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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왕십리패의 산타령, 유일하게 전승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27]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산타령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며 김태봉 외 5인을 동시에 예능보유자로 인정했다는 점, 그러나 대부분 연로한 탓에 벽파 이창배 명인이 주된 전승활동을 펼쳐 왔다는 점, 벽파는 국악고교나 국악예고, 등 전문 교육기관에 출강하여 경서도 민요와 산타령을 지도해 주었다는 점, 그 결과 훗날 경기소리의 이해와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는 점, 당시 벽파의 <청구고전 성악학원>은 경서도 민요의 중심이었으며 특히 이창배와 정득만에게 꾸준히 배운 큰 제자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발표회가 가능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산타령 발표회가 꾸준히 성동구 소재의 문화원 아트홀에서 열리고 있는 배경도 알고 보면, 벽파 이창배 명인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곧 산타령의 맥을 오늘에 이어준 이창배 명인이 성동구 옥수동에서 태어났고, 왕십리패의 모갑이 이명길에게 산타령을 배워 오늘날까지 유일하게 전승시켜왔기 때문이다. 왕십리패에는 이명길을 필두로 엄태영이나, 탁복만, 이명산 과 같은 소리꾼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뚝섬패나 과천패에 못지않은 잘 나가는 소리패(牌)로 알려져 있었다.

 

참고로, 해방 이전까지 이름 있던 소리패들은 뚝섬패를 비롯하여, 방아다리패, 과천패, 호조다리패, 왕십리패, 자하문밖패, 성북동패, 진고개패, 삼개패, 애오개패 등이 있었고, 그밖에도 동네마다 소규모의 소리패들이 활동했다. 그러나 현대까지 산타령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창배가 전해 준 왕십리패의 가락이 유일하다 할 것이다.

 

 

성동구가 벽파 이창배 명인을 지역의 인물로 발견한 시기는 그리 오래지 않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벽파가 전통음악, 특히 경서도 소리에 끼친 영향을 학술적으로 정립하고 그의 공로를 인정한 것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성동구청이나 문화원, 등은 벽파 선생을 위한 기념사업, 예를 들면 벽파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학술회의개최, 정례공연, 국악경연대회, 기념관 건립 등, 기념사업에 더더욱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6월의 산타령 발표회는 매우 의미 있는 행사였다. 왕십리패에 의해 전승되어 오던 산타령의 실체를 문화원 극장에서 직접 만나게 된다는 점도 의미 있는 경험이고, 이창배 명인을 배출한 지역이란 자부심을 주민들이나 시민들에게 홍보하게 된 점도 의미 있는 행사일 것이다. 더더욱 성동구가 전통예술, 특히 산타령을 비롯한 경기소리의 중심지로 향후, 그 보존이나 관리, 관심을 강화하게 된 목적도 매우 의미가 담겨 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관련해서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은 그것이 개인종목이든, 단체종목이든 간에 연 1~2회 공개발표회를 통해서 객관적으로 전승 의지나 전승 실태를 발표토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난 6월에 가진 2019년도 산타령 보존회의 공연은 의례적인 자체공연이 아니라, 전통과 전승의 의미를 담고 있는 공식적인 연례발표회였던 것이다.

 

 

이 의미 있는 행사에 문화재 예능보유자는 물론이고, 전수조교와 이수자, 전수자 등등, 전승자 전원이 반드시 참가해야 하는 공식적인 무대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또한 이러한 발표회를 통해서 동 종목의 변함없는 전승 의지를 나타내 주어야 하고, 그 평가를 청중들로부터 객관적으로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글쓴이가 지난해 발표회장에 참석해서도 인상 깊게 느꼈던 사실이었지만, 이번 선소리산타령 전승자들은 올해에도 경기 및 서도의 선소리 한마당을 최선을 다 해서 불러주는 성의 있는 모습을 보였다. 선소리 한마당이란 첫곡 <놀량>을 시작으로 <앞산타령>, <뒷산타령>, <자진 산타령> 등을 차례로 연창하는 것이 통례인데, 여기에 <개고리 타령>까지 곁들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같은 무대에서 서도 산타령도 불러주어 경서도 산타령을 한 자리에서 비교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해 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이러한 발표회를 통해서 동 보존회원들은 그들이 지켜가고 있는 산타령 전곡과 경서도 민요의 진수를 들려주는 등, 열성과 의욕을 보여 주었고, 청중들은 그 열성에 화답하듯, 함께 제창을 해 주었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면서 최근 경제문제로 우울해 하고 힘들어하는 현실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고마운 노래가 바로 산타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러한 대중의 친구, <선소리 산타령은> 언제부터 전해오는 노래일까?

 

또한 처음 이 노래를 만들고 불러온 사람은 누구였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분명치 않다. 다만 각종 기록이나 또는 전해져 오는 말에 의해 추정이 되고 있는데,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성경린은 이창배의 《한국가창대계》를 통해 박춘재 명인을 비롯한 전 시대의 원로 선소리꾼들의 전언(傳言)에 의한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고종 때의 명창으로 뚝섬패의 이동운이 있었는데, 그의 선생이 이태문이었고, 이태문의 선생이 신낙택, 신낙택의 선생이 종대, 종대의 선생이 이의택” 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판소리에서 송흥록을 이르듯이 산타령은 이의택이라는 말이다.

 

고종 때의 명창, 이동운은 1920년대 뚝섬패의 모갑이로 알려진 인물인데, 그 이동운을 가르친 선생이 바로 그 유명한 이태문 명창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