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산타령 정례발표회를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에서 열고 있는 배경도 왕십리패가 부르던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의 고향이 성동구라는 점, 이와 함께 무형문화재 종목은 개인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연례적인 공개발표회를 통해서 전승 의지나 실태를 확인받아야 한다는 점, 발표자들을 따라 산타령을 함께 제창하는 청중이 많은 점으로 보아 이제 산타령은 대중의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점 등을 앞에서 이야기 하였다. 문화원 대극장에서 산타령 공연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사회자(방영기 전수조교)의 요청으로 무대에 올라 산타령의 역사와 가치에 관한 즉석 도움말을 하게 되었다. 평소 경기소리나 산타령에 관한 생각의 일단을 가감 없이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에 힘을 실었다. “무엇보다도 <산타령>만을 부르며 살 수 있는 문화적 환경이 아닌 상황에서 이 비인기 종목을 붙들고, 전승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구성원 모두에게 여러분과 우리 사회가 보내는 진정어린 격려의 박수가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출연자들의 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평범한 직업인들이라는 점과,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여건을 뒤로 하고, 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김태봉 외 5인을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는 점, 그러나 대부분 연로한 탓에 벽파 이창배 명인이 주된 전승활동을 펼쳐 왔다는 점, 벽파는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경서도 민요와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다는 점, 그 결과 훗날 경기소리의 이해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 당시 벽파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은 경서도 민요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꾸준히 배운 큰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표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타령 발표회가 꾸준히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배경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이 성동구 옥수동에서 태어났고, 왕십리패의 모갑이 이명길에게 산타령을 배워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전승시켜왔기 때문이다. 왕십리패에는 이명길을 필두로 엄태영이나, 탁복만, 이명산 과 같은 소리꾼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뚝섬패나 과천패에 못지않은 잘 나가는 소리패(牌)로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이름 있던 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성동구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열린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소개와 함께 선소리와 앉은소리, 곧 입창과 좌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을 <선소리 산타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서서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라는 점, 노래를 서서 부르거나 또는 앉아서 부르는 연행 형태는 해당 음악의 특징적 표출 방법이 다르다는 점, 좌창은 대부분이 감정을 절제하는 형태이나 입창은 상대적으로 손이나 발, 또는 몸 전체를 자연스럽게 움직여서 감정을 표현하게 된다는 점, 입창의 형태로 부를 것인가, 좌창의 형태로 불러야 하는가 하는 점은 개인이나 집단의 선택이 아니라, 음악적 성격을 규정짓는 근본적인 문제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산타령은 국가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한 단체 종목이다. 1969년에 지정되었으니 벌써 50년이 흘렀다. 최초에는 김태봉, 유개동, 김순태, 정득만, 이창배 등 5인이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이 되었는데, 이처럼 한 종목에 5인의 예능보유자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 종목의 취약성을 인정하여 향후 활발한 전승활동을 기대했던 배려로 보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예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이 도령과 이별하고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하는 대목을 소개하였다. 서로 거울과 옥지환을 이별의 정표로 나누었지만, 정작 이별 앞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절규가 폭발하기 시작하며 주저앉는다는 이야기, 떠나가는 이 도령의 모습이 이만큼으로 시작해서-저만큼-달만큼-별만큼-나비만큼이란 표현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현상을 그림처럼 그리는 대목도 재미있다는 이야기, 이 도령을 떠나보내고 이제 고요하고 적적한 빈 방에서 외롭게 등불만 바라보게 되었으니 춘향의 서글픈 심경은 달만 비쳐도 임의 생각, 나뭇잎만 떨어져도 임의 생각, 비가 내려도 임의 생각, 밥 못먹고, 잠 못 자니, 이게 모두 임 그리운 탓이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잠시 접고, 지난 6월 12일 성동구 행당동 소재의 소월 아트홀에서 있었던 제27회 선소리 산타령 발표공연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이와 함께 연창의 형태를 의미하는 입창과 좌창의 의미를 짚어보기로 한다. 이 난에 소개한 바도 있거니와, <산타령>은 선소리, 곧 여럿이 서서 부르는 노래이다. 가사의 내용은 주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향가 중에서 춘향과 이도령이 이별을 고하는 <와상 대목>을 소개하였고, 이 도령이 춘향에게 들려주는 ‘소통국 모자의 이별’, ‘오나라와 월나라 여인들의 부부이별’, ‘초패왕과 우 부인의 이별’, ‘왕 소군의 한궁 이별’ 등 이별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연인들에게 있어 이별이란 상처를 남기게 되는 슬픔이고 아픔이란 점, 춘향가는 남녀가 만나게 되면서 사랑하게 되고, 어쩔 수 없이 헤어지게 되고, 그로 인해 그리워하다가 다시 만난다는 극적인 구조를 지닌 대표적인 사랑 이야기라는 점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헤어짐의 정표로 거울과 옥지환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와 이 도령과 헤어져 슬픔에 쌓인 춘향이가 이별 별(別)자를 낸 사람은 자기와 백년 원수라고 원망조로 표현하는 대목을 소개한다. 