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정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를 하였다. 땅을 자주 자주 다지며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는데, 사설은 구수하면서도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재미있는 구성이란 점, 제6과정은 더 잦게 다지는 과정으로 <이엿차>라 부르며 노랫말도 4자 1구로 규칙적이란 점, 마지막 과장은 뒷놀음의 순서인데, 힘들고 지루함을 잊고 신명나게 춤을 추며 한바탕 노는 마당이란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대표적 궁궐, 경복궁은 서울 종로구에 있고, 사적 제117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조선을 건국하고 이성계는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먼저 경복궁을 지었는데, 시경(詩經) 가운데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불렀어라. 임이시여, 만 년 동안 큰 복을 누리소서."(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라는 시 끝부분의 <경복(景福)>을 딴 것으로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그 뜻은 큰 복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경복궁 건축의 실질적 인물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책임자 심덕부로 보는 시각도 있고, 또는 환관 김사행(金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경다지기의 작업과정이 힘들기는 하나,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사상누각(砂上樓閣)을 이야기 하였다. 제4과장은 휴식을 취하며 펼치는 마당놀이의 순서로, 여기서 부르는 민요가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인, <양산도>와 <방아타령>등이란 점, 이 노래들은 간단 소박한 가락과 단순한 장단이 특징이고, 노랫말에서도 직설적인 표현이 많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제5과장인 <자진 지경다지기> 이야기로 이어간다. 이 과정에서는 모든 참여자들이 자진방아타령을 부르며 자주 자주 지경을 다지는 과정인데, 역시 경기민요의 자진방아타령과는 다른 형태로 서울. 경기지방의 노동요인 <자진 방아타령>을 부른다. <자진>, <잦다>란 말은 ‘동작이 재다’ 또는 ‘빠르다’는 뜻이다. 참고로 전통적인 우리음악의 형식 중에는 만(慢)-중(中)-삭(數)이 대표적이다. 곧 처음에는 느리게 시작하여 점점 빠르게 진행되는 형식으로 <자진>은 곧 그 삭(數)에 해당되는 말이다. 예를 들어, 기악의 독주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산조음악은 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세 번째 과정인, 초(初)지경 다지기를 소개하였다. 소리꾼 모두가 장단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뒷소리를 받게 되는데, 이는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내릴 때, 운율의 일치로 힘의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 지경다지기 소리에는 “에여라 저어”와 “에여라 지경이요” 같은 두 종류의 후렴구가 있는데, 전자가 4글자 단위, 후자는 10글자 안팎의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하였다. 육체적 노동은 말 할 것도 없고, 정신적 활동, 또는 매사 모든 일의 전개 과정이 그렇듯이, 기초가 튼튼하고 확실해야 함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집 짓는 경우를 예로 든다면, 그것이 비록 작은 초가집이라도 땅을 단단하게 다지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는 일은 절대적인 과정이 될 것이다. 더욱이 수백 수천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주택이라면 그 중대성은 더 이상 강조할 것이 없다. 그런데 그 옛날 한 나라의 임금을 위시하여 3,000여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게 되는 궁궐을 짓는 공사에서 땅을 굳건하게 다지는 기초작업의 중대함은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만일 이러한 과정이 힘들고 괴로워서 적당히 끝맺음을 하거나, 또는 소홀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하였다. 경복궁(景福宮)은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함이고,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당시의 지경다지기 재현 과정은, 궁터 고르기, 동아줄 디리기, 초 지경다지기, 마당놀이, 자진 지경다지기Ⅰ, Ⅱ(이엿차), 뒷놀음 등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 궁터를 고르는 가래질소리는 모갑이의 ‘오험차 다루세’로 시작되는 메기고 받는 형식의 노작요이고, 제2과장 지경줄 디리기는‘디리세, 디리세, 지경줄을 디리세.’를 후렴귀로 하는 소리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3과장인 지경다지는 과정을 소개를 해 보도록 한다. 이 과정은 기수(旗手)를 제외한 전원이, 큰 돌에 지경 줄을 묶어놓고 원으로 둘러선 다음, 하나의 지경 줄에 여러 명이 줄을 잡는다. 그리고는 줄을 당겨 큰 돌을 동시에 들었다, 놓았다 하며 지경을 다져나가는 과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모갑이(우두머리 선소리꾼)의 메기는 소리에 전원이 장단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뒷소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박상옥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어려서부터 지역의 농요라든가, 상여소리, 일반 민요창 등을 동네 어른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배운 바탕위에 벽파 이창배 스승으로부터 다양한 경기소리를 배워 남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는 소리꾼이라는 이야기, 그가 불러주는 소리 속에는 힘이나 음색, 강약의 조절이 자연스럽기에 그렇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그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곧 여기에 들어있는 소리와 춤, 놀이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경복궁 지경다지기>라는 말에서 경복궁(景福宮)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의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란 경복궁을 지을 때, 땅을 다지며 부르던 노래와 동작이나 춤 등을 가리키는것이다. 