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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

“망신만 당하지마라”, 그러나 88올림픽을 유치하다

새롭게 보는 한국경제 거목 정주영(1915~2001) <22>

[그린경제/얼레빗=김영조 기자]  내가 전경련 회장으로 있을 때다. 나한테는 사전에 한마디 말도 없이, 5월 어느 날, 문교부 장관이 대통령 결재까지 맡았다고 하며 자신을 위원장으로 한 민간 7인 위원회라는 것을 누런 종이에 시커멓게 프린트한 것을 들고 왔다. 그러면서 정부의 체면이 서도록 해주면 좋겠다.’라고 사정했다.” 결국 그 임무돈이 있다는 것과 전경련 회장이란 명분으로 정주영에게 떠넘겨 진 것이었다.

하지만, 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유치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올림픽을 치르려면 경비가 약 8000억 원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곳간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울며 겨자 먹기로 떠안겨진 올림픽 유치 민간추진위원장을 정주영은 원래 그의 생각대로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이왕 맡은 이상 정주영의 진가를 발휘해야 했다.  

그러나 어디 그게 쉬운 일이던가? 세계 사람들은 당시 한국에 가면 아직도 전쟁고아가 득실거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줄로만 알던 때였다. 또 그보다 10여 년 전 1974년 아시안 게임을 유치했다가 개최 능력이 안 된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반납한 적이 있었다. 아시안 게임은 개최국의 능력, 그리고 참가국 수나 동원되는 자원의 규모면에서 올림픽에 비하면 지역 행사 정도에 불과한 작은 행사인데도 반납을 했으니 이것은 한국이 국제 스포츠계에 부도를 낸 상상할 수 없는 전과기록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또 하나의 복병이 있었는데 그것은 북한이었다. 한국이 올림픽 유치를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지지표라도 많이 나오면 상대적으로 남한에 비하여 북한의 국제적 위상이 떨어질 것으로 생각하여 그들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개최되면 대대적인 테러를 감행하겠다는 말을 암암리에 국제 사회에 퍼뜨리고 있었다. 아랍 무장 게릴라 검은 구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단을 습격하여 집단 사살한 1972년 뮌헨 올림픽의 악몽 때문에 올림픽에서 테러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개최국 선정에서 배제당할 가능성이 절대적인 때이기도 했다.

올림픽을 열겠다는 서울은 이러한 위협을 가하는 북한과는 불과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었다.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양측에는 엄청난 살상무기로 중무장한 양진영이 살벌한 긴장 속에 대치하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올림픽 개최지로는 생각하기 힘든 선택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더 큰 장애물은 일본이었다. 한국에게는 실력 면에서 비교가 안 되는 경쟁자 일본이 나고야를 개최지로 내세웠고 기반시설, 넘치는 자금력, 과거 도쿄 올림픽 개최 경험, 국제스포츠계에 막강한 인맥을 통한 로비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한국은 자기들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고 단정 짓고 자기들의 88올림픽 유치를 기정사실화한 채 대대적인 유치 성공 기념축제를 준비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부정적인 시각은 한국 국내에도 팽배해 있었다. 유치에 성공할 턱도 없지만 설령 유치한다 해도 턱없이 부족한 재원과 엄청난 시설건설에 따른 재정 적자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올림픽을 개최 한 뒤 막대한 적자 부담으로 홍역을 치른 이전 개최국들의 낭패 사례들은 좋은 예가 되었다. 승산이 없는 결과가 뻔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정주영은 해야만 했다.  

그 어렵다던 당제터널을 뚫고 준공 목표일을 크게 앞당겨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했고, 20세기 최대의 공사 주베일 항만공사를 수주하여 멋지게 해냈으며, 세계 자동차의 본거지 미국에 자제 브랜드 포니로 당당히 상륙했던 정주영이었다. 또 아무도 엄두를 못 내던 서산 대규모 간척지 공사 중 마지막 270m 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23만 톤 폐유조선으로 막아낸 천재적인 경영인이 아니었던가? 그런 정주영은 어떤 방법으로 IOC위원들을 구워삶을 것인가?  