우리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이 도령은 떠나기 앞서 석경(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당부하였고, 춘향 역시 끼고 있던 옥지환을 빼 주며 “여자의 명심불망 지환 빛과 같으니 이걸 깊이 두었다가 날 본 듯이 내 보라”며 이별의 정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민요 <이별가>에 이어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이 도령과 춘향의 이별 대목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헤어지기 전날 밤, 춘향은 울부짖으며 “금강산 상상봉이 평지가 되거든 다시 올 것인가? 바다가 육지가 되거든 올 것인가?, 말 머리에 뿔나거든 올 것인가? 까마귀 머리 희어지면 오겠는가?” 등 불가능한 조건들을 열거하며 다짐을 받으려 한다는 이야기, 이에 이 도령은 오나라 정부(征婦)이야기를 끌어 들이며 그녀들이 싸움터에 나간 남편을 그리워하듯, 자기를 기다려 달라는 주문을 한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대목이 오리정이 아닌, 춘향의 집안에서 이별을 고하는 느린 진양 장단의 <와상 대목>이다. 이 부분의 사설을 읽어보도록 한다. “와상(臥床) 우에 자리를 펴고 술상 차려 내여 놓으며 이왕의 가실테면 술이나 한잔 잡수시오. 술 한 잔을 부어 들고, 권군갱진일배주 허니, 명조상이로막막을 여관한등 잠 못 들 제, 권할 사람 뉘 있으며 위로 헐 이가 누 있으리, 이 술 한잔을 잡수시고 <중략> 편안히 행차를 허오” 위 글에서 권군갱진일배주(勸君更盡一杯酒)는 상대에게 다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울, 경기지방의 민요 <이별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자유스런 장단위에 간결한 가락, 시김새를 넣어 느리게 부르고 있다는 점, 노랫말은 “이별이야 이별이야, 임과 날과 이별이야”처럼 짧으며 앞귀(句), 뒷귀 각 8 글자를 기본으로 넘나든다는 점, 예전에 바다 건너 중국을 가는 사람들을 전송할 때에 마치 이별가조와 같은 배떠나기를 불렀다는 점, “닻 들자, 배 떠나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라는 노랫말에서 ‘달 뜨자 배 떠나니’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것은 전혀 의미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금 속풀이에서는 이별가, 곧 정든 사람과 헤어지게 되면서 부르는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위에서는 경기민요의 이별가와 배떠나기에 관한 노래의 특징을 알아보았다. 이별이라고 한다면 심청가에서 아버지와 심청의 이별도 눈물겹지만, 남녀가 사랑을 나누다가 이별을 하게 되는 판소리 춘향가의 이별 대목에서는 어떻게 그 감정을 소화하고 있는 것인가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다. 상황은 이 도령이 서울로 떠나기 전날 밤, 춘향 집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12좌창 중의 한 곡인 출인가(出引歌)를 소개하였다. ‘출인’이란 가는 사람을 못 가게 잡아당긴다는, 이별의 뜻을 담고 있는 노래라는 점, 출인가 속에 <향단>이나 <오리정> 등이 나오고 있어 춘향가의 한 대목을 경기소리제로 부르는 노래처럼 생각하기 쉬우나 일반적인 남녀의 사랑 노래 속에 춘향의 이야기를 끌어 들였다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 노래는 본래 선유가(船遊歌)의 별조로 취급되던 노래였으나 세간에 퍼지면서 출인가라는 고유의 곡명을 갖게 된 노래라는 점, 그래서 곡조의 흐름이나, 구성음, 장단 등이 선유가와 유사하다는 점, 이별의 감정을 담은 노래들은 본디 슬픔을 전제로 하나, 서울 경기의 소리제는 그 감정이 비통에 이르지 않아 비교적 단정한 음악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라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서울 지방에서 불리는 이별을 주제로 하는 노래, <이별가>를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경기민요 이별가는 장단 없이 느리게 부르며 간결한 가락에 창자의 기교나 시김새를 넣어 애절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노랫말은 10여종이 넘고 있으나, 대략 다음과 같은 노랫말들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소리의 전승 체계와 관련된 이야기로 3인의 예능보유자 인정 제도를 1인으로 통합 운영하면서 위축되고 있는 전승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정당시 3인의 보유자들은 각기 다른 스승의 특징적 소리제를 형성해 왔기에 인정이 된 것이라는 점, 이를 1인으로 통합하는 체제로 전환한 뒤 경기민요 전승자들의 포기가 늘고 있다는 점, 따라서 문화재청 담당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주기 바라고, 그래서 경기소리가 다시 한 번 중흥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고민해 주기 바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12좌창 가운데 한 곡인 ‘출인가(出引歌)’라는 노래를 소개해 보도록 한다. 이 노래는 오랜 기간 묵계월 명창이 전승해 준 악곡으로 유명하다. 출(出)은 나간다는 뜻, 인(引)은 끌다, 또는 잡아당긴다는 뜻이므로 <나가서 잡아당기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출인가라는 노래 제목에서 가는 사람을 못 가게 잡아당긴다는, 곧 이별의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긴잡가, 대부분의 가락이 그런 것처럼 5음, 곧 ‘솔, 라, 도, 레, 미’의 5음 구성이며 잔가락이나 경과음에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금의 12가사처럼 서울 경기지방의 긴소리 12곡을 12잡가, 또는 12좌창이라고 하는데, 잡가(雜歌)라는 명칭처럼 기악의 산조(散調)음악을 또한 <헛튼가락>, <허드렛 가락>,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불러 온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긴소리를 잡가라고 부른 배경은 다양한 종류의 소리들이 한 권의 책 속에 잡거(雜居)하고 있기에 붙게 된 이름이란 점을 말했다. 긴소리 12곡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예능보유자 3인에게 각각 4곡씩 전승시키게 하였고, 이를 40여년 이상 시행해 오면서 수십, 수백의 이수자와 전수조교를 배출하여 경기소리 전승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는 점, 그런데 근년에 와서 묵계월이 타계하고, 이은주도 명예보유자로 물러나자, 1인의 보유자가 12곡을 모두 전승시키도록 제도를 바꾸어 시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심각한 이야기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 이어 경기소리로 대표되는 긴잡가와 경기민요의 전승 체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앞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