이것을 보존하고 있는 박상옥 명창은 제자들과 함께 고민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바로 경복궁 지경다지기 소리나 춤, 놀이 과정 등을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는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였는데,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라면 뒷산타령은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맛깔스럽게 부르는 노래로 슬픈 느낌과 염불조의 느낌이 있다는 점, 뒷산타령의 도입부를 독창자가 낮은 음으로 내면, 제창자들은 7도 위로 받는 점이 특이하다는 점, 뒷산타령도 <메기고 받는 형식>인데, 받는 후렴구는 서로 다르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잦은산타령은 만(慢)-중(中)-삭(數) 중에서 삭에 해당되는 노래라는 뜻, 사설 내용도 다양한 편이어서 명산의 경개와 함께 춘향가나 심청가, 공명가나 초한가에 나오는 가사의 일부를 인용하여 쓰고 있다는 점, 산타령은 정가(正歌)나 무악(巫樂), 잡가(雜歌)나 민요가락과도 또 다른 독창적인 창법으로 대중들이 즐기는 소리란 점, 특히, 높고 시원한 목청과 다양한 발림, 그리고 장단형으로 대중을 동화(同和)시켜 온 대중의 독특한 소리란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번에 무계원 특별 공연에 초대되어 박상옥 명창이 불러준 장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간다. 그는 현재 서울시 무형문화재 휘모리잡가의 예능보유자로 동 종목의 전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 앞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로 산타령의 <앞>이 뜻하는 의미는 서울의 앞에 있는 여러 산을 노래한다는 의미, 또는 순서상 앞에 부르기에 붙여진 이름이며, 그 시작은 모갑이의 선창으로 자유롭게 시작하고 여럿이 받는 형식이란 이야기를 하였다. 메기는 소리는 가장 높은 음으로 질러내며 독창자의 다양한 목구성과 다양한 기교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 본절 1의 <과천 관악산>으로 시작할 때, <과>를 생략하고 <천>을 관에 붙여 <천관> 그리고 <악산>으로 불러 그 의미가 통하지 않게 부르는데, 성악곡이란 노랫말에 곡을 붙인 것이기에 노랫말의 전달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앞산타령에 이어 뒷산타령과 그 뒤로 이어지는 자진산타령 이야기를 하겠다. 뒷산타령은 서울을 중심으로 해서 그 뒤편에 있는 산을 부른다고 해서 또는 앞산타령을 먼저 부르고 난 뒤, 이어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앞산타령이 길게 뻗는 비교적 곧은 소리인 것에 비해 뒷산은 글자마다 주무르듯 가락을 넣거나 다양한 시김새를 구사해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구성하고 있는 악곡 가운데 대표적인 <놀량>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선소리는 놀량이 대표적인 소리인데, 그 뜻은 놀 작정, 놀 생각, 놀 의향 등으로 풀기도 한다는 점, 놀량의 노랫말에는 의미 없는 가사의 입타령이 많은 편이며 뜻을 알 수 있는 사설은 후반에 나오고 있다는 점, 장단도 일정한 빠르기나 형태로 반복되지 않고, 소리에 따라서 2박, 3박, 4박 등 다양하다는 점을 말했다. 또 놀량의 선율 형태에는 솔-라-도의 상하형 선율과 높은 음역에서는 미-솔-라-도의 상행, 또는 도-라-솔-미의 하행선율이 활기차게 나타난다는 점, 서도의 놀량은 가사의 의미가 분명하고 서도식의 요성(搖聲)창법과 비교적 빠른 박자로 진행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앞산타령 이야기로 이어간다. 첫 곡 놀량에 이어 산타령의 두 번째 악곡이름이 앞산타령이고, 세 번째 악곡이 뒷산타령이다. 앞산타령이란 이름에서 <앞>이 뜻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벽파는 《가창대계》에서 서울을 두고 앞에 있는 여러 산을 부르고 있어서 <앞산타령>, 그 뒤에 둘러있는 여러 산을 부른 것이 <뒷산타령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 이야기 한 답교놀이는 다리[脚]로 다리[橋]를 건너는 놀이, 곧 사람이 물 위에 놓인 다리를 왔다 갔다 하면 한 해 다리 병(病)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성행했던 놀이였다. 이 놀이에는 인근의 소리패들이 모두 모여 함께 산타령을 불렀는데, 이제 그 전문적인 소리패들의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된 상황이다. 다행이 왕십리 소리패들의 가락이 벽파에 의해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는데, 그 특징은 활달한 창법이나 다양한 장단감, 건전한 사설의 내용 등이며 산타령의 전승과 활성화 문제를 국악계가 고민해야 한다는 점과 관리감독청인 ‘문화재청’에서도 비인기 종목에 대한 특별 육성책을 강구해 주기 바란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산타령을 구성하고 있는 악곡 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놀량>에 대해 이야기 해 보도록 한다. 경기지방에서 불리어 온 산타령의 구성은 제1곡이 <놀량>, 제2곡 <앞산타령>, 제3곡 <뒷산타령>, 제4곡 <자진산타령>의 4곡으로 이루어진 모음곡 형식의 합창곡이다. 여기에 시간을 채우기 위해 <개구리타령>이나 <방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과 같은 비인기 종목에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보존회원들에게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는 점과 뚝섬패의 모갑이, 이동운 명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동운은 어려서부터 산타령을 잘 불렀고, 어느 날 고종 황제 앞에서 부르게 되었는데, 고종이 감탄하며 소원을 말하라고 하자, 뚝섬벌을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와 그의 형을 가르친 선생이 이태문이었고, 이태문의 선생이 신낙택, 신낙택의 선생이 이종대, 이종대의 선생이 이의택으로 산타령의 계보가 정리되고 있는 점에서 늦어도 1800년대 초기에는 산타령이 불려 졌으리라는 이야기, 그리고 산타령을 부른 초기의 소리꾼들은 사당패, 예인집단, 또는 세속 음악인들이 그 앞 시대로부터 전해오고 있는 소리형태를 고치고 다듬어 전승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실제로 <앞산타령>이라든가 <뒷산타령>과 같은 산타령의 악곡 이름이 문헌에 보이는 것은 1910년~1920년대에 등장하는 각종 잡가집(雜歌集)들이어서 이미 이 시대에 대중적인 노래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처럼 1920년대 전후, 산타령이 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