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내가 시라큐스에서 배거로 일할 때 재미있는 일을 겪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일하던 아가씨 중에 슈(Sue)라는 이름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미국 여자들은 슈라는 이름이 많던데요. 정식 이름은 수산나인데 그냥 슈라고 줄여서 부르는 모양입니다. 어느 날, 아마도 그날이 추수감사절이었을 거에요. 미국에서는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큰 명절이잖아요. 추수감사절이 되면 학교 기숙사도 문을 닫고, 모두 고향으로 갑니다. 그날 밤은 손님이 없어 한가했습니다. 그래서 슈에게 물었지요. 너는 고향에 가지 않느냐고. 그랬더니 안 간다는 것이에요. 은정 씨도 잘 알겠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굉장히 크잖아요. 그래서 “아마 멀어서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시러큐스라는 거에요. 그래서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가까이에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슈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나는 근처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러큐스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친구도 만나게 되고 애인도 생기게 되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선거일을 1주일 앞둔 1987년 12월 10일 전주 유세에서 새만금 사업을 대선 공약으로 발표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새만금 사업 기공식은 1991년도에 이루어졌는데, 이때 완공 목표연도는 2004년이었다. 기공식 연설문 일부를 인용한다. “(새만금 개발 사업은) 이곳 변산반도와 저 바다 한가운데 고군산군도, 그리고 군산을 연결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를 쌓고 그 안의 바다를 육지로 만들어 강화도만큼 큰 새 국토를 창조하는 일입니다. 정부는 총 1조 3,000억 원을 들여 1998년까지 33km의 방조제 건설과 외곽 공사를 끝내고, 이어서 1억 2,000만 평에 이르는 방조제 안쪽의 개발사업을 2004년까지 마무리 지을 것입니다.” 1998년까지 끝내겠다는 방조제 공사는 12년이 지연되어 2010년에 완공되었다. 2004년까지 끝날 것이라던 내부 개발사업은 2025년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새만금 사업이 끝나면 지역발전이 획기적으로 이루어져 부자 전북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전북도민은 오랫동안 전라북도에 국제공항을 가지는 것이 숙원이었다. 김대중 정권 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경영 이야기가 나오니 미스 K가 할 말이 많아졌다. 미스 K는 스파게티 식당을 열기 전에 잡지사에 근무했었고 한 때는 영화 회사를 운영하다 망한 적도 있었단다.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일하다가 극단을 만들어 운영해 본 경험도 있고. 이 일 저 일을 하다 보니 그녀는 나름대로 경영에 대해서 일가견이 생겼단다. K 교수가 “훌륭한 경영자의 특징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니 “자기가 데리고 있는 모든 사람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미국 유학 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서 이번에는 K 교수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나는 1979년 여름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기 3달 전에 미국 뉴욕주에 있는 시러큐스(Syracuse)라는 작은 도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시러큐스는 이탈리아 이민들이 개척한 도시인데, 마피아로 유명한 시실리섬에 있는 시라쿠사라는 항구도시와 지형이 비슷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인구는 25만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였습니다. 남들은 대학 졸업을 하고 바로 유학을 가는데, 나는 졸업한 뒤 학군단 장교로 군복무를 마치고 5년 동안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뒤늦게 나이 30살이 다 되어 유학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후, K 교수는 연구 보고서의 결론 부분을 쓰느라고 밤 11시까지 연구실을 지켰다. 퇴근하기 위해 연구실을 나서기 직전 갑자기 미스 K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보았다. 