유치위원장이었던 정주영은 현대 해외 파견 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IOC위원들에 대한 신상파악을 했다. 또 그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경쟁 유치국의 활동상황까지 치밀하게 분석했다. 이때 승리의 여신이 정주영에게 미소를 보낸 사건은 바로 정주영의 꽃바구니 전략이었다. 정주영은 한국 IOC위원들의 반대에도 꽃바구니 하나씩을 각국 IOC위원들 방에 넣어주었다. 그것도 그 꽃바구니를 단순히 주문한 것이 아니라 현대 해외 파견 직원의 부인들이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손수 만든 것이었다.

   
▲ 정주영이 IOC위원들에게 준 꽃바구니는 큰 위력을 발휘했다.(그린 이무성 한국화가)

그런데 그 꽃바구니의 위력은 대단했다. 다음날 각국 IOC위원들이 회의를 끝내고 로비에 모였을 때 그들은 정주영을 보고 반가워하며 아름다운 꽃을 보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바빴다. 사실 그때 경쟁국이었던 일본은 IOC위원 부부들에게 비싼 일제 손목시계를 선물했는데 IOC위원들은 시계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꽃 선물 얘기로 화기애애했던 것이다. 역시 값비싼 선물이 능사는 아니고 정성을 담은 작은 선물이 오히려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냉담했던 각국 IOC위원들의 반응은 상당히 호의적으로 변했고, 한국의 유치활동은 서서히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쎄울 코리아를 외치면서 일본 유치단은 넋 나간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사실 198188서울올림픽 민간추진위원장이었던 정주영이 당시 올림픽 유치를 위해 독일 바덴바덴으로 떠날 때, 정부로부터 들은 말은 "창피만 당하지 말아 달라."였다. 당시 대한체육회장은 현장에 가서도 "우린 한국, 미국, 대만 3표 밖에 못 얻는다."라며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다 분위기가 호전된 뒤 대한민국에 우호적인 나라 한 20표라도 얻으면 대한민국은 체면유지가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입에서 나온 쎄울 코리아발표는 경악 그 자체였다. 정주영이 직접 진두지휘하며 IOC 위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붙들고 늘어져 설득해 결국 52 27로 나고야를 물리치는 대역전극을 펼쳐 보인 것이다. 

심지어는 서울 유치를 믿을 수 없었던 한 외국 언론은 한국이 기생을 동원했다.”고 보도하여 홍보관에서 안내하던 미스코리아와 스튜어디스들이 순간 기생인 것처럼 비쳐지기도 했다. 정주영은 이를 잠재우기 위해 아들 정몽준은 물론 베를린올림픽의 영웅 손기정 씨, 현대고등학교 장정자(張貞子) 이사장 같은 사람들이 직접 손님을 맞도록 해서 기생설을 잠재운 일도 있었다. 

서울올림픽이 결정되던 순간, 정주영을 비롯한 유치위원들은 물론 온 국민은 모두 함께 부둥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88서울올림픽이 확정된 직후 한 세계적인 시사 주간지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실었다. “5000년 역사를 가졌다는 한국-‘고요한 아침의 나라그리고 은자의 왕국이라는 정체와 퇴영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와 함께 일본의 식민지 지배, 참혹했던 한국 전쟁, 빈곤, 끊임없는 사회 소요로 점철되었던 한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이라는 세계적인 축제를 통해 범세계 사람들의 긍정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서울올림픽의 영향으로 한국경제의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었다. 88서울올림픽은 처음 알려진 것처럼 흑자는 아니었지만 코리아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세계 각국에 우리 문화를 실시간으로 알린 최초의 국제적인 행사였다. 한국에 가면 아직도 전쟁고아가 득실거리고 총알이 빗발치는 줄로만 알던 세계인에게 대한민국을 알리고, 우리 스스로는 긍지를 갖게 한 중요한 계기였다. 정주영은 그렇게 온몸으로 뛰어 서울올림픽을 대한민국 역사상 커다란 의의를 갖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