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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일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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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금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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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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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가을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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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범종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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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종루 안의 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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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제존자 나옹화상의 승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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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옹화상의 행적을 기록한 탑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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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대웅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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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보전 앞의 대리석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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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석 탑에 새겨진 용무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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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전탑으로 오르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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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전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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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륵사 3층석탑 남한강을 맞이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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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석탑과 참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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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강에 떠있는 어선 |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나옹선사는 고려말 고승으로 원나라에 유학하여 인도의 고승 지공에게 공부한 후 그 지공화상을 고려로 모셔와 스승으로 모셨다. 지공은 인도에서 온 그냥 스님이 아니고 석가의 법을 이어 받은 법제자로 108대 법손자로 그의 고려행은 불법의 정통이 고려로 옮겨온다는 것을 뜻한다 인도의 나란다 대학에서 불교공부를 한 지공은 인도에 몰아닥친 이슬람교의 압박에 견디지 못하고 자신의 고향인 인도를 떠나 중국(원나라)로 왔던 것인데, 그를 알아본 젊은 나옹스님은 그에게 몇 년 불교공부를 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를 자신의 나라인 고려로 모셔왔던 것이다.
인도의 고승이었던 지공화상은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와 2년여 살다가 입적했다. 그의 사리는 그가 고려에 들어와 머물던 경기도 양주 회암사의 언덕 위에 터를 잡아 사리탑을 조성하였고, 지공을 고려로 모셔왔던 고려말의 고승 나옹화상은 자신의 스승이었던 지공선사와 함께 회암사에 일부가 모셔졌고, 나옹화상이 돌아가신 곳인 여주 신륵사에 나머지가 모셔졌다.
나옹선사는 승탑이 2곳에 모셔졌는데 아래 사진이 신륵사에 있는 나옹화상의 사리탑이다 나옹화상은 도도 높았지만 시도 잘 썼다. 그의 시중에 지금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선시 하나를 보자.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랑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랑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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