미스 K는 혼자서 음악을 듣고 있다고 말했다. K교 수가 “잠간 들를까요?”라고 물었다. 미스 K는 “네. 기다릴게요~ 오세요~~”라고 길게 말꼬리를 늘이며 남자의 마음을 흔들었다.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감미로운 응답이었다. 손님은 아무도 없다니 방해받지 않고 모처럼 둘이 대화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하늘에는 별이 총총히 떠 있다. S대가 있는 봉담면은 아직 시골이라서 별을 쉽게 볼 수 있다. 밤에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소확행(小確幸)’이라던가? 차를 운전하면 연구실에서 미녀식당까지는 10분이 채 안 걸린다. K 교수는 미스 K가 기다리고 있는 식당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K 교수는 지난번 축제 때에 별난 선물을 하나 사 두었다. 학생들은 축제 때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서 장사를 한다. 어떤 학과에서는 롤러스케이트를 대여해 주기도 한다. 어떤 학과에서는 연못에서 탈 수 있는 보트를 빌려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경제학 용어 가운데 매몰비용(sunken cost)이라는 말이 있다. 매몰비용이란 이미 발생하여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한다. 매몰비용은 지나간 것으로 취급하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완벽하게 합리적인 결정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매몰비용이 아깝다는 까닭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투자하여 손해를 보는 어리석은 행동을 ‘매몰비용의 오류’라고 말한다.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개발 사업은 매몰비용의 오류를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1969년 영국과 프랑스는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를 공동 개발하기 시작했다. 파리-뉴욕 간 비행시간을 절반 이하로 줄여주는 혁신적인 기술이었지만 개발비(1976년 기준 20억 파운드. 현재 값어치로 150억 파운드, 한화로는 약 25조 원)가 너무 많이 들어서 경제적 타당성에 문제가 있었다. 콩코드는 1976년 상업 운항을 시작하였으나 높은 연료 소모, 극심한 소음 공해 등으로 대서양 횡단 노선만 허가되었다. 음속 2배 속도의 콩코드는 런던-뉴욕 비행시간을 7시간에서 3시간 반 곧 1/2로 줄였지만, 항공권 가격이 일반 여객기보다 15배나 비쌌다고 한다. 당연히 승객이 적어서 콩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레이브 할아버지가 바둑을 배운 뒤에 체스를 그만둔 까닭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바둑판은 가로세로 19줄이니까 모두 361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진다. 체스는 가로세로 8줄, 그러니까 모두 64개의 교차점이 만들어진다. 당연히 바둑이 체스보다 훨씬 변화가 많고 재미있다. 바둑 모임 회장인 브라운 씨는 논리학 교수답게 바둑과 체스를 비교하는 흥미로운 글을 시러큐스 대학 학생회에서 발행하는 일간 신문(The Daily Orange)에 기고한 적이 있다. K 교수는 그 글을 우연히 읽어 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첫째, 바둑은 시간이 갈수록 판이 채워지는데 체스는 시간이 갈수록 판이 비워진다. 알다시피 체스는 상대방 말을 하나씩 잡으면 판에서 내려놓는다. 물론 바둑에서도 무리진 돌들을 포위하여 잡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바둑판에는 돌이 많아지고 공간이 적어진다. 둘째로, 바둑에서 죽은 돌은 게임이 끝나면서 상대방 집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곧 죽은 돌 하나가 한 집과 맞먹는 역할을 한다. 체스에서 죽은 돌은 임무가 끝난다. 그러나 간혹 졸(pawn)이 상대방 진지 끝줄까지 전진하면 죽은 말 하나를 다시 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며칠 뒤 K 교수는 공과대학의 ㅍ 교수와 ㅎ 교수와 함께 점심을 먹으러 미녀식당으로 갔다. 키가 훤칠하고 예쁜 종업원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자리를 잡은 뒤, 컵에 물을 따르는 종업원에게 사장님 계시느냐고 물으니 출타중이란다. “아가씨는 여기 종업원이냐?”라고 물으니 인접한 대학의 아르바이트 학생이라고 대답한다. 항공관광과 2학년 학생이라고 한다. 항공관광과란 스튜어디스를 배출하는 학과다. 스튜어디스는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인기가 있는 직종이다. 요즘 새로운 추세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던 이공계열보다는 연극영화과, 신문방송과 등 연예계와 언론계에 사람이 몰린다. 