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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노작요(勞作謠)는 작업 성과의 중요 요소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3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에 관한 간단한 소개를 하였다. 경복궁(景福宮)은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의 궁궐 이름이고, 지경다지기란 집을 지을 때,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것을 말함이고, 흥선 대원군이 경복궁을 지을 당시의 지경다지기 재현 과정은, 궁터 고르기, 동아줄 디리기, 초 지경다지기, 마당놀이, 자진 지경다지기Ⅰ, Ⅱ(이엿차), 뒷놀음 등으로 짜여져 있다는 점, 궁터를 고르는 가래질소리는 모갑이의 ‘오험차 다루세’로 시작되는 메기고 받는 형식의 노작요이고, 제2과장 지경줄 디리기는‘디리세, 디리세, 지경줄을 디리세.’를 후렴귀로 하는 소리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주에는 <경복궁 지경다지기>의 3과장인 지경다지는 과정을 소개를 해 보도록 한다. 이 과정은 기수(旗手)를 제외한 전원이, 큰 돌에 지경 줄을 묶어놓고 원으로 둘러선 다음, 하나의 지경 줄에 여러 명이 줄을 잡는다. 그리고는 줄을 당겨 큰 돌을 동시에 들었다, 놓았다 하며 지경을 다져나가는 과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모갑이(우두머리 선소리꾼)의 메기는 소리에 전원이 장단과 호흡을 맞추어 가며 뒷소리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소리는 소리꾼에 따라 높낮이의 차이를 보일 수 있으나 장단은 모든 일꾼들이 절대적으로 맞추어야 힘의 결집을 이룰 수 있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장단이 바로 호흡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초 지경다지기>는 본격적으로 지경을 다져나가는 과정이나 처음에는 다소 느린 동작으로 다져 나가는 과정이다. 이때 부르는 소리에는 후렴구로 <에여라 저어>와 <에여라 지경이요>로 하는 두 종류가 있다. <에여라 저어>로 받는 경우, 모갑이의 메기는 가사속에 “아랫 대궐, 위에 대궐, 경복궁이, 새 대궐일세”가 나오고 있다. 후렴구와 함께 덩더쿵과 같은 간단한 장단에 얹어 부르는 가사를 소개해 보면 아래와 같다.

 

※에여라 저어, 해동제일 ※에여라 저어, 대한민국

※에여라 저어, 삼각산 ※에여라 저어, 내린줄기

※에여라 저어, 학의 등에 ※에여라 저어, 터를닦어

※에여라 저어, 아랫 대궐 ※에여라 저어, 위에 대궐

※에여라 저어, 경복궁이 ※에여라 저어, 새 대궐일세. (이하줄임)

 

상기 <에여라 저어>로 받는 후렴구의 경우를 보면, 메기는 소리는 4글자 단위로 간단하게 이어진다. 지경을 다지거나 또는 장례를 치룰 때, 기타 힘든 작업을 공동으로 할 때에는 참여하는 사람들은 노래보다는 00소리를 함께 하며 작업에 임하는 것이다. 힘든 과정을 쉽고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노작요(勞作謠)에 있어서 장단이나 호흡의 일치는 매우 중요한 작업 성과를 올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후렴구가 <에여라 지경이요>로 받는 소리의 경우에는 메기는 소리는 10글자 안팎으로 길어졌다. 그 실례를 보이면 아래와 같다.

 

※에여라 지경이요, 먼데 사람은 듣기도 좋게

※에여라 지경이요, 가까운데 사람은 보기도 좋게

※에여라 지경이요, 지경소리를 하여보세

※에여라 지경이요, 이 대궐을 이룩을 할 제

※에여라 지경이요, 어떤 나무를 디렸더냐

※에여라 지경이요, 붕붕 울려라 붕나무요

※에여라 지경이요, 십리절반에 오리나무 (이하줄임)

 

이처럼 지경다지기에서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거나 내릴 때, 여러 일꾼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려면 무엇보다도 구성원들간의 받는 소리가 하나같이 맞아야 한다. 맞는다는 말은, 곧 운율의 일치를 가리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은 있는 힘을 다해 들어 올리고 있으나, 옆 사람이 그 순간을 함께 못한다면 힘의 집합은 여지없이 분산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농사일을 비롯하여 힘든 작업과정을 오래도록 하면서도 힘든 걸 잊고 즐겁게 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속엔 간결한 가락과 단순한 운율로 된 소리가 있었고, 이러한 소리를 공유하며 작업에 임해 왔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노동속의 소리의 존재를 알았고, 소리의 효과가 절대적이라는 철학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