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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아ㆍ김민서의 음악편지

송창식 ‘고래사냥’

[디제이 김상아의 음악편지 28] ‘바보들의 행진’ 주인공 번민 담겨

[한국문화신문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공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하찮아 보였다. 어느 청년 기업가의 성공 신화가 입 바람을 타고 떠돌았으나 귀 밖에 머물렀다. 바다 건너에서 전해지는 올림픽 승전보에도 환호하지 못했다. 동물적 투쟁본능의 잔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우중(愚衆)으로만 보였다. 승자와 패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이분구도 현실은 더욱 경멸스러웠다. 


무얼 위해 살아야 하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답을 구하다 무력감을 감당치 못해 자학에 빠져 있었다. 유서를 써서 주머니에 넣고 친구 화실을 찾았다. 좁은 공간에서 풍기는 테레핀 냄새가 화실 밖까지 진동했다. 


가난뱅이 딴따라와 환쟁이. 

그래도 우린 신기하리만치 밥은 굶어도 술은 안 굶었다. 루핑지붕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릴 들으며 소주잔에 허무를 타서 마셨다. 진아(眞我)라는 명제로 논쟁을 하다 아메바와 에테르를 들먹이기도 하고, 생명의 기원을 찾느라 우주도래설을 논하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선언했다. 

나 오늘 유서 썼다. 술 마시다 죽던가, 참된 나를 찾아 떠나던가!” 


그리고 다음날 나는 산사 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최인호의 연재소설 바보들의 행진이 캠퍼스의 화제이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예쁜 고래는 말이야, 나를 태우고는 동해바다 한가운데로 달려가는 것이었어. 신화처럼 멀고도 아름다운, 깊고도 푸른 바다 속을 헤엄치면서. 산호와 진주, 보석. 꿈의 왕국을 보았지. 두고 보라고 나의 꿈은 곧 현실이 될 테니까.” 

영화 바보들의 행진한 장면이다. 주인공 병태가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간밤에 꾸었던 꿈 얘기를 하자 모두들 병태를 위해 건배를 한다. 배금주의와 이기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자아의 완성을 위해 번민하는 젊은 지성들의 고뇌를 잘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 송창식 음반 표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무엇을 할 것인가 둘러보아도
보이는 건 모두가 돌아 앉았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삼등삼등 완행열차 기차를 타고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마리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들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모두들 가슴속에는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송창식 고래사냥 


소설가 최인호는 1973년 모 스포츠신문에 바보들의 행진을 연재하여 한 달 만에 발행부수를 두 배로 늘리는 금자탑을 쌓았다. 그 인기의 여세를 몰아 하길종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하재영과 이영옥을 주연으로 발탁하여 스크린에 옮겼다. ‘고래사냥은 영화바보들의 행진에 삽입되어 선풍을 일으킨 곡으로 최인호가 노랫말을 짓고 송창식이 곡을 붙여 불렀다. 


송창식은 1947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경찰관 부친이 6·25때 전사하고 곧 이어 모친마저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불우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1968년 윤형주와 함께 트윈 폴리오로 데뷔하여 현재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 송 라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 감사, 전 한국교통방송·CBS D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