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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명성황후 시해 때 숨진 수비대장 원혼 모신 장충단, 사쿠라 천지

제단이던 장충단은 공원화하면서 비석 등 마구 파헤쳐

 

   
▲ 장충단 전경

   
▲ 장충단 뒷면

   
▲ 장충단 정면

   
▲ 장충단 전경

[그린경제/얼레빗=최우성 기자] 배호의 '안개낀 장충단(奬忠壇)공원'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장충단공원입니다. 그런데 그 '장충단(奬忠壇)'이 무슨 곳인지는 아마도 대부분 잘 알지 못하고 그저 서울 남산의 한 자락에 있는 도시공원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장충단의 설립의미를 알고나면 편한 마음으로만 산책 삼아 들르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장충단은 1900년 고종이 세운 영령들을 위로하고 제사를 지내던 제단인데,  이는 1895년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과정에서 함께 목숨을 바친 궁궐의 수비대장과 당시 내부대신 이경직을 비롯한 원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하지만 1910년 강제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진 뒤 일본은 장충단을 폐하고 비석도 파서 멸실시켰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벚나무(사쿠라)를 심고 일본식 공원으로 만들어  장충단공원이라 이름하였지요.

이렇게 제사를 모시던 장충단은 장충단공원이 되어버렸고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많은 사람들은 이곳이 단순한 공원인지 알고  찾고 있는 것입니다. 배호의 노래로 '장충단공원'은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지요.

 하지만, 역사의 숨결은 되살아나서 1945년 일제에서 해방이 된 뒤 장충단 비를 다시 찾아서 1969년 이곳에 다시 세웠습니다.

'장충단(奬忠壇)'비의 비문은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이 직접쓴 글이며 뒷면에는 당시 육군부장이었던 민영환이 장충단을 세우게 된 내력을 썼습니다. 사연도 많은 장충단은 나라의 운명에 따라 세워지고 폐하고 다시 세워졌지만 그 아픈 의미를 알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알고보니 더욱 더  마음이 아픕니다. 광복이후 아픈 우리의 역사를 되살리고 그 의미를 되찾고자 이제는 서울시유형문화재 제1호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