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14 (토)

  • 흐림동두천 6.3℃
  • 구름많음강릉 12.5℃
  • 박무서울 8.0℃
  • 박무대전 7.4℃
  • 연무대구 8.8℃
  • 흐림울산 13.1℃
  • 연무광주 9.7℃
  • 구름많음부산 13.4℃
  • 맑음고창 13.1℃
  • 제주 11.9℃
  • 흐림강화 7.3℃
  • 구름많음보은 4.5℃
  • 구름많음금산 4.6℃
  • 구름많음강진군 9.4℃
  • 구름많음경주시 9.4℃
  • 맑음거제 10.6℃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부탄, 가난하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나라

[이상훈 교수의 환경이야기 135]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독일 태생의 경제학자 슈마허(1911~1977)는 1934년에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뒤 영국 정부의 경제고문으로 일하면서 복지 정책의 기초를 닦았다. 그는 1955년에 버마(현재의 미얀마) 정부의 경제자문관으로서 버마를 방문하였는데, 현지 불교도의 생활을 접하면서 감명을 받았다. 슈마허는 버마에서 관찰한 소박하고 자족적인 불교적 생활 방식이야말로 하나뿐인 지구에서 자연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지속할 수 있는 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버마에서의 활동 경험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1973년에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써서 성장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경제의 목적은 욕망을 부추겨 소비와 성장을 끝없이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정 규모의 소비 속에서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는 개발도상국에는 거대하고 자본 집약적인 서구기술보다는 자원과 환경을 낭비하지 않는 중간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그는 경제의 목적을 ‘성장’이 아닌 ‘인간 행복’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불교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최소한의 소비 생활로 정신적 만족을 찾는 삶이 행복이라는 것이다. 불교 경제학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추구하면서 이윤의 최대화를 목표로 하는 기존의 경제학과는 확연히 다르다.

 

로마클럽은 1968년 로마에서 창립 회의를 연 민간 국제기구로서 지구 차원의 문제를 연구하는 최고 지성인들의 모임이다. 로마클럽이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에 의뢰해 1972년에 발표한 미래 연구 보고서 <성장의 한계>는 세계 경제성장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이 보고서에서는 인류가 계속해서 현재처럼 고도 경제성장을 추구하면 자원 고갈, 식량 부족, 그리고 환경오염 등으로 100년 이내에 경제성장이 멈추거나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였다.

 

로마클럽이 경고한 경제성장 한계론은 기술 발달과 새로운 자원 개발을 과소평가한 결함이 있었다. 한 예로서 <표1>을 보면 석유자원 고갈 예상 연도가 여러 차례 빗나갔음을 알 수 있다.

 

* 셰일 석유(Shale Oil) : 지하 3,000m 이상의 깊은 퇴적암(셰일층)에 갇혀 있는 원유

 

미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로겐(1906~1994)은 1971년에 《엔트로피 법칙과 경제 과정》이라는 책을 써서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므로 인류가 지속할 수 있으려면 무한한 경제성장을 포기하고 물질적 소비를 줄이는 탈성장(脫成長, Degrowth)으로 나가야 한다”라는 탈성장 이론을 제창하였다. 하나뿐인 지구가 가진 자원과 환경용량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류가 추구하는 고도 경제성장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로겐의 탈성장 이론은 환경운동가들에게는 영향을 미쳤지만, 주류 경제학에서는 수용되지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자본주의 체제는 고용 유지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다. 탈성장 이론은 일반 국민의 처지에서는 소비와 욕망의 축소를 의미한다. 아주 쉽게 말해서 탈성장은 현재의 생활수준을 낮추자는 주장인데, 따를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어느 정치인이 선거에 출마하면서 탈성장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를 막론하고 모든 정부는 고도 경제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필자가 환경운동에 참여하면서 오랫동안 해결할 수 없는 난제가 있었다. 환경운동이란 자원과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면서 환경을 보존하자는 생활 운동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발적으로 검소하게 살자는 운동이다. 슈마허가 제창한 ‘불교경제학’을 실천하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환경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국민이 50%를 넘으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생산 공장은 멈추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고 국가 경제는 마비될지도 모른다.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는 경제성장을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하며 해마다 경제성장율을 높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히말라야 산기슭에 있는 작은 불교 국가인 부탄은 국내총생산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을 높이는 것을 국가 목표로 선언하였다. 부탄은 어떤 나라인가?

 

 

 

부탄은 면적이 약 38,800km2(남한 면적의 40%)고 인구는 약 80만 명에 불과한 작은 입헌 왕국이다. 종교는 티베트 불교 신자가 약 75%로서 가장 많고 힌두교 신자가 23%를 차지한다. 부탄은 국민총행복을 국가 발전의 최상위 목표로 두고 모든 정책을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설계하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1972년부터 2006년까지 재위한 부탄의 제4대 국왕 지그메 싱게 왕추크는 취임하자마자 국민총행복을 국가 목표로 선언하고 행복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전의 제3대 국왕은 토지개혁을 통해 농민들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나눠주어 행복 정책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2008년에 즉위한 제5대 국왕은 입헌군주제를 도입하면서 헌법을 제정하였는데, 헌법 제9조에 “국가는 국민의 총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명시하여 국민의 행복 증진이 국가의 목표임을 분명히 했다.

 

부탄의 행복 정책은 다른 나라들이 추진하는 경제성장 정책과 차이가 있다. 다른 나라의 경제 정책은 물질적 풍요만을 측정하는데 부탄의 행복 정책은 인간 행복에의 기여도를 측정한다.

 

다른 나라는 “이 사업은 얼마나 돈이 될까”를 따지는데, 부탄의 행복 정책은 “이 사업이 국민의 행복지수를 높이는가”를 먼저 심사한다. 부탄에서는 환경을 파괴하거나 공동체를 해치는 사업은 아무리 경제적 수익이 높더라도 승인되지 않는다. 부탄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추가 소득이 행복에 이바지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과도한 소비 대신 여가 시간과 공동체적 값어치를 지키는 데 자원을 우선해서 나눈다.

 

경제성장의 결과는 1인당 GDP로 수치화된다. 2024년 통계를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36,000달러로서 미국(85,000달러) 보다는 작지만, 일본(33,000달러)보다는 높다. 부탄은 1인당 GDP가 3,900달러로서 미국인 평균소득의 4.5%, 한국인 평균소득의 11%에 불과하다. 경제성장을 기준으로 견주면 매우 가난한 나라임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부탄의 국민들은 행복하지 않은가?

 

부탄 정부는 독자적인 국민총행복지수를 개발하여 국민의 행복도를 조사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2년 조사에서 부탄 국민의 93.6%가 행복하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2025 한국인의 의식ㆍ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행복하다는 응답자는 52%였다. 이 수치는 2022년의 65%에서 더 낮아진 것으로서 과도한 경쟁, 소외감, 노년층의 자살 등이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지만,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은 늘지 않았다. 부탄은 가난하지만, 국민이 행복한 나라라고 말할 수 있다.

 

(후속 글에서 부탄의 행복 정책과 환경 정책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한다.)