 임종국은 ‘독자들이 제일 궁금하게 생각할 것은 이 책을 쓴 임종국이는 친일을 안 했을까? 이것이 아닐까 한다. 이 의문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 필자는 자화상을 그려야겠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하면서, 강점기 시대의 작가가 선택해야 했던 글쓰기의 방법과 삶을 살피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친일문제는 사상 검증처럼 돌이켜 구별 져야 하는가보다. 작가의 삶이나 작품 속에서 친일 색깔을 찾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저울의 덫처럼 균형 잡기 힘든 작업이다. 수평잡기를 못하면 항일운동가가 되거나 친일매국노로 몰리기 쉽고, 그렇다고 수평을 잘 잡은 자도 매를 맞기는 마찬가지다. 방관자 혹은 도피자, 회색분자 따위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우리 역사 속에서도 많은 정변으로 적대자가 생기고, 그들이 다시 복원되는 일을 숱하게 본다. 사람의 한평생을 선악의 잣대로 구별하거나 이념의 굴레를 씌우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판단이 아닐 수 없다. 분단 이후 자의든 타의든 남북으로 갈라져 사는 우리는 서로 적이 되어 있고,
[그린경제/얼레빗 = 홍사내 기자]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이날을 선생의 날이라 하지 않음은 왜일까? 물론 스승은 토박이말이고 선생은 한자말이라서 그렇기도 하거니와 현대말에서 그 뜻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따금 선생은 있지만 스승이 없다.라고도 하니 말이다. 오랫동안 문헌에서는 사(師) 또는 선생이 스승을 대신하였다. 《논어》 「위정」편에서 공자는, 옛것을 익히고 이로써 새것을 알면 스승으로 섬길 만하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고 하였고, 「술이」편에서는, 세 사람이 같이 갈 때는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三人行必有我師焉]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한자말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사회제도적으로 수많은 선생 또는 사(師)가 등장하게 되었으니, 이미 신라 시대 기록인 《삼국사기》 46권(열전)에 강수 선생(强首先生)과 48권에 백결 선생(百結先生)이 보인다. 엄밀히 따져 훈민정음(한글) 창제 이전에는 사(師)를 선생으로 풀이하거나 앞가지 또는 뒷가지로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창제 이후 바로 언해본에 스승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면, 얼마나 자주 쓰던 말인지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뜻은 사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