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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잠단터 주변에는 누에가 먹고 자라던 뽕나무들이 잘 자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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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잠단터 표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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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잠단터 표지석 |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는 '선잠단(先蠶壇)'이 있었다. '선잠단'이란 비단실을 뽑아내는 '누에'신인 '서릉(西陵)'씨를 모셔두고 1년에 한차례씩 제사를 지내면서 뽕나무잎을 잘 먹고 누에들이 잘 자라서 좋은 비단실을 잘 뽑아낼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염원을 빌었던 곳이다.
선잠단의 제사는 왕비가 주관하였는데 왕비가 친히 납시어 누에치는 것을 모법을 보이고 대궐 밖에 사는 모든 사람들도 왕비처럼 열심히 누에농사를 잘 짓도록 권하는 행사였으나, 이곳 선잠단은 1908년 선농단과 함께 사직단으로 그 제단과 신위를 옮겨서 행사를 하게 되었다.
누에는 열심히 뽕나무 잎을 먹고자라, 다 자란 애벌레가 나방이 되기까지 머물러 있을 누에집을 자기 입에서 뽑아낸 실로 누에고치를 짓는데, 그 고치가 바로 비단실이 되는 것이다. 그 가늘고 고운 비단으로 가득한 누에고치를 사람들은 뜨거운 물에 풀어서 누에가 입에서 처음 뽑아낸 실마리를 찾아내서 이를 실패에 감은 뒤에, 실패에 감긴 실들을 베틀에서 날줄과 씨줄로 엮어짜서 비단옷감을 만들고, 그 옷감으로 호화로운 임금님의 비단옷을 만들어 입었던 것이다.
그 귀한 비단이 동양에서는 고래로부터 최고의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서양에는 비단을 만드는 방법을 몰라서 중국의 실크로드를 통하여 무역상들이 오고 가면서 오랫동안 비단장사를 많이 하였다. 그 비단이 오고가던 길이 다름아닌 중국 북방 사막을 지나 서아시아와 유럽으로 이어진 실크로드인 것이다. 변변한 옷감이 없어 늘 동물의 털로 된 꺼칠한 옷만 해입던 서양인들이 곱고 부드러운 비단옷을 보고 반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로마시대에는 그 비단값이 금값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현재 성북동 선잠단터 이곳에는 선잠단은 사직단으로 이전하여 없어지고 표지석만 남아 이곳이 본래 선잠단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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