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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인경왕후의 서오릉 익릉과 조선의 역사

 

   
▲ 익릉의 전경

   
▲ 익릉의 정자각

   
▲ 능을 지키는 능지기가 거하는 수복방

   
▲ 정자각에서 본 익릉

   
▲ 능의 아라에서 본 익릉

   
▲ 능의 앞에 도열한 석물들

   
▲ 능의 우측에 도열한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석마들

   
▲ 능의 좌측에 도열한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석마들

   
▲ 능의 앞에서 왕비의 명령을 기다리는 문신

   
▲ 능의 앞에서 능을 수호하는 무신(장군)

   
▲ 익릉의 석수들(석호 석양) 능의 주변을 보호 감시한다.

   
▲ 익릉 전경

   
▲ 능의 뒤에서 본 익릉과 전경

   
▲ 능 아래로 내려와서 본 익릉


[한국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익릉은 서오릉에 숙종보다 먼저와서 자리한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능이다. 일찍이 11세에 왕궁에 들어와 세자빈이 되었고, 13세에 왕비가 되었던 인경왕후는 왕자를 생산하지 못한채 20세 에 삶을 피워보기도 전에 콜레라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녀가 그리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조선의 후기 역사는 또 어찌 펼쳐졌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숙종때 궁녀에서 왕비까지 되었던 장옥정(장희빈)도 없었을 것이고, 그녀의 뒤를 이어 제1계비가 된 인현왕후도 없었을 것이며 인현왕후의 시녀로 궁녀가 되었던 최숙빈을 만나지도 못하였으면 영조 정조이하 아무도 이세상에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의 급작스러운 승하는 아직 청년도 되기전 숙종이 인생사에 대한 허무감을 크게 느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인생관도 크게 바꾸었지만 그와 관계된 수많은 여인들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며, 그들을 둘러싼 추종대신들의 세력다툼 또한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니, 조선 후기의 당쟁으로 인한 소모적인 암투도 없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인경왕후의 너무도 급작스런 승하는 조선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았고, 이후 조선이 제대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는 마지막시기까지도 당쟁과 외척들의 세도정치속에 기울어가는 씨앗이 되었다.

이제는 잘 정비되어 능의 주변을 마음대로 오르내리지도 못하는 세계유산이 되어 세계인들이 찾아오는 조선의 왕릉들이지만, 국운이 기울고 나라가 없어지는 수난의 세월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동안에는 왕릉이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소풍온 학동들은 넓고 푸른 잔디밭이 보물찾기와 씨름판이 되기도 하였다. 그런 세월을 견디고 오늘에 이른 것이 조선의 왕릉들이다. 안타깝기야 젊은 나이에 최대 임무였던 후사를 잊지 못하고 죽은 인경왕후보다 더 안타까울 수 없을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죽음이 국가와 민족의 앞날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역사는 아무도 되돌릴 수 없지만, 지도자급 인사들의 생사와 그들이 하는 생각과 업적들이 자신들의 앞날뿐 아니라 국민과 후손들의 역사에 크나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사리사욕와 자신을 둘러싼 정파중심의 정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느껴보는 서오릉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익릉을 답사한 소감이다. 

익릉의 구성은 숙종의 왕릉인 명릉보다 능의 석물들이 더욱 장대하다. 이는 숙종이 장성하기 전의 과거 능제에 따라 능을 조성했기 때문으로, 특히 무인석 문인석의 크기가 실제 사람보다는 훨씬 크고 장명등 혼유석 또한 크고 장대하게 조성되었다.

 

 

 

최우성(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문화재수리기술자로 한국인의 삶을 담아온 전통건축의 소중한 가치를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북촌한옥마을 가옥 보수설계, 혜화동주민센타 개보수설계, 파주 화석정,  파산서원 등과 영주 소수서원의 정밀실측설계, 불국사 일주문, 안동하회마을, 제주성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 문화재보수설계 일을 맡아했다. 포천시민의 종 종각설계, 용마산 고구려정, 도피안사 대웅전, 봉선사 종각 등을 설계하였다. 현재 한국불교사진협회 회원, 문화재청 문화유산사진작가, 불혹의 포토클럽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