탤런트나 영화배우를 모집하면 수천 명이 모여들어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다. 과거에는 사법고시나 행정고시 등이 인기가 있었지만 이제 세상이 변하였다. 청소년들의 우상인 연예인 되기가 판검사 되기보다 훨씬 더 어렵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미녀를 보러 왔는데 미녀가 없으니 식사하면서 하는 대화가 약간은 김빠진 맥주 같다. 대화의 주제는 남자들의 단골 메뉴인 여자 이야기가 아니고 어쩌다 보니 바둑이야기가 나왔다. ㅍ 교수가 “러시아의 체스 최강자가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에 16개의 대형 보가 만들어졌다. 강변의 모래밭은 사라지고 보의 상류에 16개의 커다란 호수가 생겼다. 단군 이래 가장 큰 토목사업이라던 4대강 사업에 들어간 돈은 22조 원이었다. 4대강 사업을 2011년에 준공한 지 14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4대강 사업을 오랫동안 추적하여 만든 다큐 영화 <추적>이 2025년 8월 6일 극장가에서 개봉되었다. MBC 사장까지 역임했던 최승호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거대한 거짓말, 17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달렸다. 이 영화에서는 4대강 사업 이후에 해마다 여름이면 녹조가 발생하여 사람과 물고기와 농작물과 생태계에 피해를 준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승호 감독은 영화 개봉과 함께 ‘4대강 재자연화를 촉구하는 10만인 서명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의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은 “4대강의 보를 철거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4대강의 보를 철거하자는 주장은 너무 과격하다는 것이다. 이왕 많은 예산을 들여서 만든 4대강 보를 유지하면서 개선책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할머니는 젊어서 백석과 이별한 이후 해마다 백석의 생일날인 7월 1일에는 세 끼를 굶고서 백석에 대한 그리움을 되새겼다고 한다. 그녀는 1997년에는 2억 원을 출연해 ‘백석문학상’을 제정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살던 자야오당(子夜晤堂)에는 멋진 편액 한 편이 걸려 있다. “유주학선 무주학불 有酒學仙 無酒學佛 (술이 있을 때는 신선도를 따르고, 술이 없을 때는 부처를 배운다)” 그녀가 찾아갈 부처는 백석일 지도 모른다. 그녀는 노년까지 백석의 시를 조용히 읽는 것이 생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진 남북 화해 이후 백석에 관해서 많은 것이 밝혀졌다. 그녀가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백석은 자야와 헤어져 만주로 가서 사업을 했다. 해방이 되면서 백석은 만주에서 귀국하여 고향인 평북 정주에서 살았는데, 초기에는 문학 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한다. 그러나 백석은 1962년에 김일성 찬양시 '나루터'를 발표한 이후 창작활동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백석은 1996년에 죽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남북 화해가 조금 일찍 시작되었더라면 두 사람은 이산가족으로서 재회할 수도 있었으련만, 너무 늦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길상사는 요정을 운영해서 큰돈을 번 할머니(본명 김영한)가 1996년에 법정 스님에게 요정을 기부해서 개조한 절이다. 그녀는 80세 때에 7,000여 평의 대지와 건물 40여 동이 있는 한옥 요정 대원각(부동산 시가 1천억 원 상당)을 법정 스님에게 수행 도량으로 써달라며 기증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그녀는 191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집안이 몰락하자 생계를 위하여 부실한 신랑에게 15살에 시집을 갔다. 그런데 그만 남편이 우물에 빠져 죽는 사고가 나고 그녀는 이듬해 진향(眞香)이라는 이름으로 기생이 되었다. 할머니는 조선 권번(일종의 기생조합)에서 전통적인 기생 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였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때에 서울의 이름난 한량들이 만나려고 애태우던 유명한 기생이었다. 글재주가 있는 그녀는 문학잡지에 수필을 발표하여 ‘문학 기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녀는 문단에 등단한 뒤 일본 유학까지 가게 된다. 그런데 그의 문학 스승이었던 분이 독립운동과 연루되어 함흥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녀는 스승을 면회하러 함흥에 갔다. 그녀는 스승의 옥바라지를 위해 함흥에 주저앉고 생계를 위해 기방에 나갔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