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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경기소리의 위기가 시작되는가?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19]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금의 12가사처럼 서울 경기지방의 긴소리 12곡을 12잡가, 또는 12좌창이라고 하는데, 잡가(雜歌)라는 명칭처럼 기악의 산조(散調)음악을 또한 <헛튼가락>, <허드렛 가락>, <흐트러진 가락>이라고 불러 온 것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긴소리를 잡가라고 부른 배경은 다양한 종류의 소리들이 한 권의 책 속에 잡거(雜居)하고 있기에 붙게 된 이름이란 점을 말했다.

 

긴소리 12곡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예능보유자 3인에게 각각 4곡씩 전승시키게 하였고, 이를 40여년 이상 시행해 오면서 수십, 수백의 이수자와 전수조교를 배출하여 경기소리 전승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는 점, 그런데 근년에 와서 묵계월이 타계하고, 이은주도 명예보유자로 물러나자, 1인의 보유자가 12곡을 모두 전승시키도록 제도를 바꾸어 시행하고 있는데, 그 결과 이 분야의 전공자들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는 심각한 이야기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 이어 경기소리로 대표되는 긴잡가와 경기민요의 전승 체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앞글에서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서울, 경기지방 민요의 전승과 확산이란 명제를 안고 출발했던 당초의 목표가 어떠한 제도의 변화로 인해서 빗나가고 있다는 현상은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초의 제도는 묵계월, 이은주, 안비취 등 3명의 뛰어난 명창들이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을 받고 경기지방의 긴소리 12곡 중에서, 묵계월은 적벽가, 선유가, 출인가, 방물가 등 4곡을, 이은주는 집장가, 평양가, 형장가, 달거리, 등 4곡, 그리고 안비취는 유산가, 제비가, 소춘향가, 십장가 등을 분담하여 전승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종전의 그런 분담제도를 1인체제로 바꾸어 1인의 보유자가 12곡을 모두 전승한다는 점이다.

 

이 제도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일고 있다. 특히 당사자들이라 할 수 있는, 경기민요를 평생 부르며 살아온 60~70대 명창들을 비롯하여 중견 소리꾼들의 허탈이나 불만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이 묵계월이나 이은주, 또는 안비취 명창 문하에 들어가 40여년 이상, 소리공부를 해 오면서 오직 선생이 보유하고 있던 4개의 악곡을 배우고, 그 악곡을 중심으로 공연이나 발표회를 가져 왔으며 또한 그 소리들을 익혀 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온 소리꾼들이다. 오르지 경기소리만을 부르며 예능보유자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온 소리꾼들이기에 평생의 희망을 하루아침에 제한하는 결정에는 동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들 중 부지런한 소리꾼들은 틈틈이 나머지 8곡도 익혀서 12곡 모두를 제대로 부르고 발표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제 와서 공식적으로 12곡 전부를 다 잘 불러야 보유자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하는 조건은 그동안 펼쳐온 무형문화재 정책과는 맞지 않는다.

 

차라리 3인 보유자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는 묵계월의 소리는 그가 어려서부터 주수봉이라는 명창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이은주는 원경태, 안비취는 최정식에게 경기소리를 배워 각각의 특징적 소리제를 형성해 왔으므로 그것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3인이 각각 12곡을 다 전수할 있도록 전승의 범위를 확대하는 문제는 가능하다.

 

국가무형문화재의 다른 종목, 가야금 산조의 예를 들어보도록 한다. 동 종목은 3인이 예능보유자로 인정이 되어 있다. 1인은 김윤덕류 가야금산조, 2인은 동일하게 김죽파 류를 전승하고 있다. 산조음악이라는 넓은 의미에서는 공통점이 있지만, 류파의 다름을 분명하게 인정해서 그들은 해당 류파만 잘 타면 된다.

 

예능보유자 인정을 위한 시험 조건에도 김윤덕 류 산조를 익혀 온 전승자들은 해당 류파만 잘 타면 된다. 김죽파 류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거나, 또 다른 류파를 연주하지 않는다. 만일 김죽파 류 전승자들에게 김윤덕류 산조까지 연주할 있어야 한다고 조건을 붙인다면, 어찌 될 것인가. 물론 이런 경우는 상상할 수 도 없는 상황이다.

 

 

서울 경기의 12잡가도 그 뿌리는 본디 하나이겠지만, 3인의 명창이 1975년 이후, 40여년이 넘도록 각기 4곡씩 전승을 해 오면서 각각의 특징이 담긴 소리로 굳어진 것이다. 전승자들에게 12곡을 다 부를 수 있도록 권장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우선은 스승이 남겨준 4곡을 충실하게 전승해 왔는가의 대한 여부를 심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차차로 이수평가나 조교 선정, 예능보유자의 인정을 위한 실기평가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전 세대에 견주면 지금은 이수자의 선정이 매우 축소되어 있는 실정이다. 배우고 가르치는 곳은 많으나 이수자를 배출 할 수 있는 곳은 1인의 예능보유자 뿐이다. 12곡을 전부 배우고 난 후, 시험에 응시해야 하니 많은 전수자들이 포기하고 떠나간다는 보고가 늘고 있어 안타깝다.

 

어떤 명분이라도 문화의 중흥에 역행한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화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문화재청의 담당자들은 이 문제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청취해 주기 바라고, 그래서 경기소리가 다시 한 번 중흥을 이룰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고민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